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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2-3) 생명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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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4 ㅣ No.964

[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2) 생명체의 시작 (상)

수정란, 새로운 생명체의 첫걸음


과학사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눈길을 끈다. 그 중 하나는 벤젠이라는 화합물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 이야기다. 석유에 섞여 있는 벤젠은 탄소 원자 6개와 수소 원자 6개로 이뤄진 화합물이다. 이것의 구조를 밝히려 여러 화학자들이 노력했지만 그 비밀을 좀처럼 밝혀내지 못했다.
 
독일 태생 화학자인 케쿨레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 구조를 알아내려 고심하던 어느 날 난로 옆에서 깜빡 졸던 그는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벤젠의 화학적 고리 구조를 밝혔다. 노벨상은 그 결과로 얻어진 부산물이다.
 
일반적으로 생물은 탄생, 성장, 노화, 죽음으로 귀결되는 직선적 삶을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거시생물학 측면에서 생물의 삶은 마치 벤젠 고리와 같은 순환 구조로 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생명의 영속성 측면에서 생물은 개체로서는 유한한 삶을 살지만 생식을 통해 종으로서는 무한한 삶을 사는 역설적 상황을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물이라는 존재를 직선적 궤도에 올려놓고 생명체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기조차 하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생물은 아무래도 개체가 중심이 되기에 이 글에서는 개체의 형성을 중심으로 생명체의 시작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생명체의 시작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생물의 특성은 생식이다.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생물의 생식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수 세포로 구성되며 그 구조가 복잡한 대부분의 생물은 일단 정자 및 난자라는 생식에 특화된 세포, 즉 생식세포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합쳐지는 수정 과정을 거쳐 생명체로서 첫걸음을 내딛는다.
 
인간의 경우 정자 형성에는 약 65일이 소요되며 난자 형성에는 1년 이상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긴 시간과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 수정이 될 수 있는 확률은 한 달 중 며칠에 불과하고, 많은 수 정자 중에서 단 하나만이 수정과정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수정란은 확률적으로 귀한 존재다.
 
수정 과정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수정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는 생식의 목적에 적합하게 고도로 분화된 세포이지만, 유전정보의 양적 측면에서는 반쪽인 상태이다. 이들이 융합하는 수정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완전한 유전정보를 지닌 한 개체가 형성된다.
 
한편 생식세포의 형성 및 수정 과정에서는 극심한 유전정보의 섞임 현상이 일어난다. 이로써 수정란은 양적으로는 앞선 세대와 동일하지만 질적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기체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정자와 난자가 단순히 합쳐짐으로써 새 생명체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 전 난자의 상태는 폭풍 전 정적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 정적이 정자가 난자로 침투하는 자극에 의해 깨어지며 수정란 안에서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 시작의 역동적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즉, 난자와 정자가 만나 합쳐지고 침투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수정, 바로 그 때가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가 이 우주에 처음 출현해 생애의 긴 여정을 향한 닻이 올라가는 최초의 순간이다. 즉 내적으로 완벽히 갖춰진 하느님 모상에 숨결을 불어넣으신 그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인 것이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정자와 난자가 생식에 특화된 세포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2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는 정자나 난자에 축소형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이른바 전성설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개체의 발생은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는 수정에 의해 비로소 시작됨을 알게 됐고 이러한 견해를 후성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모든 동물들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단순한 모습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점점 복잡한 구조를 보이는 개체로 변화한다. 즉, 발생이 완전히 끝난 후 생명체 모습은 수정된 난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명의 시작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물음이 큰 논쟁거리가 됐다. 이 과정은 여러 단계로 구분되며 각 단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 [평화신문, 2012년 8월 12일, 김원선(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3) 생명체의 시작 (하)

립 생명체 수정란 인권 존중해야


일반적으로 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수정을 기점으로 해서 몸의 전체적 구도가 잡히고 기관이 형성되기까지 단계를 배아(胚芽) 시기라고 한다. 인간과 같이 모체 내에서 발생의 상당 기간을 보내는 경우, 배아 이후부터 출생 전까지 단계는 태아(胎兒)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이러한 과정들이 체내에서 진행되기에 외부에서 변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상진단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발생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변화 모습을 대체적 모델 생명체의 관찰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발생 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진 것은 개구리, 닭, 생쥐와 같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물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얻은 결과이다.
 
과연 배아와 태아는 생명체라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의미에서 생명현상은 그것을 발하는 주체가 수정란이건, 배아이건, 혹은 태아이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생명현상이 수행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배아에는 위나 장과 같은 소화기관은 없지만 난황이나 모체의 혈류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소를 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세포가 흡수하여 기본적 생명활동에 이용하는 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실 수정이 일어나면서 수정란에는 지속적으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 초기 배아가 점점 종 고유의 특이한 모습을 띠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앞서 일어난 변화는 다음 발생단계의 전초가 된다. 즉 수정이라는 원인 사건이 다음에 일어나는 난할이라는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난할이 일어나면서 세포들은 자신이 위치한 장소와 인접하고 있는 세포의 영향에 의해 조금씩 차별성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차별성을 보이는 세포들 집단을 배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차별성을 띠게 된 이들 세포집단은 더 이상 그 상태로서는 불안정하기에 최대한 안정된 배열 상태를 갖게 되는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낭배운동'이라 부르는데, 이 때 '원시선'이라고 부르는 움푹 팬 구조가 세포들이 집단적으로 배아의 내부로 이동해 들어감으로써 나타난다. 이것은 심장이나 눈과 같은 기관이라기보다는 한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세포집단 움직임의 궤적이다.
 
한편 수정란은 난할을 하면서 내부에 주머니를 지닌 배반포로 발달하는데 이것이 자궁벽에 자리를 잡는 현상을 착상이라고 한다. 착상 과정이 전개되면서 태반이 형성되는데 태반은 모체에서 유래하는 자궁내막과 배아에서 유래하는 배외막이 합쳐진 것이다. 따라서 태반은 일방이 아닌 엄마와 아기의 합작품인 셈이다.
 
태반이 발달하면서 배아는 자신의 영양 및 산소 공급과 노폐물 배출을 모체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지만 생명현상은 엄연히 배아나 태아에 의해 독립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단지 엄마의 몸 안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며 성장을 하는 것이다.

세포들의 이동으로 배아에는 뇌와 척수를 만들게 될 신경관이 나타나고, 이어 다른 장기들이 순차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렇듯 생명체의 삶의 과정인 발생은 단편적 현상이 아닌 연속적 변화의 과정이며 각 단계는 밀접한 인과관계로 이어진다. 따라서 수정란에서 출발해 형성되는 각 단계의 배아는 모습을 달리해 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발생학 분야 서적은 수정란을 새로운 생명체의 시작으로 기술하고 있다. 초기 난할로 인해 여러 개의 세포를 갖게 된 수정란이 단순한 세포덩어리일 수 없으며 원시선의 유무, 심장과 같은 기관의 형성, 착상을 생명체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로 주장하는 일부의 견해는 과학적 타당성을 결여한 지극히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근래에 이르러 생식의학과 재생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독립된 생명체인 수정란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수정란을 비롯한 어린 배아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렇기에 방어능력이 없는 사람인 수정란의 인권은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34). [평화신문, 2012년 8월 19일, 김원선(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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