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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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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31 ㅣ No.542

[현대교회의 가르침] (10) ‘노동하는 인간’ (1)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 강조 … 인격적 가치 부여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노동하는 인간’ 

 

‘노동하는 인간’(1981)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90주년을 기념하여 반포한 회칙으로, ‘인권의 사도’로서의 요한 바오로 2세의 관심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담고 있는 사회교리 문헌이다. 

 

이 회칙은 인간 노동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의 모든 전통적 내용들을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세상의 발전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노동하는 인간을 그 주제로 삼고 있다. 곧 이 회칙은 현대 사회에서의 노동과 그와 관련된 사회 문제들을 직시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노동하는 인간’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형태로 반포되기는 하였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로마의 주교로서 모든 그리스도인과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과 함께 대화하는 긴 편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은 경제학이나 사회학 혹은 신학에 대해 학술적이고도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성서학이나 영성신학에 관해 직접적으로 쓰고 있는 문헌도 아니다. ‘노동하는 인간’은 단순히 현대 세계, 특별히 현대의 노동 세계 안에서 드러나는 여러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또 해답을 구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대화 형태에서 발전된 사목적 차원의 담화라는 특징을 띠고 있다. 

 

‘노동하는 인간’은 현대 세계의 노동 현장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권고하고 제안할 뿐이지 어떠한 오류도 없는 확고한 지침으로서의 어떤 제도나 체제를 주장하지 않는다. 

 

회칙에 나타나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상적 배경은 특별히 가톨릭교회의 대 사회 가르침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와의 비판적이고도 창조적인 대화에서 분출되는 새로운 사상임을 알 수 있다. 

 

교황은 마르크스의 일부 사상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그 영향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그 사상들을 발전시키고 경직성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확장시킴으로써 이미 내부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를 초월하는 사회철학을 형성한다. 교황은 동유럽 폴란드 출신 교황으로서 사회주의 국가들의 상황은 물론 서유럽 국가들의 상황, 나아가 친히 사도적 방문의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개발도상 국가들의 상황이나 환경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청년시절에 육체노동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사실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노동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과 함께 교황은 이 회칙에서 인간 노동의 품위를 견고히 하고, 인간 사회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의 중심에 인간 노동을 위치시키고 강조한다. 특히 노동의 기본 원리를 구체화 시키지 않는 모든 제도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모든 일에 있어서 노동의 우선권을 강조하며,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합에 지지를 보내며, 마지막 장에서는 노동의 영성에 대한 윤곽을 제시한다.

 

 

‘노동하는 인간’의 의의 

 

우선 인간 노동의 의미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이전까지 가르쳐온 내용이 주로 노동의 보상으로서의 정당한 임금과 관련되어 있다 한다면, ‘노동하는 인간’은 성서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인간 노동을 조명한다. 

 

곧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고 고양시키는 존재이며, 또한 노동을 통해서 자기완성을 이루어가며 더욱 더 인간답게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노동의 윤리적 의미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실 ‘노동하는 인간’에서의 인간 노동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단지 인간 권리와 인간 속성이라는 자연법의 추상적인 재고로부터가 아니라 노동의 주체로서의 인간 개인의 구체적인 결함에서부터 시작된다 : “노동이 인간에게, 인간의 인간성에 좋다는 것은 노동을 통해서 인간이 자연을 자기 필요에 따라 이용하면서, 자연을 변형시킬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루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더 인간답게 되기 때문이다”(9항).

 

이렇게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있어서 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노동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관점에서부터 드러나고 있고, 따라서 그에게는 인간 노동의 경험적 측면이 더욱 큰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사목자, 신학자로서 분배 - 소득, 부, 사회적 지위, 정치적 권력, 기회 그리고 인간성에의 창조적 참여 - 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노동하는 인간’의 독창성이 잘 드러나는 내용이기도 하다. 회칙 ‘노동하는 인간’이 언급하고 있는 분배 기준은 단순히 사랑과 유사한 정의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無産者)와 서로 나누어야 할 책임을 도덕적으로 함께 나누는 데에 있다. 

 

‘노동하는 인간’이 가지는 의의 중 또 한 가지는 물질주의에 대한 고발이다. 이는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으로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 둘 모두에게 위험 요소로 존재하는 물질주의를 같은 맥락에서 분석, 비판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이론적 물질주의(유물론)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볼 수 있는 실질적 물질주의 양쪽 모두에 요한 바오로 2세의 화살이 돌아간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론적 물질주의는 “정신적 실재를 피상적 현상으로 격하”(13항)시키며, 실질적 물질주의는 “영적이고 인격적인 것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물질에 예속시킨다”(13항)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두 체제에서 물질주의의 양상은 “사물들 보다 우선하는 인간의 우위성”(13항)을 쉽게 거스른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비판은 인간 노동을 ‘상품’으로 보려고 하는 보편화된 현상에 대한 고발이며, 인간 노동을 ‘사물’(상품)로 간주하는 현상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인간 노동에 대한 인간성 강조는 이제 노동에 대한 사고와 평가에 있어서 보다 인간적인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요한 바오로 2세의 염려는 여전히 노동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나아가 집단적인 경제적 투자로서의 노동력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의 최대 이윤 추구와, 노동시장에서의 갈등과 착취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11항).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어서의 기업가의 행위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비판은 결코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자유시장 체제의 합리성, 능률 그리고 성장 잠재력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참된 개념을 왜곡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물질주의를 비난하는 것과 관계되는 경제, 정치, 사회의 다양한 조건에서의 부당한 분배에 대한 비난으로 보아야 한다. 

 

회칙에서 다루고 있는 범위와 내용이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추상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노동하는 인간’은 복음정신에 충실히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책임감을 부여함으로써 인간 노동에 관한 이전의 그 어떤 문헌보다도 훨씬 발전된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 이동익 신부는 1983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수품 됐으며, 로마 라테란대학교 성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 공항동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등을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30일, 이동익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11) ‘노동하는 인간’ (2)


“인간은 노동 통해 하느님 창조활동에 참여”

 

 

‘노동하는 인간’ 내용 

 

지난주에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반포 배경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개요 및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번 주에는 이 회칙의 전체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려한다. ‘노동하는 인간’은 서론을 포함하여 크게 5부로, 이는 다시 세분되어 주제별로 모두 27개의 소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1~3항)은 이 회칙이 나오게 된 동기와 함께 레오 13세부터 역대 교황들의 사회교리가 어떻게 변천, 발전되어왔는가를 설명한다. 특히 복잡한 사회 현실 안에서 계속해서 발생하고 날로 복잡해지는 사회문제 해결의 필수적 실마리로 인간 노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따라서 인간의 노동은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열쇠’, ‘본질적인 핵심’이 된다는 대명제를 제시한다. 

 

제2부(4~10항)에서는 ‘노동하는 인간’의 노동관이 제시된다. 여기서는 창세기에서의 노동 개념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독특한 설명과 함께 인간 노동이 지니는 객관적 의미와 주관적 의미가 구분되어 설명된다. 

 

즉 노동의 객관적 의미란 노동에 의해 생산된 사물들 - 농산물과 공산물에서부터 노동의 도구, 과학기술, 더 나아가서 인류가 살고 있는 사회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도구들의 총체 - 과 관련을 맺으며, 주관적 의미는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아실현과 관련된다. 따라서 노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노동의 주관적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서 계획적이고도 이성적인 방법으로 활동하는 주체로서의 노동하는 인간이며, 이러한 인간의 노동 활동은 노동의 객관적인 내용과는 무관하게 인간성을 고양하는 데 이바지해야 하고, 바로 그 인간성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간이 되라는 소명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위에서 언급된 창세기 해석을 더욱 발전시킨다. 만일 하느님께서 인간에 위임한 것이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공동 창조주’로서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라면, 인간 노동의 윤리적 평가의 기준들은 물질적 결과나 노동 그 자체의 내용보다는 노동의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서의 인간 존엄성 안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곧 인간 노동의 내용이나 결과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노동을 통한 활동은 “인간의 인간성을 구현하고, 바로 그 인간성 때문에 인간에게만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6항)는 것이다. 교황이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일 “천부적인 이성적인 방법으로 행동할 수 있고 또 자신에 대해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6항)라면 인간의 노동은 노동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자신을 자기완성의 길로 이끄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제3부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현대 사회에서 극렬하게 나타나고 있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긴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러한 긴장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극복에 대한 윤리적 지침을 제공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산업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중대한 오류는 자본을 노동보다 우선적인 위치에 두면서 노동과 대립되는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자본과 노동 사이의 투쟁이란 “소수이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기업주나 생산 수단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과,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해 단지 노동으로만 생산 과정에 참여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투쟁을 말한다”(11항).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기업주(사용자)의 자의에 맡겨야만 했고, 기업주들은 최대 이윤 추구의 원리에 따라 고용인들의 노동에 대해 가능한 적은 임금을 책정하려고 하는 데에서 이러한 긴장과 투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기업주들의 이러한 행위를 착취로 여기게 되며, 이러한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동자들은 반대 운동을 조직하게 되면서, 역사 안에 소위 계급투쟁의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갈등과 투쟁에 대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라는 기본 원리를 강조하면서 그러한 갈등이 반드시 극복되어야할 과제임을 역설한다. 생산에 있어서 주요동인(主要動因)은 노동이며, 생산 수단으로서의 자본은 단순히 도구적인 원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자본이 노동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하는 인간’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즉 노동과 자본 사이의 본질적인 대립은 없다는 전통적인 주제를 발전시킨다. 사실 노동과 노동의 도구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기에 투쟁보다는 화해가 절실히 요구되며, 이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노동 계급과 자본가를 화해시킬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 또는 이윤에 참여하거나 소위 노동에 의한 주권 소유 등 ‘노동 수단의 공동 소유’와도 같은 제도가 제안된다(14항). 교황은 특히 노동자들의 삶에서 인간의 노동이 단순히 경제적 목적에만 종속되는 근본적 오류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과,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 노동에 관련된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면서 그 전제 조건으로 노동의 인격적인 가치를 부여해 주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원리’를 강조한다(15항). 

 

제4부는 인권의 맥락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다룬다. 노동은 인간의 편에서 볼 때 하나의 책임이며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에 노동과 관련하여 각자는 이러한 의무에 상응하는 도덕적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교황은 공산주의 사회를 겨냥하면서 직접 고용주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노동자들은 직접 고용주와의 계약에 있어서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 재능에 가장 적합한 분야에서의 노동에 종사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노동자들이 원한다면 직업을 바꿀 수 있는 권리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황은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해서는 간접 고용주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노동 규약을 만들고, 산업 개발을 증진시키며, 노동자들을 위한 훈련 및 재훈련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주택을 건설하고 유용한 교통 시설을 갖추는 일 등이 바로 간접 고용주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노동자들의 객관적 권리로서의 ‘노동의 권리’,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 ‘사회보장 등의 사회적 혜택을 받을 권리’,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파업의 권리’를 다룬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여성의 노동(19항)과 농업 노동자(21항) 그리고 장애자들의 노동(22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모두 인간으로서의 노동자 권리의 측면에서 예외가 없으며, 따라서 노동의 세계에서 흔히 소외되기 쉬운 이들의 문제를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노동의 영성(24~47항)이 다루어진다. 

 

노동의 영성에 있어서의 핵심은 인간의 노동이 창조주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노동은 땀을 흘리기 위해, 그리고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며, 이렇게 땀을 흘리는 노고는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이 땅에 사셨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축복으로 변화되며, 따라서 수고로서의 노동은 이제 구원되었고, 이미 구원된 세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곧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참여하며,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제공해 주며, 노동하는 인간의 참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6일, 이동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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