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
(백)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부활의 영성이 레지오 영성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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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06 ㅣ No.409

[레지오 영성] 부활의 영성이 레지오 영성 되도록 하자

 

 

레지오는 진심으로 교회의 중심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레지오는 교회 신앙적 활동의 중심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성모님과 함께 레지오로 하여금 온전히 예수님께 중점을 두고, 그 분 안에 머무르고, 그 분 안에 우리의 집을 만들어, 그 곳에서 쉬고, 걱정 없이 완전한 사랑을 하도록 해 줍니다. 레지오는 예외 없이 모든 영혼의 구원에 참여하는 교회의 사도직 활동의 중심에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모든 면에서 교회의 중심에 위치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파스카의 신비를 가능한 최대한 깊이 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부활의 은총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내적 삶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성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단어는 구약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신약에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것으로, 바로 “알렐루야”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로 말하면 “하느님께 찬미 드립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강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절대적인 희망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4세기 히포의 주교님이셨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교구민들에게, “우리는 부활의 백성이며, 알렐루야는 우리의 노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교구와 각 본당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구성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며, 전 세계 레지오의 쁘레시디움들과 그들의 상급 평의회 구성원들에게도 실제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알렐루야가 훌륭한 환호성이고, 모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인 것일까요? 

 

우리가 빈 무덤에 도착했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분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톨릭 신앙의 중심 진리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한 번 들어봅시다.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토 15)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이 된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하심을 증언하는데 있어 전문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영성과 레지오의 영성은 부활하신 주님 신비체의 영성과 삶 

 

레지오 정신 중에서 그렇게 많이 강조되고, 상훈에도 들어있는 우리 믿음에 있어 가장 귀중한 진리 중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의 정신으로 성모님과 일치하여 실질적이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수행하며, 그 활동 대상자와 동료 단원들 안에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우리 주님을 다시금 뵙고 섬기듯이 한다.’ 이 문장은 프랭크 더프의 뛰어난 영적 모습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프랭크 더프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주님께서 그들의 모습으로 완전하게 변모하신 것처럼 보이던 장소에서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서 보았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훌륭한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의 특별한 도움으로 차지하고자 노력하는 목표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웃 안에서만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서도 볼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요약하면 부활의 영성과 레지오의 영성은 부활하신 주님 신비체의 영성과 삶인 것입니다. 

 

부활은 2000년 전에 일어난 단순한 과거의 사실이 아니며,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 안에, 여기 우리를 위해 오늘도 현존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비체의 교리이며, 레지오 정신과 삶에 있어 아주 소중한 것이고,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도직 활동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해야 

 

그러면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왜 그것이 절대 그치지 않는 알렐루야를 탄생시키는 것일까요? 우리 그리스도 신앙은 무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덤은 모든 것이 죽어서 묻힌 곳이고 인간에게는 미래가 없고, 마지막이며 돌이킬 수 없는 최종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계시인 것입니다. 

 

죽음 뒤에 삶이 있으며, 영원한 삶과 영원한 알렐루야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쁨의 근본적인 이유이며, 우리의 절대적인 희망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살아계시며,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살고, 그리고 우리가 그분 교회의 신비체 안에서 살도록 허락한다면, 하늘나라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동안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부활주간 동안 성찬식에서 봉독하는 사도행전의 주요 주제인 것 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탄생을 가져온 부활 신비의 진리와 실체에 보다 더 깊숙하게 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훈화에서 저는 모든 종류의 사도직 활동은 반드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해야 하며 파스카 신비의 과정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도 반드시 포함 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이 두 가지 진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다른 것이 없이는 또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끔 비가톨릭 형제, 자매들, 그 중에서도 특히 회교도 친구들이 “왜 우리는 공포스럽고 잔혹한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죽음을 골라 그것을 영광의 상징처럼 착용하느냐?” 라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된 이유는 십자가상의 존재는 인간을 만드신 하느님이며, 그 분께서는 우리 불쌍한 죄인들에 대한 무한하고, 열정적이며, 진실한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 주시며, 사실 모든 것을 이미 우리를 위해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교본의 많은 곳에서 발견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표지는 희망의 징표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부분에서 몇 줄 인용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사업은 주님 자신의 표지, 즉 ‘십자가’ 표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십자가 표지가 찍히지 않으면 활동의 초자연적 특성이 흐려지며, 참된 성과를 얻기도 힘들다. 

 

우리 함께 부활의 믿음을 선포합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7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OP 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역 이재호 스테파노(대구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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