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자비의 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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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 “자비의 성사”
저는 지난 번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선포하신 특별한 자비의 희년을 미리 앞서서 준비하기 위한 사전 성찰을 제안하였습니다. 저는 희년이 전체 교회와 특별히 레지오에 대한 큰 은총과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짧은 성찰을 통해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을 통해 요약하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자비는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강력한 선포와 증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하느님 자비의 증인이 되고, 모든 사람들과 세계에 대한 희망의 원천이 되는데 동참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지오 역시 자신의 내적 삶과 모든 사도직의 가장 중심에 하느님의 자비가 놓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자비의 성사와 자비의 희년 속에서 그 자비의 성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시 한 번 화해의 성사를 중심에 위치시킵시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 자비의 원대함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합시다. 그 성사는 모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내적인 평화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고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도, ‘간단히 말해서, 고해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이든, 아무 관계없이, 언제나 최고의 표징인 자비에로 초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 역시 어디서든 언제나 하느님 자비의 표징들에 초대되고 있으며, 단원들은 이 성사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데 있어서 숙련자들이 되어야 하고, 또한 이 평화의 성사 속에서 용서해 주고 계시는 현존하는 그리스도께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끄는데 있어서 전문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은 자비의 성사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또한 고해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자비를 청한 가운데 회개를 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훌륭한 고해자들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이 장엄한 성사 속에서 용서해 주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총 충만한 행동을 습관적으로 실천하면서 우리 자신을 성장시켜 왔다면 이 성사를 아주 불편해 하면서 오랫동안 이 성사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방치해온 사람들에게 이 성사가 주는 평화와 기쁨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서 직접 하신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기쁨은 하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레지오 단원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는 성모님의 도구로서 어떤 사람을 성사, 그 중에 특히 자비의 성사로 돌아오도록 이끌었을 때 너무 기뻐했던 레지오 단원들이 아주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만일 어떤 쁘레시디움 또는 상급 평의회가 일상적인 활동을 게을리 하거나, 또는 사도적인 열정을 잃는다면, 그것은 레지오의 위대한 전통적 활동들 중의 한 가지이며, 레지오의 중심적인 목표이자 임무인 사람들을 찾아 성사생활로 데려오는 활동을 방치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고해성사에 대해 이야기했거나, 또는 이 활동을 우리 쁘레시디움의 진정한 중점으로 추진했던 적이 언제였는지에 대해 자문해 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희년은 모든 등급의 레지오 단체들과 전 세계에 걸쳐 사람들이 성사 속에 계시는 우리의 주님을 만나도록 하여 영혼들을 구원하는 레지오의 전통을 재 점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정으로 우리의 죄보다 더 커
왜 화해의 성사가 그토록 진정으로 특별한 것인가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성사를 통해서 용서해주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위격을 우리가 정말로, 진실로, 개인적으로 만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죄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고뇌가 무한한 자비를 만나 치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첫 번째 말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스도 수난의 완전한 공덕은 우리에게 주어져 우리의 죄들이 용서받게 되었고, 더 나아가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친구로서 우리 주님과 일치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사의 열매는 신심을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 어려움이 종종 발생되곤 합니다. 죄로 인해 받게 되는 영향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년 간 우리가 성서 말씀에 반하거나, 반복적으로 누적해 저지른 모든 죄가 합해져서 주님 자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아주 분명하게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말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저서를 통해 지속적인 가르침을 반복하였습니다. ‘죄의 무거움에 직면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완전함으로 응답하십니다. 자비는 언제나 어떤 죄보다 더 크며, 어느 누구도 늘 용서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제한을 둘 수 없습니다.’ 복되신 콜룸바 마리미언(Blessed Columba Marmion) 또한, ‘하느님의 자비는 무한정으로 우리의 죄보다 더 큰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러면 우리의 주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즉 성령에 반하는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추종하면서, 단 하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어떤 사람의 죄가 하느님의 자비를 넘어선 것이라고 공격을 하는 것 이라고 주장한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의 말씀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가타리나 성녀의 대화집(무아지경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을 대신 한 대화집)에 있는 많은 것 들 중에서 한 문장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이것이다. 바로 거부와 내 자비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들이 저질러온 다른 모든 죄들보다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그러므로 유다의 절망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고, 그 자신의 배신이 했던 것보다 더 내 아들에게 더 큰 모욕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들이 내 자비보다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은 질책을 받을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그들은 마귀들과 함께 단죄 받고, 그 것이 그들에게 영원한 고통이 될 것이다.”
자비는 많은 사람이 접해도 마르지 않는 샘
이미 제게 주어진 시간이 지났으므로 이 고해성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한 번 언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하느님 자비의 신비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 중 한 가지를 여러분에게 남기겠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자비의 선포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는 설득력 있는 자비의 전달자가 될 때에만 권위와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교회는 특히 커다란 희망과 모순된 표징이 함께하는 순간에, 자신의 근본적인 임무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자비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핵심으로 선포하고, 그것으로 살아감으로써 자비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성 삼위의 마음으로부터, 하느님 신비의 깊은 곳으로부터 하느님의 자비라는 큰 강물이 솟아올라 그침 없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자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접하든 관계없이 절대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누구든 언제나 자비를 필요로 할 때는 그것을 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속에서 교회에 대해 언급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거의 대부분 레지오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9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OP 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역 이재호 스테파노(대구 Se. 국제서기)] 0 1,74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