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전주 숲정이와 치명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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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210

전주 숲정이와 치명자산

 

 

'전주 숲정이'(전주시 진북동 1034-1번지)는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소로, 일찍부터 중죄인들의 형장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터로 변모하였다. 1801년에 이순이와 류항검의 가족이 순교한 이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 출신의 김대권(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과 경기도 출신의 신태보(베드로) 등 5명이 5월 29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또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6명이 12월 13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숲정이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사적지였다. 이곳은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열정과 함께 천상의 영복을 얻은 기쁨, 피로 적셔진 진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내내 신자들은 그 자리를 잊을 수 없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은 뒤에도 자주 이곳을 순례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이 숲정이 형장이 교회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에 이명서 성인의 손자 이준명(아나돌)이 숲정이 순교 터를 매입하면서였다. 이후 1935년에는 전동 본당의 이학수(바오로) 회장이 그 자리에 십자가비를 건립하였으며, 1960년에는 이곳 이웃에서 해성 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고, 1968년에는 순교 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다. 또 1984년에는 숲정이 순교 터가 지방 기념물 71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로 1989년에 해성학교가 이전되고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본래의 순교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본래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내(진북동 1144-1번지)에 새로 사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전주시로 들어와 전주천 변에 있는 진북 초등 학교를 찾으면 된다.

 

한편 류항검과 가족들이 순교한 뒤 남아 있는 노비와 인척들은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초남리 너머에 있는 재남리(김제군 이서면과 용지면의 경계 마을) 바우배기에 합장하였다. 그후 전동 본당이 설립되면서 재남리 공소는 이 본당 관할이 되었으며, 초대 본당 주임 보두네 신부는 자주 이 공소를 순방하는 도중에 바우배기의 류항검 가족 무덤을 돌보았다. 그러던 중 1914년 사순 시기에 당 주인이 무덤을 이장하도록 권고하자, 보두네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파묘를 하여 순교자 7구의 유해와 이름이 적힌 사기 접시를 확인하게 되었다. 류항검과 부인 신희, 아들 문석과 조카 중성, 제수 이육희, 그리고 동정부부 류중철과 이순이였다.

 

보두네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7구의 순교자 유해를 작은 항아리에 각각 담고 이름을 써서 달았다. 그런 다음 전동 성당을 지을 때 재목을 구하기 위해 사두었던 성당 동쪽 기린봉(306m) 자락에 있는 '치명자산'(전주시 대성동 산 11번지)에 이들 일곱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장하였으니, 그때가 1914년 4월 19일이었다. 이어 1949년에는 전동 성당 신자들이 치명자산에 십자가 기념비를 건립하고 교구장 김현배 신부의 집전으로 제막식을 가졌으며, 1984년에는 이 지역이 지방 기념물 69호로 지정되었다. 전주교구에서는 이를 계기로 치명자산 개발 계획을 세운 뒤 1988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95년 기념 성당을 완공하였다.

 

지금까지 이곳 사적지에서는 크고 작은 기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그것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발된 류항검, 류중철, 이순이 등의 시복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석양이 질 때 드러나는 이곳 언덕의 기념 십자가 옆에 있는 바위는 순교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과 비슷하다. 이처럼 치명자산은 더 많은 양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기 위해 오늘도 전주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그곳에 서 있다.

 

[사목, 1999년 11월호, pp.120-122, 차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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