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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1998년 제6차 세계 병자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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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1-31 ㅣ No.22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6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

(1998년 2월 11일)


이 사회를 희망의 집으로 바꿉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1. 오늘 1998년 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은 로레토 순례지에서 거행될 것입니다. 순례지로 선택된 이곳은 말씀이 성령의 작용으로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순간을 상기시켜 주며, 강생의 신비에 우리의 시선을 맞추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동정녀께 봉헌된 국제적인 첫 순례지이며,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참된 마리아 중심지”(로레토 순례지의 교황 대리 파스칼레 마키 주교에게 보낸 서한, 1993.8.15.)인 이곳으로 여러 차례 순례를 하면서, 저는 믿음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 수많은 병자에게 언제나 특별한 친밀감을 느껴왔습니다. “더구나, ‘로레토 호칭기도’에서 우리가 ‘병자의 나음’이며 ‘고통받는 이의 위로자’라 부르는 그분의 집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병자들을 더 따뜻하게 맞아주겠습니까?”(위와 같음)

 

그러므로 로레토의 선택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의 오랜 전통과 잘 어울립니다. 이는 신자들이 마리아의 전구를 믿으며 병자들을 위하여 주님께 올리는 기도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이 중요한 행사는 또한 교회 공동체가 말씀의 강생과 같은 구원의 근본 사건과 신비를 드러내는 성화(icon)인 거룩한 집 앞에 서서 잠시 경건하게 묵상하며, 사람의 마음을 희망의 거처로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빛과 힘을 받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2.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요한 1,14). 로레토 순례지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요한 복음사가께서 하신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집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강생 때에 가장 드높이 드러났던 아버지의 사랑(요한 3,16 참조)을 우리에게 특별히 힘주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을 찾아 나서시어 사람이 되셨고,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한계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으시고 ……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6-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없애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나누며 함께 짊어지고 고통에 구원의 가치를 부여하시고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조건의 한계와 그 슬픔에 함께하심으로써 인간 조건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은 병자의 치유에서 이미 예표되었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지평을 열어줍니다.

 

3. “성령의 역사로.” 강생의 신비는 성령의 역사(役事)입니다.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안에서 “사랑의 위격이시며 창조되지 않은 선물이시고 …… 창조 질서 안에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모든 은총의 영원한 근원이시며, 은총 질서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직접 원리이시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체이십니다”(「생명을 주시는 주님」, 34항). 1998년은 2000년 대희년 직접 준비의 둘째 해로 성령께 바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부어진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감지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 4,6). 성령께서는 모든 인류, 특히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고”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는”(로마 8,23 참조)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의 수호자이십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전례 부속가에서 선포하듯이,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참으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은총의 주님”, “마음의 빛”이 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쳤을 때 “휴식”을, “무더울” 때 “그늘”을, 근심이 있을 때나 싸울 때, 위험할 때 언제나 “위로”를 주시는 “영혼의 기쁜 손님”이 되십니다.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사람의 마음에 그것을 극복할 힘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4.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 거룩한 집의 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님의 어머니께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의와 협력을 나타내셨던 말씀, 기꺼이 주님의 뜻에 맡기는 “보소서”(ecce), 신뢰의 순종으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하신 그 말씀의 메아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합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깨끗한 그릇이 되시어 평생 동안 당신 아들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셨습니다.

 

대희년 준비 둘째 해인 올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소리에 따라 순종한 여인, 조용하고 사려깊은 여인, 아브라함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하며’(로마 4,18 참조)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던 희망의 여인으로서”(「제삼천년기」, 48항) 마리아를 묵상하고 그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당신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 밝히심으로써 마리아께서는 주님의 인간 사랑에 봉사하는 길을 아셨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모범으로써, 인간이 하느님의 주권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완전한 개방의 자세를 갖추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리하여 동정녀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굽어보시는 자비의 성화(icon)가 되십니다. 천사의 전갈을 듣고 난 다음, 뜻깊게도 동정녀께서는 서둘러 엘리사벳의 시중을 들러 가셨습니다. 그뒤 가나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인 신랑신부를 도와달라는 호소를 들으시고 동정녀께서는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주는 놀라운 거울이 되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심으로써 동정 마리아의 봉사는 가장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때 십자가 아래에서 동정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는 사명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병자의 나음이신 동정 마리아를 바라보며 많은 그리스도인은 수세기에 걸쳐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병자들을 돌보는 법을 배워왔습니다.

 

5. 로레토의 거룩한 집이 일깨워 주는 강생의 신비에 대한 묵상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대한 믿음을 북돋아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고 사람들의 마음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셨습니다(2베드 3,13 참조). 고통과 대립, 이기와 폭력으로 찢겨진 세상에서, 신앙인은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로마 8,22)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며, 말과 행동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황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저는 신자들에게, “흔히 우리 눈에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이 세기의 마지막 부분에 현존하는 희망의 표징들”을 높이 평가하고 “인간 생명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의 진보, 특히 의학의 진보”(46항)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물리쳐 없애고 고통을 더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중심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갖가지 상황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낌없는 봉사가 아닌 이익의 관점에서 의료 사업을 보고, 보건 문제에서 가정을 방치해 두고,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부당한 무시와 차별을 받도록 강요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번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저는 교회 공동체가 신자들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과 협력하여 인간 사회를 ‘희망의 집’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새로이 하자고 당부합니다.

 

6. 그렇게 하려면 교회 공동체는 친교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말씀 경청과 기도와 성사 거행을 통하여 신자들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될 때 비로소 형제적 연대와 물질의 나눔이 증대되며, 성 바오로께서 고린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깨워 주신 사실이 현실로 드러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합니다”(1고린 12,26).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교회는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친교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교구와 본당을 비롯하여 교회의 모든 공동체는 건강과 질병의 문제들을 복음에 비추어 해석하고, 임신에서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수호하고 그 진보를 장려하며,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을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적 병폐의 희생자들, 불구자들, 만성병 환자들, 죽어가는 이들, 정치적 사회적 혼란으로 자기 땅을 떠나 불안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에게서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보며 진정한 복음 봉사를 실천하는 공동체야말로 용감하게 부활을 선포하고 실제로 ‘하느님 나라의 결정적인 도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7. 사랑하는 병자 여러분, 교회 공동체 안에는 여러분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통의 상황, 그리고 건강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이 여러분을 희망의 가치에 특별히 민감하게 만듭니다. 저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비는 여러분의 열망을 마리아의 전구에 맡기며, 그러한 열망을 그리스도의 선물인 희망이라는 향주덕으로 비추고 높여가기를 당부합니다.

 

희망은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고통을 복음화와 구속의 계기로, 구원의 길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고통받는 사람들도 개인과 사회 자체를 위하여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과,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부름받고 있으며, 또한 그럼으로써 교회의 성화와 건설을 위한 힘이 되도록 부름받고 있기 때문입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 54항; 회칙 「구원에 이르는 고통」, 23항 참조). 성령께서 그 안에 머무르시는 여러분의 고통, 그리스도의 고통을 따라 겪고 있는 여러분의 고통은 부활의 힘찬 승리를 선포할 것입니다. 

 

8. 거룩한 집에 대한 묵상은 시련을 겪었던 나자렛 성가정을 자연히 생각나게 합니다. 전례의 찬미가에서는 “고통을 겪는”(「성무일도」, 성가정 축일의 말씀기도) 성가정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거룩하고 감미로운 거처”(위와 같음)는 가장 뚜렷한 기쁨으로 즐거운 곳이 됩니다.

 

저는 그 거룩한 집에서 주는 평온과 믿음의 선물이 고통으로 상처입은 모든 가정에 전달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교회와 시민 공동체가 가족의 질병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수많은 가정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아 주도록 권유하며, 병자들을 찾아보라고 하신 주님의 분부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병자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하신 명령임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이루어지고 신앙과 기도와 성사로 힘을 얻는 가족들의 간호는 병자를 위하여 더없이 귀중한 치료 수단으로 변화되고, 모든 이에게 고귀한 인간적 영신적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9. 이러한 맥락에서, 제 마음은 특별히, 전문인이든 자원 봉사자든, 언제나 병자들을 가까이서 돌보는 의료인들과 보건 사목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권고합니다. 몰이해와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의 고귀한 이상을 간직하십시오. 보건 의료계에 헌신한다는 것은 질병이라는 악과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의 질을 증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살아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임을 깨닫고, 힘과 활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혹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허약하고 쇠잔한 모습을 한 인간의 몸을 통해서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인간의 초월적 가치를 선포합니다. 고통과 질병과 노쇠를 겪으면서도 인간 존엄은 결코 손상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힘입어, 주님께서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필립 3,21) 그 순간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1데살 4,13) 사람들과는 달리, 고통의 순간이 곧 새로운 생명과 은총과 부활의 기회임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료 봉사로써 이러한 확신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곧 기도와 성사를 통하여 전달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나누고 따르는 역량입니다. 병자들과 임종자들을 돌보는 것, 쇠잔해지는 외적 인간을 도와 내적 인간이 날로 새로워지게 하는 것(2고린 4,16 참조)이야말로 주님께서 파스카 신비로써 인간 역사에 들여오셨고 시간의 종말에 충만하게 완결될 저 부활의 도정에 협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1베드 3,15 참조)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통받는 사람의 얼굴에서 닦아주는 그 모든 눈물 안에서, 우리는 이미 마지막 때의 선포를 듣고 종말의 충만을 미리 맛봅니다(묵시 21,4; 이사 25,8 참조).

 

이를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선의의 모든 사람과 협력하여 병자들을 돌보고 삶의 질을 증진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다른 도덕관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정중하면서도 건실한 토론을 하며, 환경법 제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보건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지지하며, 부유한 민족들과 가난한 민족들 사이의 더 큰 연대를 증진함으로써 인간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이 어려운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제삼천년기」, 46항 참조).

 

10. 고통받는 이의 위로자이신 성모 마리아께 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보건 의료인들 그리고 병자 간호에 아낌없이 헌신하는 모든 이를 맡겨드립니다.

 

로레토의 성모님, 

저희는 믿는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신 동정 성모님, 

당신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실 때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삼천년기의 새벽을 기다릴 수 있도록

저희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당신의 보호로 저희를 비관주의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이 시대의 어둠 가운데서도 

주님 현존의 빛나는 자취를 볼 수 있게 하소서.

어머니이신 당신의 사랑에 저희는 

병자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희망을 맡겨드립니다. 

그들의 상처에 위로와 희망의 약을 자비로이 내려주소서. 

그들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과 하나 되어 

구원의 도구로 변화되게 하소서.

저희 삶이 당신을 본받아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끝없는 찬양이 되게 해주소서. 

저희가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통받는 이들을 열심히 돕고

외로운 이들과 기꺼이 함께하며

인간의 비극을 끝맺는 희망의 건설자가 되게 하소서.

저희가 가는 길목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을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아멘.

 

바티칸에서

1997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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