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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27: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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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4 ㅣ No.73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27)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⑦


성녀 데레사 「자서전」 읽고 가톨릭 신앙 귀의



에디트 슈타인이 가톨릭 신앙으로 결정적인 회심을 하도록 이끈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


신앙에 다가서기 시작하다

동료 라이나흐의 죽음 이후, 1918년을 기점으로 에디트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진리를 추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에디트는 이런 내적 여정에서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성녀가 1918년 2월 동료 철학자인 로만 인가르덴에게 보낸 편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에디트는 그에게 계속해서 자신은 역사 안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고 전하며 루카 복음 22장 22절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에 종교와 역사는 서로 함께 진행된다고 결론 내립니다. 우리는 이 편지에서 드러나는 에디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선, 에디트가 이미 이때부터 복음서를 읽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복음에 비추어 인간과 관련된 다양한 물음을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에디트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종교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디트가 점차 신앙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1918년 가을, 로만 인가르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보다 좀 더 신앙을 향해 나아간 성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에디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당시 에디트는 그리스도교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시 성녀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새로운 탄생’이라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1918년 말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에디트가 진지하게 그리스도교 신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명시적으로 자신이 신자라고 고백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성녀가 썼던 작품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그가 이미 신앙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집필한 작품 가운데 「심리적 인과성」에서 에디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신비로운 신앙 체험에 언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 에디트는 이미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통한 결정적 회심

1918년 말부터 이미 에디트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1922년에 가서의 일입니다. 이 두 시기 사이의 4년이란 공백기 동안, 에디트가 망설였던 것은 어떤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 귀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게 해준 결정적 체험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쓴 「자서전」과의 만남이었습니다. 1922년 에디트는 독일 서남부의 밤베르그차베른에 있는 동료 헤드비히의 집에 머물며 밤새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화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마을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고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입교 기간을 거쳐야 했기에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에디트에게 성녀 데레사의 의미

여기서 우리는 이 시기에 성녀 데레사가 했던 중요한 역할을 보게 됩니다. 물론 성녀 데레사가 에디트에게 직접 신앙을 가져다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에디트는 이미 신앙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녀 데레사는 에디트에게 어떻게 신앙을 펼쳐내고 성숙시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은 에디트 슈타인으로 하여금 가톨릭 교회 내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에게서 다른 성인들로부터는 보지 못했던 깊은 하느님 체험을 보았으며 이는 에디트로 하여금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하게 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성녀 데레사는 에디트에게 세 가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첫째, 에디트에게 있어서 성녀 데레사는 여성의 품위를 옹호하고 투쟁했던 여인이자 진지하게 진리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에게서 깊은 하느님 체험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의 삶과 그분이 했던 하느님 체험에서 자신이 살고 있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반추하는 가운데 심화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에디트가 보았던 성녀 데레사의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하느님이었습니다.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의 하느님 체험에서 바로 이 점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느님 체험

에디트 슈타인은 성녀 데레사에게서 바로 이 세 가지 요소를 보았고, 이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구분 짓는 명확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당시 개신교는 하느님의 신비 체험에 대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개신교 사상의 기본적인 골격은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제시하는 비전에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유 역시 구원 역사의 한 축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비록 원죄로 인해 타격을 받았지만 나름대로의 자율권을 갖고 있으며 건강한 자유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 작용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디트는 성녀 데레사의 하느님 체험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운데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유는 에디트가 깊이 있게 연구했던 인간학에서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성녀 데레사와 에디트는 같은 선상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성녀 데레사와의 만남은 에디트로 하여금 단순히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멜 수녀가 되겠다는 원의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10월 2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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