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25: 내적 감각의 정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01 ㅣ No.734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25) 내적 감각의 정화


자극적 상상과 기억도 신앙생활 걸림돌



수덕 생활의 발전을 통해 완덕에 나아가기 위해서 외적 감각을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면, 다음으로 내적 감각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반드시 외적 감각을 완벽하게 정화하고 난 후에 내적 감각을 정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 감각을 어느 정도 정화하였다고 느낄 때, 함께 내적 감각도 정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외적 감각의 정화 정도에 따라 내적 감각의 정화가 다소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정화가 필요한 대표적인 내적 감각으로 상상력과 기억력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가치 중립적인 내적 감각입니다.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믿음에 커다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 발전에 결정적인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상상력을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태 13,34).

신앙과 관련된 내용이건 일반적인 상황과 관련된 내용이건 비유를 들어 설명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서는 사전에 긍정적 경험이 축적돼 있어야만 합니다. 사전 경험이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라면 올바른 방향으로 상상할 수 없어 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상력의 정화가 필요합니다.

상상력 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외적 감각을 제대로 통제해야 합니다. 특히 시각을 더욱 잘 제어해야만 합니다. 사실 상상의 나래 속에서 떠오르는 소재들은 사전에 눈으로 보고 익힌 장면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번도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상상으로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장면들은 가능한 보지 않는 것이 영적 여정의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책을 읽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표현된 내용이 인간의 이성을 적당하게 자극하면 바로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경험의 조각들을 논리적으로 엮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따라서 독서물을 선택할 때도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선택해야지, 나쁜 영향을 주거나 죄에 떨어지는 방향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기억력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싫든 좋든 간에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때로는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꾸준히 기억하기도 합니다. 이때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은 심리적으로도 좋지 않게 작용해 영적 발전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지난날 지은 죄나 받았던 상처들을 계속 기억 속에 간직한다면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듯이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영적 발전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기억에서 지워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신앙 안에서 하느님께 받은 은총의 체험이나 그리스도인이 주님 안에 두는 희망 등은 늘 기억 속에 간직하면서 되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긍정적 체험을 기억하는 것은 영적 발전에 대단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외적, 내적 감각을 효과적으로 정화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마지막으로 감성과 지성 그리고 의지를 정화해야만 합니다. 감성적 욕구를 정화하지 못하면 육욕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성을 정화하지 못하면 사랑으로 활성화되는 믿음의 빛으로 조명받지 못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받게 됩니다.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만 있는 이성적 욕구라고 하는 의지를 정화하지 못하면 의지가 약해지면서 하느님을 바라보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 사랑하게 됩니다. 결국 정화돼야 할 대상들은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 한 대상의 정화 결과가 다른 대상의 정화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가톨릭 교회가 신앙인들의 볼거리와 읽을거리를 사전에 검열하거나 금지 목록을 작성했던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과도한 간섭이 아니라, 신앙인의 영적 유익을 위한 최선의 조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1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1,36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