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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부활 성야-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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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4-14 ㅣ No.317

부 활 성 야 ( 復活聖夜 )

 

    1독서 : 창세기 1,1-2,2              3독서: 출애 14,15-15,1    5독서: 이사 55,1-11

    7독서 : 에제키엘 36,16-17ㄱ.18-28   신약독서: 로마 6,3-11 복 음: 루가 24,1-12

 

2001. 4. 14. (토요일)

 

주제 : 우리 시대의 부활은 무엇일까?

 

알렐루야!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참으로 부활 하셨도다.

이 자리에 함께 여러분과 여러분이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축제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전혀 반복될 것 같지 않은 것을 한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그 대표적인 것은 우리가 신앙에서 기억하는 '부활축제'라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처음 시도된 부활은 준비하는 사람에 따라서 커다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고, 좀처럼 우리 삶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지는 사실은 분명하겠지만, 우리가 삶으로 체득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부활은 아무나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절로 기억하기로 정해진 날짜가 있으니, 그 날짜가 되면 누구나 부활을 노래하겠지만 그 참된 의미를 깨달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의 땅 '에집트'에서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400년이었고, 어렵사리 홍해를 건넌 다음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40년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제국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공을 들인 시간은 3년이었으며, 예수님의 일생과 공생활 기간을 한 해로 줄여서 기억하는 우리가 이 부활절을 준비하는 데 걸린 기간도 46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길이의 시간과 의미 있는 일들을 지낸 다음에 맞이하는 것이 오늘 부활축제의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을 지내며 합당한 자세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참된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약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창조에 대한 이야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땅을 건너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는 이야기,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삶에 일치하려면 올바른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선포,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이 살아야 할 삶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로마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루가 복음을 통해서는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대신에 시신을 모셨던 무덤이 감쪽같이 비어버린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업적을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이 작은 몸이 가진 머리로써 하느님의 지혜를 담으려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앞세우며 고개를 가로 젖기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삶에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일은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면 그저 부정해버리기 쉬운 세상에서 인간의 힘은 자꾸만 더 약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발전하고 곡식의 생산량이 증가해도 못 먹고 굶주리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고, 경제가 발전해서 잘 살게 되었다고 노래해도 상대적인 빈곤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면서도 우리는 여차하면 그 책임을 하느님께 떠넘기려고 애씁니다. 그래야 속이 편해지는지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던 대로 '아담과 하와가 범했던 원죄'는 꼭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죄가 의미 있는 것은 구원자로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가 범하는 죄는 구원자가 새롭게 오시는 데는 아무런 의미 없는 죄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2001년의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하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오늘은 부활을 노래하고, 내일이면 다시 치열한 생존의 현장으로 발길을 돌려야하는 우리 입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건이 되려면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원칙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지내고 있는지, 오늘과는 전혀 다른 내일을 만들 것인지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선택입니다.

 

2001년을 지내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희망의 모습으로 부활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 다음 모습은 우리가 부활의 선물을 어떤 모양으로 받을 것인지 그 차이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우리 마음으로도 함께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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