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연중 23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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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9-08 ㅣ No.344

연중 제 23 주일 (다해)

 

        지혜서 9,13-18       필레몬 8ㄱ-10.12-17        루가 14,25-33

    2001. 9. 9.

 

주제 : 삶의 첫 번째 기준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순교자 성월 9월의 둘째 주일, 연중 23 주일입니다. 본당에서는 이 미사를 마치고 가까운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을 기억하는 곳’으로 성지순례를 위해 출발할 것입니다.  이 미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이 본당의 성지순례 행사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신앙의 선조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삶의 자세를 본받아 힘든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받아들인 신앙을 말로 설명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오해와 박해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을 보여주신 분들입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 바치는 순교’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앙을 증거해 보라고 목숨을 요구하는 세상도 아니고, 신앙을 설명한다고 모든 것을 전폐하고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의 우리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말고 나 혼자라도 잘 살면 되지, 자기 구원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나?’하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과거에도 항상 같은 반성이 있기는 했겠습니다만, 특히 21세기는 과학의 힘이 매우 발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설치는 시기입니다. 하느님이 하셨다고 신앙에서 고백하는 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만 빼고, 사람의 힘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듯 합니다.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도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이 지혜를 받았음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그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분으로 아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될 것입니다.  기적이란 결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망대를 짓는 사람'과 '전쟁하려고 준비하는 임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모습을 있는 사실 그대로 살필 수 있어야 적어도 실패는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망대를 짓는 사람은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내다보고 자신의 재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 때문에 하는 일이고, 전쟁에 임하려는 임금은 상대방을 제압해 이기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자신이 처한 현실은 잊어버리고 욕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은 좋고 훌륭한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그 몸을 꾸미고 가꾸는 것이 첫 번째 인생의 목적이 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만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는다면, 욕심만 앞세우는 사람이 되어 완성하지 못할 일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하느님이 만들어놓으시고 사람더러 관리하라고 한 세상을 마치도 내가 만든 것처럼 이리저리 바꾸어놓으려고 하는 어리석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길을 선택하거나 현명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짧은 순간 이 세상을 채우다가 사라질 육체에 첫 번째 삶의 목적을 둘 것인지, 아니면 육체를 올바로 다스릴 영혼의 힘을 성장시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엄청나게 놀라운 일을 해야만 하느님이 기뻐하실 일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올바른 길을 걸음으로써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 삶을 통하여 기적을 만들 수 있는 태도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옛날 우리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순교의 삶을 오늘날 현실에서 우리가 다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면 바오로 사도가 당신의 편지에서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것처럼, '마지못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선행을 해야 하며, 세상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을 지내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이웃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려고 하는지 한번쯤 점검해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선행을 할 때, 그것이 기꺼운 마음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억지로 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의 얼굴은 내 행동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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