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대림 3 주일-나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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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1 ㅣ No.380

대림 3 주일 (나해)

 

        이사야 61,1-2a.10-11   1데살로니카 5,16-24  요한 1,6-8.19-28

    

   2002. 12. 15.

 

주제 : 기쁨과 자비를 전하는 자가 할일

 

한 주간 안녕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파견해주셨음을 기억하는 축제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오늘은 대림 3주일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그 축제일을 정성껏 준비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아드님을 맞아들이는 일을 준비하는 정성의 크기를 먼저 보실 하느님은 우리의 준비에 합당한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올바른 일은 해야 할 일에 불만을 갖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 현실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그것이 적극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은 알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진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전하는 사람이 겪을 고난에 대하여 듣습니다.  물론 등장인물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눈에 띌만한 특별한 복장을 한 것도 아닌 사람으로 광야와 요르단 강에서 큰 소리로 하느님의 뜻을 외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세례자 요한의 소리에 겁을 먹었던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의 정체를 묻는 질문으로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시비를 겁니다. 그가 하는 말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소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생각은 멀리한 채 ‘과연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네가 과연 그런 심판의 소리를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냐?,  그렇게 버릇없는 소리를 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 것입니다.  독기를 잔뜩 품었던 그들의 질문에 세례자 요한은 큰소리 대신 오히려 겸손하게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심판을 행하실 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은 없어도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내가 한 말은 분명하다’고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의 생각도 같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변화돼야 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에게나 모두 할 말은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가 변화돼야 할 요소도 분명 있습니다. 세상의 변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는 말을 하면 그만인 사람’이라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고,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내가 할 일은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 그 다음은 일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변혁은 혼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 그대로 하기 힘든 일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런 비판의 소리를 들을 때, 차라리 내가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욕먹을 대상은 되지 않을 텐데.......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산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세례자 요한은 다가오는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자신감을 세상 사람들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나도록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질투의 눈총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세상이 복잡하고 잘못된 길로 갔다면 그 모습을 어떻게 돌이켜야 하겠습니까?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알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아들은 삶의 방법을 무시합니다.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중요한 것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무시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향해야 할 삶의 길을 제시합니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찢긴 마음을 싸매주는 일,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는 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 말씀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그것은 따로 판단할 일입니다.  자기 삶을 판단할 자는 자기 자신과 하느님뿐이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세상, 믿을 사람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세상, 서로들 자신의 주머니만을 채우려고 애쓰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을 옹졸한 분으로 생각한다면 그 책임도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섞여 있는 세상을 향하여 바오로 사도는 ‘늘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 것’을 부탁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들으면서 과연 그렇게 살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고 묻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세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세상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를 파견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기억하며 이 시간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짐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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