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1225-성탄대축일-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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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1 ㅣ No.382

성탄 대축일 [1225] - 성탄 밤 미사

 

        이사야 9,1-6      디도 2,11-14     루가 2,1-14

    

2002. 12. 24. (화요일 밤 10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오늘 성탄절 밤 미사에 오신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분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과 관련된 곳에 성탄이 기쁨이 전해지는 것과 더불어 우리 퇴계원 성당의 공동체에도 이제는 불신과 반목이 사라지고 서로를 이해해주고 서로를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고, 서로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마음이 함께 하기를 오늘 성탄 대축일에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너희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바로 오늘 밤, 아주 오랜 옛날 전에 태어나셨기에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일은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2002년 12월 24일에서 12월 25일에 걸치는 오늘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끊임없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축제를 지냅니다. 그리고 한 해가 가기 전에 하느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다가올 새로운 해에는 하느님을 떠나지 않고 좀 더 성실하고 기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모인 이 시간에 우리는 지난해에 했던 약속들을 과연 제대로 지켰는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내왔는지를 돌이킬 것입니다.  현실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오늘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통한 구원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다시 한번 더 기도합니다.

 

이 미사 전에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형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이 오시는 모습을 기념했고 두 줄로 나와 자신과 가정을 기억하는 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대상들 앞에 우리가 지나친 경배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하고 질문하신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우리가 경배한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 그 대상의 너머에 있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모습은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가 내렸다고 하는 인구조사 명령에 따라 살던 곳을 떠나 조상들의 고향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임신한 여인을 데리고 움직이느라 여러 가지 입장에서 불편했을 요셉은 아기를 가진 마리를 데리로 어쩔 수 없이 동물들이 머무는 마구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기의 탄생을 위한 특별한 장소로 그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루가복음 사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말 그대로,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 일인지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흠숭 받으셔야 할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으로 날 때에 사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존경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에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별히 금테를 두르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아직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가야할 텐데도 모든 사람은 같은 모습으로 와서 유사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세에서 내가 만들어낸 것들의 허울을 벗으로 삼아, 내가 쌓아놓은 업적을 등에 진 무거운 몸으로, 목에 힘을 잔뜩 넣고 다른 사람이 먼저 내 앞에 고개를 숙이고 내가 위대한 사람임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들 가운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자세는 바꿔야 할 일입니다.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연약한 인간으로 오셨음을 기억하는 오늘 합당한 자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질병과 고통, 슬픔과 아쉬움, 의리와 배반 그리고 탄생과 죽음을 거쳐야 할 존재로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와 같은 모습, 때로는 우리보다 더 힘든 삶을 사실 분으로 태어나신 아기를 기억하여 경배하고 그분이 보인 삶을 재현하기로 다짐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가장 먼저 증인으로 삼은 사람들은 들판에 있던 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남들 앞에서 뭔가를 가르치거나 인사를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자기 눈으로 보고 곧 이어 행동으로 옮길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기쁘고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다는 일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허름한 모습, 특별히 눈에 띨 것 없는 초라함, 큰 것과 경배를 요구하지 않는 그분이 하려던 일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화합하게 하고 손을 잡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분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잘못 대하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서 그분의 탄생을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의 평화를 위한 임무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가야 합니다.

 

2002년 12월,  오늘의 성탄 축제일이 우리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를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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