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연중 5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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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2 ㅣ No.390

연중 5 주일 (나해)

        욥 7,1-4.6-7        1고린 9,16-19.22-23        마르코 1,29-39  

    2003. 2. 9.

주제 : 나의 생활.......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첫독서 욥기에서 ‘인생은 고역(욥7,1)’이라고 보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도 ‘인생을 고해(苦海),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생을 이렇게 정리한 배경에는 인생을 바라본 특별한 자세와 있을 터인데, 현실에서 내가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이렇게 규정하는 소리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리는 사람의 생활이 우리가 바라는 것만큼이나 순탄하거나 평탄하지 않다는 소리도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세상살이가 어찌하여 그렇게 힘들어졌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그 세상을 채우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힘든 삶을 지내면서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살도록 놔두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자세를 가진 사람이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는지 응답을 주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그 답을 삶에 그대로 실천하기가 생각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은 연중 5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일상생활은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는지 돌이키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면서 어부 몇 명을 만나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 집에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병자를 만나고 그 병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다음에 있은 예수님의 태도는 신앙인들이 가야할 삶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를 채워주신 다음 그들의 호응에 응답해서 행동하는 것 대신에 당신이 가야 할 길을 그대로 갑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분이었으나,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입니다.  같은 모양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콩 한쪽을 가지면 나눠먹으라’는 것이 어릴 때 듣고 자라온 당연한 삶의 길이지만, 요즘 세상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소식’의 소재가 됩니다. 당연한 선행을 실천하는 일이 새로운 소식의 재료가 된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른 길에서 한참이나 멀어져 있다는 소리입니다.  

 

서로들 자기 힘 아래 사람들을 모으려하고 그렇게 모은 사람들을 바탕으로 해서 각자가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이 변해야 한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이 바로 2003년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미국은 자기가 가진 힘이 세다고 해서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또한 미국은 자기가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은 북한이 자기보다 강한 힘을 키우려고 한다고 해서 못살게 굴고 괴롭힙니다.  또한 북한은 체제의 안전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은 무시하며 힘으로 내리누르고 헛된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감싸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현실을 바꾸어줄 기적을 베푼 다음, 사람들이 환호하는 자리를 피해 힘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기도를 하겠다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행동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세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내 맘대로’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힘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과 별 차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자기 힘만 아는 사람들이 채우는 세상은 욥기에 나오는 것처럼 ‘허무하고 덧없이 빨리 지나가는 헛된 세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은 ‘희망은 없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별로 달라질 것 없으며 이리되나 저리되나 아무런 차이 없는 자포자기의 세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힘겨운 세상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오로 사도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질 때에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느라고 동으로 서로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했기에 특별히 행복할 것도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이 주신 사명으로 이해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고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힘겨운 현실에서 지내는 우리 가운데 바오로 사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밝아질 것이며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2003년은 경제도 얼어붙고 돈도 돌지 않으며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진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도 예외는 없겠습니다만, 그 힘든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데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실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부터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행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음 날 새벽, 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을 전하는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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