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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파업,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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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97

파업, 어떻게 볼 것인가?

 

 

1.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주소

 

1987년 6 29 선언 이후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 노사 대등성이 확보된 지 16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업 성향을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사용하는 '피고용자 1,000명당 노동손실일수'(stoppage incidence)를 보면 우리나라는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90년대 초반에는 41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33위였다가 1995-1997년에는 중간순위까지 상승하였으나 외환 위기 이후 다시 하락하기 시작하여 2000년에는 46개국 중 38위에 머물러 노사 갈등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막심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0년의 경우 우리나라는 피고용자 1,000명당 노동손실일수가 40.28일이었는데, 이는 일본(0.28일)과 대만(0.06일)은 물론 영국(8.38일)과 독일(0.13일), 프랑스(11.93일)에 비해서도 현격히 높은 수치이다.

 

이와 같은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 때문에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국제경쟁력도 1995년 25위, 1996년 29위에서 외환 위기 이후인 1998년에는 43위로 하락한 뒤 1999년 46위, 2000년 44위, 2001년 46위, 2002년 47위로 거의 꼴찌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해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계화이다. 세계화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모하여, 세계의 모든 기업이 단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무한경쟁시대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는 기업의 생존, 발전과 근로자의 근로생활의 질적 향상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근접하게 되어 노사는 공동운명체가 되어야 할 당위성이 존재하게 되었다. 

 

무한경쟁시대에 기업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려면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참여 협력적인 관계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사관계는 여전히 심각한 갈등, 배제, 투쟁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와 같은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는 2003년에도 그대로 이어져 국내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국내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외국기업의 국내투자를 가로막아 국가경쟁력 제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파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을 유지 개선하고, 근로자의 복리증진과 기타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항구적인 단체로서 모든 국가에서 합법적인 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교회에서도 노동자들의 자기 보호를 위한 필요성과 더불어 다른 또 하나의 권리, 곧 단결권을 인정하고 있다(「노동하는 인간」, 20항 참조).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와 본원적인 이해관계갈등(inherent conflict of interests)이 발생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바라는 근로자와 생산성 향상과 조직 효율성을 증대시키려는 사용자 간에 경제적인 이해관계의 대립 또는 충돌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사간의 이해갈등은 고용관계에 내재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노사간의 공개적인 갈등(open conflict)은 당사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간주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사간의 갈등은 병리적인 현상이 아닌 정상적인 현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나 노사간 갈등은 그 범위와 빈도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노사관계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에서 온다. 곧 어느 당사자도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근로생활의 질이 발전되는 것과 같이 두 당사자는 많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결국 효율적인 고용관계(employment relations)의 본질은 당사자들이 상호 대립되는 이해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서로 공유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상호 협력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전통적으로 파업을, 노동자들이 목적하는 바를 얻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하여 왔고, 파업을 하더라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행정과 서비스를 마비시킬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정당한 권리를 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상대 집단 특히 고용주들에게 대항하는 최종 수단으로서 파업 또는 작업중지가 있다. 이 방법은 올바른 조건과 정당한 한도 내에서는 합법적인 것이라고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은 파업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어떠한 개인적인 처벌이나 규제를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파업이 합법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파업이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여야 한다. 파업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파업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서 근본적인 공동체 봉사가 문제될 때, 필요하다면 적절한 입법수단을 통해서라도 그러한 봉사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파업무기의 남용은 사회경제생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으며, 이는 노동 자체의 본성에 따른 사회의 공동선의 요구에 상반되는 것이다"(「노동하는 인간」, 20항).

 

파업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수단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파업이 근로자와 기업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서도 그 범위와 빈도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은 최근의 상황을 볼 경우 자명하다. 

 

 

3.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의 원인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주요 경쟁국에 비해 소모적이고 대립적이다. 이는 노사관계에서 평화와 협력의 측면보다는 대립과 투쟁의 측면이 강하여 노사 모두에게 상생(win-win) 관계가 아닌 노사 모두가 지거나(lose-lose) 기껏해야 한 쪽은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win-lose) 관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어떠한 이유로 평화와 협력의 측면보다는 대립과 투쟁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사용자

 

특정기업의 노사관계 성격을 좌우하는 것은 노사 모두이지만, 더욱 중요한 쪽은 사용자이다.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인본주의적 경영을 할 경우 그 기업의 노사관계는 결코 최악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일부 사용자들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거나 노조에 대해 공공연히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던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자 할 경우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태도는 수용, 어쩔 수 없이 수용, 절대거부 등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경영자가 노조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그 기업의 노사관계는 크게 좌우된다. 세 가지 반응 가운데 노조 불인정은 노조를 기업발전을 위한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전근대적인 노동조합관을 의미한다. 

 

사용자의 노조 불인정은 자연히 근로자들과의 극한적인 대립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손실만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노조를 수용하는 경우에도 사용자가 노조를 기업발전을 위한 동반자로 간주하지 않고, 노조집행부에 대한 징계조치, 원격지로의 인사이동, 노조탈퇴 권유 등의 부당노동행위뿐 아니라 무분별한 고소와 고발, 손해배상청구 등 끊임없이 노조를 약화시키려고 한다면 노조가 이에 끊임없이 반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안정을 통한 기업발전도 도모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최고경영진의 전근대적인 인간관은 결과적으로 대립적 투쟁적 노사관계를 낳는 주된 요인이 된다. 일부 사용자는 종업원을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원천으로 인식하기보다는 단지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조직이다. 이와 아울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그 기업과 경영자는 노동자는 물론 사회로부터도 올바른 평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종업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없이 무원칙적으로 대량해고가 이루어졌다. 이는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통한 근로생활의 질 제고라는 '장기결제형 노사관계'보다는 기업과 다른 노동자들의 실정을 도외시하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단기결제형 노사관계'로 내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노동조합

 

교회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비록 생산수단의 소유체제와 생산수단의 경영방식에서 발견되는 모든 결함에 대한 시정을 ─ 사회전체의 공동선이라는 관점에서 ─ 목표로 할 수 있고 또 이를 목표로 해야 하지만, 노동조합이 일종의 '이기주의 집단' 또는 계층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되며, 공동선과 사회정의를 지향하여야 한다."(「노동하는 인간」, 20항)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파업이 남용되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노조는 높은 파업지향성과 지나치게 긴 파업기간(2001년의 경우 31.7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책임있는 경제주체로서의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의 결여는 궁극적으로 노동조합이 기업의 경영상황이나 국민경제의 상황을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조합원만을 고려하는 편협된 노동조합주의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중앙조직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임금인상 요구율과 사용자 단체인 한국경총이 내놓는 제시율 간에는 줄곧 현격한 차이가 있다. 2003년의 경우 노동단체에서는 11.4%의 요구율을, 경총에서는 4.3%를 제시하여 약 7% 포인트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노사간 현격한 차이는 개별사업장에 그대로 전이되어 단체교섭의 장기화를 초래하는 주된 요인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989년의 18.6%(피고용자 기준)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2001년 12월 말 현재 기준으로 11.8%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조조직률이 지속적으로 저하된 이유로는 산업구조의 변화, 비정규 노동력의 증대, 노동집약적 산업의 개발도상국으로의 이전, 기업의 구조조정에 따른 종업원의 감소 등을 들 수 있지만, 경제사회의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에도 그 원인이 적지 않다. 

 

또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문제점은 자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노사 자치주의를 실현하려면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노조의 자주성은 노조 재정의 자립에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은 본질상 사용자에 대항하고자 결성된 조직이며,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방으로 하여 행하는 단체교섭의 주체(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이고,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사용자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관점에서 규정(동법 제2조 제4호 단서 1호와 2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외적 측면에서의 자주성은 주로 사용자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근로자 대표(노조 대표)에 대한 편의제공과 관련하여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35호 협약(사업장에서 근로자 대표에게 제공되는 보호 및 시설에 관한 협약, 1971년)과 제143호 권고(기업에서 근로자 대표에게 주어지는 보호 및 편의에 관한 권고, 1971년)를 통해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하지 않는 한 국내 노사관계의 특성과 기업의 필요 규모 능력 등을 고려하여 근로자 대표에게 각종 편의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데 문제의 여지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전임자의 임금은 물론 노동조합 사무실, 비품집기, 전화 전기, 수도, 방송, 차량편의뿐 아니라 심지어 사무용품과 소모품, 출장비까지 사용자로부터 지급받아 운영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근로자 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파업을 하는 경우 파업기간 동안에는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대신 노조의 파업기금으로부터 일정액의 생활비를 받는 것이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된 관행이다. 파업기간 동안에는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않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쟁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쟁의가 발생한 경우에도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파업기간 동안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준수되지 않고, 파업에 따른 손실이 노조와 조합원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쟁의기금 마련에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투쟁적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63%의 노조에서 쟁의기금을 설치하고 있으며, 쟁의기금 설치비율은 규모가 커질수록 높은 편이지만, 쟁의기금을 설치하고 있는 노조의 경우 평균 적립금액은 71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조합원 규모별로 보면 50인 미만은 평균 172만 원, 50-99인은 190만 원, 100-499인은 506만 원, 500-999인은 690만 원, 1,000인 이상은 2,500만 원 정도이다. 

 

따라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엄격히 준수된다고 할 경우 일부 노조를 제외하고는 현재의 쟁의기금 적립규모로는 거의 모든 노조에서 하루도 쟁의를 하기 어려운 실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노조와 조합원이 금전적인 손실이 생겨도 장기간 파업을 할 수 있으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산업현장에서 철저하게 이행될 경우 2001년 한 해 동안 일어난 분규의 평균 지속 기간인 31.7일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원인 외에도 노조 전문성의 결여와 노노 갈등도 소모적 대립적 노사관계를 낳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기업경영에 대한 노사간의 현격한 인식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회사측에 책임이 있지만, 노조에도 상당 정도 그 원인이 있다. 노조 스스로 경영분석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거나 회사 경영 분석에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었는데도 이를 불신하여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경영과 환경변화에 대한 노조의 무지와 몰이해는 무리한 요구를 낳고, 무리한 요구는 단체교섭과 파업의 장기화를 초래하여 노사관계를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관계로 변모시키는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집행부에 대항하는 반(反)집행부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일부 노동조합에는 5개가 넘는 현장 계파가 존재하여 조직 내 교섭(intra-organizational bargaining)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조직 내 집단 간의 갈등, 곧 노노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복수 현장 계파의 존재는 집행부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자파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집행부의 결정에 무조건 반대함으로써 정상적인 노조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노노 갈등은 교섭의 장기화는 물론 파업이 발생한 경우에도 노조집행부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반대세력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아 노사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4. 참된 노사협력 방안 

 

단지 파업 건수가 감소한다고 해서 소모와 대립의 노사관계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전환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강압에 의한 노사관계의 안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산업평화라고 할 수 없다. 자칫 갈등이 내재화되어(hidden conflict) 1987년 6월 민주화 선언과 같은 계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장 큰 목표는 기업의 생존과 성장이다. 이러한 기업의 목적은 기업을 구성하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더불어 유지되고 향상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근로자의 근로생활의 질 향상에 대한 고려 없이 기업 경쟁력만을 높이려고 할 경우 이는 불완전한 노력이고,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단기간에 그친다. 그러므로 기업 경쟁력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근로생활의 질도 동시에 고려되어야만 노사 모두 상생(win-win)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현실은 상생이 아니라 공멸(lose-lose), 아니면 기껏해야 한 쪽은 이기고 한 쪽은 지는(win-lose) 관계에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기업 경쟁력과 근로자의 근로생활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키려면 종래의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그 패러다임을 시급히 전환하여야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최고경영자의 발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발상 전환과 아울러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이 경주될 때 비로소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전환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조합도 한 당사자의 이득이 다른 당사자의 손실을 가져오는 분배적 교섭(distributive bargaining)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노사 모두에게 최선의 대안, 곧 최대한의 쌍방효용함수(maximum mutual utility function)를 찾는 통합적 교섭(integrative bargaining)을 추구할 때 노조의 목표인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고용안정을 이룩할 수 있다. 

 

정부는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노사간 힘의 균형을 유지한 다음에는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법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노동행정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실패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두 번 다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실패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개선방안의 구축은 노사 어느 한 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금 기업은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다. 소모적이고 대립적인 노사관계에서 탈피하여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노사의 인식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청된다. 

 

예를 들면, 세계 제2위의 자동차 기업이자 2002년 결산기에 1조 5천억 엔의 경상이익을 실현한 도요타 자동차의 노사는 1996년 1월 '21세기를 위한 노사의 결의'에서 "노사관계는 상호신뢰뿐 아니라 상호책임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천명하였다. 우리는 노사의 상호신뢰와 상호책임은커녕 상호불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일본의 노동조합이 경영에 대한 상호책임까지 합의하게 되었는가? 일본의 노동조합이 어용노조이기 때문일까?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의 향상은 기업의 발전과 함께한다는 것을 노사 모두 실패의 교훈에서 얻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전환은 조직의 변화 관리 중에서 가장 어려운 변화관리에 해당되어 제대로 기업에 정착시키기까지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노사간 신뢰와 상호존중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사회문제 가운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 노동문제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원리'(「노동하는 인간」, 15항)와 '인간의 생활을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노동하는 인간」, 3항)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인 인격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참여의 원리, 재화의 보편적 사용과 사유재산의 사회적 기능,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원리에 입각하여 인간성을 회복할 때 진정한 산업평화가 올 것으로 믿는다.

 

[사목, 2003년 9월호, 김정한(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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