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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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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08 ㅣ No.1665

[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대의 의미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인해 온 나라가 불안하기 그지없는 가운데, 지난 7월 2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드 한국 배치 반대 결의대회’에서 전영미 사드성주배치반대 투쟁위원회 부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도 죄스럽습니다. 일부 주민들만 촛불을 들어 주어 죄송합니다. 우리가 당해 보니 그 찢어지는 아픔을 알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 올라와 유가족들한테 먼저 사과하고 모두들 진상규명 특별법에 서명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주민들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동네 아니라고 모른 체 했습니다. 우리 성주가 당해 보니 그게 밀양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주만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사드를 배치할만한 곳은 한반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밀양주민, 제주도 강정마을을 위해서도 싸우겠습니다. 우리 국민의 안녕과 생명과 평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이는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동안 힘겨웠던 이웃에게 무관심했음에 대한 통회이며 앞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겠다는 눈물겨운 다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그러자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율법 교사에서 되물으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였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이웃은 네 물음의 대상이 아니란다. 그러니 먼저 너를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이웃이 되어 주어라.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어줄 때에, 비로소 이웃이 누구인지 알게 될 테니까’라는 뜻이 아닐까요.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다가섬으로써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연대’입니다. 연대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이런 결의는 완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 다름 아닌 이익에 대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갈망임이 분명하다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를 둔다.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이 같은 태도와 ‘죄의 구조’는 … 대칭적으로 이와 상반된 태도로만 극복이 가능하다.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는’ 각오로 임하는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를 섬기는’ 것이다.”(사회적 관심, 38항)

 

연대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 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루카 4,18)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헐벗은 이를 입혀 주고 아픈 이를 돌봐주는 것(마태 25,35-40 참조)입니다. 특별히 인간의 탐욕과 사회적 불의에 희생된 이웃들을 섬기고 돌보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루카 10,29-37). 따라서 연대성의 원리는 “‘우정’이나 ‘사회적 사랑’”(가톨릭교회교리서, 1939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대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무관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모욕적인 무관심이나 우리의 정서를 마비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습관과 파괴적인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함을, 존엄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외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합시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어 그들이 우리의 현존과 우정과 형제애의 온정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자비의 얼굴, 15항)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9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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