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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교회: 이제 전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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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38

[아시아 아시아] 베트남 교회 : 이제 전쟁은 끝났다

 

 

미국 가톨릭 교회를 방문한 베트남 주교회의 대표단

 

지난 10월 말 베트남 주교회의 공식 대표단이 베트남 전쟁 뒤 처음으로 미국 가톨릭 교회를 방문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에 끝났으며, 미국과 베트남은 1989년에 외교관계를 다시 맺었다. 그러나 그간 베트남 교회는 미국 교회를 방문할 수 없었다. 베트남은 1954년에 프랑스 식민통치가 끝나자마자 공산주의의 북베트남과 미국이 미는 남베트남으로 갈라졌다.

 

대표단은 미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 성직자와 수도자 대표들이 주최하는 환영회에도 참석하고 함께 미사도 드렸다. 미국에 있는 베트남계 미국인 150만 명 가운데 무려 3분의 1인 50만 명이 가톨릭인이다. 베트남계 미국인 중에는 주교 한 명, 사제 540명, 종신부제 17명, 수도자와 신학생 천여 명이 있다.

 

또한 대표단장 호아 주교는 11월 10일 미국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강연을 하면서 미국 주교회의에 베트남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베풀어준 정신적, 물질적 도움과, 또 “두 교회 사이에 관계 촉진을 주도해 온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밝혔다. 미국 주교회의는 1999년에 베트남 전쟁 뒤 처음으로 베트남에 공식 대표단을 보낸 바 있다.

 

호아 주교는 또 미국 교회가 미국내 베트남계 가톨릭인을 사목적으로 보살펴준 것에도 고마움을 나타내고 또 미국 주교들에게 성소가 많은 베트남 교회가 미국 교회의 성소부족 해결에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한편 이에 앞서 베트남 주교회의는 10월 6-10일에 정기 주교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이번 연례 정기총회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지난 1975년에 베트남이 공산 통일된 뒤 처음으로 수도인 하노이가 아닌 지역에서 열렸다는 점이다.

 

총회 장소는 과거 남베트남의 수도이던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멀지 않은 해안 휴양지 붕타우 근처 성모성지였다. 붕타우는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한국군 의무부대가 있던 곳이며, 요즘엔 한국인 신혼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풀린 금제, “주교회의 무조건 하노이”

 

주교들은 다음 총회는 2004년 9월에 또다시 하노이에서 열기로 했으나, 이미 “주교회의는 무조건 하노이”라는 금제(禁制)는 풀린 것이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남베트남 지역의 가톨릭에 대한 오랜 의구심과 두려움을 털어낸 결과라 볼 수 있다.

 

과거 남베트남 가톨릭은 1975년 공산 통일 당시 수도이던 사이공 대교구 대주교가 옛 고딘디엠 대통령의 형이었고, 교회는 반공의 보루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1954년에 프랑스가 북베트남에서 패퇴한 전후로 북부의 많은 가톨릭인이 남쪽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주교회의가 열리는 동안 중앙정부의 종무국 대표들과 바리아-붕타우 성 관리들이 주교들을 방문했다. 지방 당국에서는 가톨릭인들이 지방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더욱 공헌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정치가 경제발전을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해외교회와 연결된 베트남 교회가 베트남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여력 있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베트남 교회도 그간 많은 사회사업을 하면서 베트남의 가톨릭 교회가 더 이상 “반국가” 집단이 아니라 베트남에 “도움되는 집단”임을 증명하고자 애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그간 조금씩 효과를 내왔다. 북부지방 부이추 교구에서는 2002년부터 여러 수녀회가 1954년 이래 처음으로 정부 승인을 받아 공동 양성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올들어 베트남 교회와 정부의 관계는 크게 변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8월 5일 부후이추옹 주교를 훙호아 교구장에 임명했다. 11년 만에 교구장이 생긴 훙호아 교구에 그가 착좌하는 날, 베트남 전국의 주교 25명과 사제 450명이 참석했다. 물론 기쁜 날이었다.

 

그러나 그가 훙호아 교구장에 임명된 것은 또한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훙호아 교구는 수도인 하노이 부근의 훙호아 삼각주지대 9개 성, 우리로 치자면 경기도에 해당하는 곳을 관할한다. 더구나 그의 가족들은 1954년에 북베트남에 공산정권이 들어설 때 남부로 탈출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무려 50년 가까이 지나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에 대해 추옹 주교는 베트남 교회의 유일한 주간지 “교회와 민족”과 인터뷰하면서 “남부 교회 출신”이 북부 교구를 돌보게 되었다고 지적하며, 훙호아 교구에서는 “하나인 베트남 민족과 하나인 베트남 교회”의 비전이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베트남 전쟁은 28년 전에 끝났지만, 베트남 교회 안에서 통일은 이제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선되고 있는 교황청과 베트남 관계

 

변화의 절정은 지난 9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호치민 대교구의 팜민만 대주교(세례자 요한, 69세)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미 베트남 교회에는 추기경이 1명 있는데, 그는 바로 하노이 대교구의 팜딘퉁 추기경(바오로 요셉)이다.

 

그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을뿐더러 이미 여든 살이 넘어서 교황 선출권이 없는 상태이다. 이제 앞으로 베트남 교회를 이끌어갈 새 추기경이 남부 베트남의 수도이던 호치민 대교구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베트남 외교부 레둥 대변인은 10월 2일 기자회견에서 “추기경이 새로 생긴 것은 모든 베트남 가톨릭인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환영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베트남 정부가 원래는 만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을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교황청과 베트남의 관계는 그간 계속해서 개선되어 왔다.”면서 그런 보도를 일축한 것이다.

 

만 대주교는 이전에 로마를 방문했을 때 자기는 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했으며 양측을 식사자리에 초대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양자 사이에 다리가 되어 서로 더 잘 이해하도록 하고 싶었다.”

 

외교부 둥 대변인은 “베트남과 교황청의 관계는 진전되어 왔다.”면서, 두 나라가 아직 외교관계를 수립하지는 않았으나 이탈리아 주재 베트남 대사가 교황청과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상호 관심사를 토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교황청은 베트남 정부와 협의 뒤에 주교를 임명하고 있다.

 

한편 이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정부는 베트남 교회가 나트랑에 있는 사오비엔 대신학교에서 전국 7개 교구의 상급생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신학과 철학에 관한 2년짜리 고급과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베트남에서는 교육기관 설립이나 학생수가 정부에 의해 엄격히 통제받으며, 교회 학교는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현재 베트남의 신학교는 2년에 한 번씩 일정한 숫자의 신학생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학교에 가고자 몇 년씩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이번 주교회의 정기총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베트남의 가톨릭 신자수는 모두 557만 명이며, 사제는 2694명, 수도자는 1만 426명, 신학생은 1295명이 있다.

 

[경향잡지, 2004년 1월호, 박준영 요셉(아시아 가톨릭 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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