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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농민사목] 도농간의 유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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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113

· 농간의 유대 운동

 

 

I. 머리말 

 

도 · 농간의 유대를 말하면 우선 농촌이 가난하기 때문에 도시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도시를 살려 주는 곳이 농촌이기 때문에 농촌에 대한 감사로 도시가 유대를 맺으려고 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농촌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통하여 도시는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아무도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먹는 것을 만들어 내는 곳은 농촌이다. 따라서 도시는 농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들 "까짓것 수입해서 먹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연 수입 농산물이 도시 소비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가?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계속 수입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실제로 수입 농산물에서 엄청 난 중금속과 농약이 검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 수확 후 농약 살포 · 저장 · 수송 · 보관 과정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농약처리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리 농촌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농촌은 이제 살 만한 곳이 못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양로원이요, 유령촌이 되었다고 한다. 농민은 가난하고 병들어 불쌍하다고 한다. 농업은 생산성이 낮아 포기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농촌에는 농업을 하느님이 주신 천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농민이 많이 있다. 가끔씩 농촌이 다 죽게 되었다고 실망하는 뉴스를 보게 되면 우리 농민은 화를 낸다. 아직 건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농업을 사랑하는 농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은 제쳐놓고 도 · 농간의 유대에 대해서 좀더 깊게 살펴보자.

 

우선 좁은 의미로서의 도 · 농 유대 운동은 농산물을 매개로 한 도 · 농간의 직거래이다. 이 직거래로서 유통 단계를 단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오염된 식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살아 있는 생명의 유기 농산물 중심으로 생산자 · 소비자의 직거래 관계로서 서로가 이익과 보람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상호 교류를 통해서 협동적 생활형태를 창출해 나가자는 것이다.

 

도 · 농간의 유대를 다른 측면으로 보면 사회성과 복음성의 통일인데, 사회적으로는 도 · 농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며, 복음적으로는 도 · 농이 공동체를 이루어 가면서 창조 질서 보전을 하자는 운동이다.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두고 현재 일어나는 여러 형태의 도 · 농간의 유대를 살펴보기로 한다.

 

 

II. 본론


1.현황 

 

1) 무차별 대중간에 유통 단계를 단축하여 이익을 보는 형태이다. 

 

유통 단계를 단축시키면서 경쟁적 시장 경제 질서의 모순을 보완하는 것이다. 본당 신축을 위한 바자회, 이웃을 돕기 위한 판매 등이 있으며, 이것은 거의 모든 본당에서 지금 실시하고 있다. 안나회 할머니들이 참기름을 짜서 파는 형태도 있다. 또 시골 본당이나 공소에서 특산물을 생산하여 도시 본당에 갖다 주면 본당이 팔아 주고 적당한 이익금을 챙겨 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형태는 결국은 보통의 시장이 되는 것이며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또 본당 신부가 바뀌면 없어지는 아주 불완전한 형태의 운동이다.

 

2) 조합형이다. 

 

여기에는 생산자 주도형과 소비자 주도형, 그리고 생산자 · 소비자 공동 주도형이 있다.

 

먼저 생산자 주도형을 보면 생산자가 소비자 조직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다. 광주 부근 장성의 한 시골 교회에서는 한 목사님이 손수 농사를 짓고, 교우들 60여 명에게 확신을 준 다음 생산자 모임을 조직하고 그 다음에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생산을 먼저 확실하게 준비한 다음 도시 소비자를 교육하고 현장을 방문케 한 다음 바로 소비자 조직을 만들어 실천하는 모습이다. 생산자는 약 60여명, 소비자는 500여 명인데 공급 가능한 품목이 항상 생산자에 의해서 먼저 보급 되고, 생산되지 않는 품목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까 생산된 모든 것은 다 소비된다. 만약 소비자가 더 요구한다 하더라도 생산이 없다면 요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판매가 구축되기 때문에 자신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생산도 늘어나고 소비도 늘어나면서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하게 된다. 물론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는 소비자 주도형인데 우리가 흔히 대하고 있는 생활협동조합(약칭 생협), 한살림소비자협동조합, 서울의 새생명공동체, 대전의 새생명공동체, 대구의 푸른 평화, 경실련생협 등 소비자 협동 조합식으로 꾸려진 모습이다. 이 형태는 우선 소비자를 교육하여 조직해 내고 충분히 교육을 받게 한 다음 공급 가능한 생산지를 선정하는 형태이다. 소비자 중심이기 때문에 다양한 품목이 있으며 꼭 유기 농산물이 아니더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품목이면 구할 수가 있다. 물론 소비자들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손을 돕기는 하지만 생산자는 큰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생산 과잉이 되어도 소비자 측에서 책임질 수 없고, 또 책임지지도 않는다. 다만 좀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리라는 기대는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소비자 협동조합 형식은 농산물만 아니라 가공까지, 그리고 공산품까지도 공급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하튼 소비자 이익의 우선 원칙이다. 

 

셋째로는 점포형인데, 특별한 소비자를 조직하지 않고 농촌 · 농민이 중심되어 점포를 갖거나 소비자가 점포를 갖는 방법이다. 농민이 직접 점포를 갖는 경우는 청주교구 금왕 본당에서 서울 서초동에 매점을 갖고 있는 ‘살림의 집’ 그리고 농협이나 농민 단체들이 일정한 장소에 점포를 갖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형태이다. 유통 단계가 단축되어 농민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이익이지만, 그러나 운동의 성격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소비자가 줄어들 때 불안하게 되고 소비자들도 만족할 만한 신뢰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담이 없고 언제나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시장 경제의 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심해질 수 있다. 

 

넷째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형태가 있는데 안동교구의 ‘생명의 공동 체’이다. 교구에서 도시 교우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조합을 교육하여 만들어 내고 공소 농민을 대상으로 생산자 조합을 만들어 생산자 · 소비자가 함께 일을 꾸며 나가는 방식이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함께한다는 뜻이 깊어 더욱 발전될 전망이다. 그러나 안동교구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크게 진전되지는 못하고 있다. 교구의 적극적인 지원 · 협력이 있고, 또 농촌에 대한 인식이 가장 잘 되어 있어서 가능성이 크다. 얼마만큼 사목자와 교우들 사이에 인식이 공유되는가가 관건이라 하겠다. 

 

3) 국민 운동 형태가 있다.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국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출 자금을 내고 생산-가공-판매까지를 함께 나누는 형태이다. 이제 시작한 지 1년도 안되었기 때문에 그 장단점을 논하기는 어려우나 광범한 대중과 자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단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회원은10,000여 명(6월 20일 현재), 그 출자금은4억4천여 만원이다. 추기경님으로부터 각 교구 주교님, 신부 약 250명, 수도단체 45군데, 교수 · 학생 · 의사 · 변호사 · 회사원 · 가정 주부이다. 사라진 밀을 살려내면서 그 일을 매개체로 하여 다른 농산물까지 더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사 때 사용되는 제병을 우리밀로 만들자는 욕구가 신자들에게 대단한 호응을 일으키고 있으며 가르멜 수녀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밀로 된 가공 식품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예로서 빵 · 국수 · 라면 · 만두 · 수제비 · 과자 등, 그 소비량은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 밥상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이 운동은 호소력이 있고, 또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2. 바람직한 방향을 위하여

 

1) 농업 · 농민 · 농촌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바람직한 도 · 농 유대는 농업 · 농민 · 농촌에 대한기각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업 · 농민 · 농촌의 실상을 살펴보고(구조적 인식) 죽음과 죽임으로 치닫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고(구조와 문명의 복합 모순의 종합 규명) 생명과 살림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끈질기고 종합적인 노력(생명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회개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농업은 무엇인가? 

농민은 누구인가? 

농촌은 어디인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건강한 의식을 갖지 않는 한, 도 · 농 유대는 아무리 그럴싸한 구호와 명분으로 포장해도 일방적인 짝사랑, 일방적인 요구로 진행되거나 아니면 일회적인 자기 위안용 자선 행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오늘날 농업 · 농민 · 농촌의 실상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위기’이다. 농업은 하나의 산업으로 해볼 만한 생업이 못되고, 젊은 농민은 도시로 떠나고(연 평균 50만 명), 남은 농민들은 영농 의욕을 상실하고 농촌은 살 만한 곳이 못되는 버려진 고장이 되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공급 과잉 · 가격 폭락으로 온갖 채소류, 양념류 농사를 갈아 엎는다든지, 수지 맞지 않는 농사는 아예 포기하여 묵히는 땅이 올해만 해도 67,000정보나 되는 등 땅은 묵히면서도 식량자급률은 37%(여기서 쌀 자급량을 빼면 실제로는 10% 미만이다)로 떨어지고,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농업 생산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역을 선정하고 투자를 집중한다는 이른바 농업 진흥 구역 설정에 농민들은 땅 값이 떨어진다고 한사코 반대하는 실정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농촌 노동력의 고갈 현상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에 앞서 우선 농촌 일손 돕기와 농기계 보내기 운동으로 땜질해야 하는 미봉책과 함께 농촌의 국민학교 본교는 분교 수준으로 학생들이 줄어들고, 또한 분교는 일년에도 수백 개씩 폐교되는 실정은 오늘의 농업 · 농촌 · 농민 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둘째,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산력 중심의 산업 사회관과 물질 중심 · 돈 중심 · 편의 중심 생활 양식(문명)의 복합 모순이 문제의 본질인 것 같다. 낡은 GNP중심 산업관으로 보면 농업은 타산업에 비해 생산성 향상이 더디기 때문에, 당연히 사양 산업으로 규정되고 성장에의 걸림돌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농업에 대한 투자는 소위 투자 효과의 저위성으로 판정되어 경쟁력 없는 작목은 사정없이 도태되어야 하고 일부 품목만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경영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정당성을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 우위론이란 잣대에 화라 외국 농산물의 전면적인 수입 개방은 아무렇지도 않고,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생산성의 향상을 목표로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화학 농업으로 치달아 농민이 죽고 땅이 죽고 물이 죽고 국민들이 각종 성인병과 암에 걸려도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산력 중심 산업 사회관을 확실하게 지탱해 주는 것은 대량 생산 · 대량 소비 · 대량 폐기의 현대 문명이다. 

 

많이 쓰기 위해서는 많이 생산해야 하며, 이는 당연히 대량 폐기의 속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늘의 문명은 결국 쓰레기의 대량생산, 전국토의 쓰레기장화 그것이다. 대량 소비에 걸맞는 생산과 유통은 질보다는 양을, 규격을, 포장을 편의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돈벌이가 중심이 되는 농업은 상업농으로,단작화(단일 작물의 집중화)로 진전되고 생산자와 소비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자유 경쟁 시장 질서에서 끊임없이 모순 · 대립하게 된다. 

 

셋째, 그러면 생명을 나누고 북돋우는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농업 · 농민 · 농촌관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농업은 생명의 산업이요, 기초 산업이다. 농업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온갖 미생물, 벌레, 동식물이 햇빛, 물, 땅, 바람과 함께 생명의 활기를 구가하고 협동하는 생명의 산업이다. 

 

농업은 국민 경제의 기초 산업으로 식량 공급, 공업 원료 공급, 노동력 공급, 국내 시장 몫을 담당하면서 농업과 관련된 전후방 효과(농기계 · 농자재 · 식품 가공 · 육종 · 비료)를 따져 보는 종합적 관점을 요구한다. 이럴 때 농산물은 단순히 투입 비용만을 따지는 가격론 중심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보존하고 풍성하게 하는 농업의 공공재적 기능을 함께 따져 보는 생명의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고 단순히 GNP 대비 10% 산업이 아니라 국민 경제에서의 뿌리 역할을 폭 넓게 수행하는 미래 지향적 종합 산업이 될 것이다. 

 

이럴 때 농민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창조 질서를 보전하고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자랑스런 생명의 일꾼, 민족의 어머니 노릇을 하는 사람으로 일하게 되고, 농촌은 모든 이들의 녹색 공간 · 휴식 공간의 기능을 하여 생명을 북돋우고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주는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될 것이다.

 

농업 · 농민 · 농촌에 대한 시각의 전환, 즉 생명의 산업, 생명의 일꾼, 녹색 공간은 전혀 새롭지도, 이상적인 주장도 아니다. 원래 그러한 것이고, 우리 모두가 건강한 생명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돼야만 하는 매우 절박한 현실적인 요구이다. 

 

예를 들어, 만약 100만 정보에 밀 농사를 지으면 현재 우리의 오염된 대기를 20% 정도 정화한다. 이때 밀에서 나온 산소는 돈으로 따지면 2조원 이상이나 밀 생산액은 대략 4,000억원쯤 된다. 

 

또한 우리 나라 논농사가 수행하는 수해 방지 효과도 매년 다목적댐 관리비와 이자분 약 1조원에 해당한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농업에 대한 간접 보조금에 이런 농업의 공공재 생산 기능을 될 수 있으면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농업 · 농민 · 농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 농민을 돕자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자는 생명 공동체 · 하느님 나라 건설이란 차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실천으로서의 대안 

 

농촌 · 농업 · 농민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졌다면, 즉 이 문제는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졌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안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되지 않는가? 

 

아직도 각 교구에서는 상당수가 농민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농민 사목을 방관한 채 바라보기만 한다면 교회의 책임은 참으로 막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지금까지는 농민은 아무것이나 심고 소비자는 아무것이나 사먹는 관계로, 즉 아무런 서로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관계로 되어 왔던 것을 인격적인 만남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소비자의 눈에는 농민의 얼굴이 보이고, 농민의 눈에는 소비자의 얼굴이 보이는 인격적인 만남이 첫번째의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이 만남을 이루어 내기 위한 준비 사항은 어떠해야겠는가? 

 

첫째, 도시 본당에서 농업 · 농민 · 농촌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있어야겠다. 일정한 교육 없이 도 · 농 직거래를 연다는 것은 자선이나 구호 차원에 머물기 쉽다. 국민 전체에 대한 문제로서 인식할 수 있고 바로 나의 문제로서 인식할 때 구호나 자선 차원아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한 마음으로 변하리라고 본다. 그 교육을 위해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농민과 또 그 농민을 조직화하려는 각 교구의 가톨릭농민회 실무진이 교육에 성실하게 참여해야겠고,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토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한 번으로는 안되고 여러 번의 교육이 있어야 하며 비디오 같은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리라고 본다. 기초 교육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 아무리 듣고 공부했어도 현장을 보지 않는 한 느낌이 와닿지를 않는다. 농촌이 정말 살 만한 곳이 못되고, 농민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몸소 겪어야 한다. 농업 · 농민 · 농촌이 나의 건강, 사회의 건강 그리고 전체 창조 질서를 보전하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둘째, 조직을 꾸려 나가야 한다. 혼자서는 힘든 일도 조직을 이루어 함께 해나가면 신이 나는 것이다. 바람직한 본당 공동체의 규모는 5~10가구의 생활 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는 300~500가구로 본다. 교육을 통한 단단한 신념을 가지고 이제는 우리의 일을 우리가 해결해 나간다는 의지로서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생산자 쪽에서도 똑같이 교육을 받으며 조직화되어야 한다. 혼자서 다 생산해 낼 수는 없으므로 여럿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교육을 하고 생산을 조직해 내는 것이다. 300~500가구의 소비자조직에는 약10~20여 가구의 농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생산자 · 소비자의 조직이 완성되면 이제는 구체적인 작업 실천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셋째, 실천해야 한다. 

 

교육도 받고 조직도 해냈으면 - 물론 오랜 시간이 흐르겠지만, 또 시간이 흐른 뒤에야 더 잘 될 수 있으리라 - 농민은 생산하고 소비자는 소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순히 사고 팔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나누고 보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소비라는 말은 활용이란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싸다, 싸다 하는 돈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농민이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소비자는 농민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사고 파는 관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나누고 섬기는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농민에게는 소비자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 소비자에게는 농민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눈에 보여야 하는 것이다. 어려운 영농철이면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에 내려가 일손을 거들어 주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하고 눈물겨운지 보아야 한다. 또한 휴가철이면 농촌에 와서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쉬었다 갈 수 있어야 하고, 농민은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할 것이다. 겨울이면 농민들이 도시에 가서 나와 함께 살려고 하는 소비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지를 알아내야 한다. 쉽게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는 소비자의 고마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여유 있으면 서로 돕고 나눌 수 있는 경제적인 분배도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아깝거나 의무적인 사항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본 원칙 아래에서 지금 우리 나라 전역에서 도 · 농 직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아가길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계 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이 시점에서, 사람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물과 벌레와 풀이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근본 명제 - 곧 생명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 공동체의 건설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봐야 한다. 이 우주 안에 생명이 살아 있는 단 하나뿐인 지구가 지금 인간에 의해서 얼마나 파괴되고 고통받고 있는지를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정의(정의)가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정의는 사랑으로 가기 위한, 평화로 가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그 정의만으로는 안된다. 창조 질서 보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대로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면 창조 질서가 다 파괴된다. 그러므로 정의를 세우는 일에 헌신해야 하면서도 창조 질서를 지키는 일에도 함께 헌신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은 생명이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으셨으며, 창조 자체 역시 생명이고, 지금 성령께서는 사랑으로 생명을 보살피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귀중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보전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생명체도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 다른 생명체가 죽어 가면 인간 생명도 결국 죽어갈 것이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하늘이 함께 살아야 하는 생명 공동체 운동은 이 시대에 필연적인 요청이다.

 

 

III. 맺는 말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도 · 농 유대는 발전할 것이다. 서로가 믿지 않고 의심하는 가운데 형식적이고 이익 중심적인 도 · 농 유대는 오래가지 못하리라. 철저하게 서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도 · 농 유대라야 오래 지탱할 것이다. 더욱이 서로가 서로에게 회생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로의 이익만을 탐하고 나누기를 거절한다면 더 이상 그러한 도 · 농 유대는 의미가 없다. 남을 살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도 · 농 유대는 거의 걸음마에 지나지 않으며 이익 문제 때문에, 가격 문제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한 묘한 욕망이 허울좋은 도 · 농 유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거짓을 이겨 내는 길은 소비자 · 생산자의 깨어 있는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자신이 주인으로서 이 일을 통한 인간화에 목적을 두어야 하리라.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유형의 도 · 농 유대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른 실천을 해 나가는 공동체 건설이 자꾸만 튼튼히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사목, 1992년 8월호, 김승오(가톨릭농민회 전국 본부 지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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