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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본당사목] 본당 조직 및 운영의 개선을 위한 기초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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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33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반성과 쇄신] 본당 조직 및 운영의 개선을 위한 기초적 논의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 길게 보면 해방 후부터 최근까지도 몇 차례의 짧은 예외적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교회는 주목할 만한 성장의 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고속 성장의 후유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기간조직이라고 할 본당들이 도시 본당들의 과도한 비대화와 관료화, 도시와 농촌의 격차 확대, 신자 구성의 편향성, 소외 계층의 증가 등의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는 심각한데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좋은 본당’ 의 기준들은 무엇일까?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Ⅰ. 좋은 본당은 어떠한 것인가? 

 

최근 미국의 볼티모어 대교구는 관할 본당들의 사목 실태를 객관적으로 평 가하고 그에 기반하여 교구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14개 항목으로 구성된 분석 틀을 개발했는데, 이 분석 틀에는 '좋은 본당의 기준들’ (Criteria for a Good Parish) 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그리고 이 기준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가운데 얻어졌다고 한다. 14개의 기준들은 크게 본당성원들의 역할수행 및 공동체의식, 본당의 활동, 본당의 자원 내지 본당의 직무 수행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재화들이라는 세 가지 큰 범주로 구분된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1) 

 

교회는 무엇인가 (What a Church Is) 

 

1. 공동체의식:좋은 본당은 스스로를 하느님께 부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며 성신에 의해 이끌리는 신앙 공동체로 강하게 느낄 것이다. 본당의 성원들은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시할 것이며, 공동체에 상대적으로 만족해 할 것이다. 

 

2. 평신도 사도직 : 좋은 본당의 성원들은 스스로를 사역자(minister)라고 간주할 것이고, 본당의 리더십과 본당의 다양한 직무(ministry) 영역들에 실무능력을 제공하는 데 활발하게 참여할 것이다. 

 

3. 사목자:좋은 본당의 사목자는 본당 교우들을 알고 있고, 본당 교우들 역시 사목자를 알고 있고,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을 편하게 느낄 것이다. 사목자는 직접 혹은 다른 이들을 통해 전례를 잘 주재한다. 사목자는 강론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복음이 주는 위로와 도전 모두를 선포한다. 사목자는 교우들의 재능(talents)을 식별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시고 투신을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도울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본당의 직무활동에 참여하도록 도전하고 권장한다. 

 

4. 실무자(staff):본당의 실무자들은 본당의 일을 수행하기에 수적으로 적절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위해 적절한 훈련을 받았고, 본당이 목적하는 바에 대해 충분한 의식을 갖고 있고, 본당의 목표들을 성취하는 데서 사목자 및 교우들과 효율적으로 협력한다.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What a Church Does) 

 

5. 참여 : 좋은 본당 공동체의 성원들은 본당 공동체의 삶과 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은 전례와 본당의 다른 기능들에 참여할 것이다. 

 

6. 전례의 활성:좋은 본당은 전례를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을 지향하는 출발점으로, 또 다른 모든 것들이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원천으로 간주할 것이다. 사제와 평신도는 똑같이 전례를 살아있게 만드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자원들이 투입될 것이며, 교우들은 본당의 전례에 대해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가질 것이다. 

 

7. 종교교육과 영성 훈련(spiritual formation):좋은 본당은 성인, 청년, 아동의 종교적, 영적 발전을 위해 강력한 노력을 펼친다. 교우들은 그들 자신과 다른 이들의 영성 훈련에 기여하기 위해 이 같은 직무 영역들에 참여한다. 모든 집단들(소공동체들)에 필요한 만큼의 자원들이 가용한 상태이며, 교우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성장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8. 복음화:좋은 본당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체험하며, 적극적인 복음화 프로그램으로 응답한다. 

 

9.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발맞춰, 좋은 본당은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활동을 특별히 집중시킬 것이다. 

 

10.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presence to neighborhood):좋은 본당은 자신의 봉사사명의 한 부분으로 인근 지역사회의 삶에 관계되어 있다. 에큐메니칼하게 혹은 시민적으로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본당은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데 기여한다. 

 

11. 여타의 봉사직무 : 교우들은 평등, 자유, 정의, 평화를 증진하는 직무들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본당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옹호하는데 적극적일 것이며,노인 · 장애인 등 특별히 곤란을 겪는 이들을 돕는 적극적인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교회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What a Church Need) 

 

12. 공동체의 규모:좋은 본당은 특히 활동적인 기간 동안 필요하다고 간주 되는 직무들을 떠맡고 본당을 기능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른 일들을 수 행하는 데 충분한 교우를 갖고 있다. 본당 신자들의 연령별, 인종별, 성별 분포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을 건강하게 포용하고 있음을, 또한 장래에 본당을 건강하게 유지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13. 재정 조건:좋은 본당은 교우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고도, 또 본연의 직무를 희생시키면서 재정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도 자신의 일들을 수행해 나갈 충분한 재정적 자원을 갖고 있다. 

 

14. 각종 설비, 시설들:좋은 본당은 본당의 삶과 일들에 유용하게 쓰이며, 좋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시설들을 갖고 있다. 본당 공동체는 지나치게 작은 시설 때문에 제약 받지 않으며, 지나치게 큰 시설 때문에 부담을 지지 않으며, 시설을 잘못 관리하여 미래에 쓰여야 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 

 

 

II .우리의 현실에 대한 성찰 

 

볼티모어 대교구의 분석 틀은 우리에게 부분적으로 안도감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우리 본당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과 개선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우리를 가장 안도하게 만드는 부분은 "좋은 본당은 특히 활동적인 기간 동안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직무들을 떠맡고 본당을 기능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른 일들을 수행하는 데 충분한 교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미국 교회가 신자수의 절대적 감소로 고민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오히려 본당의 신자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공동체의 규모를 유지하는데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농촌 본당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미 1992년 말 현재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가톨릭신자의 비율은 전체의 86. 2%에 이르고 있어 문제 상황 자체가 '도시화’되어 있다. 또 우리의 경우 재정 조건이나 본당 시설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높은 지가 수준에도 불구하고 과포화 상태에 이른 본당을 시급히 분할하고 신축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많은 도시 본당들이 재정적 압박과 공간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공동체의 '규모’보다는 공동체의 ‘구성’과 '분포’이다. 이런 면에서 "본당 신자들의 연령별, 인종별, 성별 분포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을 건강하게 포용하고 있음을, 또한 장래에 본당을 건강하게 유지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은 우리의 문제점을 드러내 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 본당의 신자 구성이 과연 건강한지는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신자들의 구성이 갈수록 중산층, 여성, 중 · 장년층 중심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같은 신자 분포상의 불균형은 자신의 종교적 욕구의 충족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천주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부인하거나 교회에 대한 접근 면에서 구조적인 장벽을 경험하는 신자들이 방대하게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런 면에서도 우리 본당 안팎의 주변적 소수층에 대한 각별한 복음화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압도적으로 중산층과 상류층 인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종교 집단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우선 통계청에서 발간한 1993년의「한국의 사회 지표」에 따른 전국 민의 학력 분포와 천주교신자 집단의 그것을 비교해 보면, 양 집단간의 현저한 격차가 드러난다.2) 총인구와 가톨릭인구 전체를 비교해 볼 때, 가톨릭신자의 경우 중졸 이하의 저학력 층(26.1%)에 비해 절반 이하인 반면,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직업 분포 면에서 볼 때,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인구의 직업 분포는 총인구의 그것에 비해 생산직 종사자의 비중은 3분의 1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인 반면, 사무 기술 및 전문 관리직의 비중은 두 배 이상이다. 농 · 어업 종사자의 비중 역시 현저하게 적다. 천주교 신자의 경우 중산층으로의 주관적 계층 귀속의식도 총 인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총인구의 경우 스스로 상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1.2% 중류층이 49.8%,하류층이 48.1%인 반면, 천주교신자 중 상류층 귀속의식을 가진 사람은 2.4%, 중류층이 65.0% 하류층이 35.2%로 나타난다.3) 천주교신자 중 자가 소유자의 비율 역시 총인구에 비해 매우 높은데, 1990년 현재 총인구 중 자가 소유자의 비율은 50.6%이지만 천주교신자 중 자가 소유자의 비율은 73.9%에 이른다.4) 1992년에 서울대 인구 및 발전문제연구소에서 실시한 전국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신자는 객관적 계급 지위 면에서 76.1%가 중산층 이상인데 비해, 개신교신자는 66.6%, 불교신자는 50.7%에 불과하다.5) 경제적, 문화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디디고 설 땅은 사제와의 면담, 강론 내용, 본당단체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본당 신설, 방송국의 신설 및 운영, 신학교의 신설 및 운영, 본당 전산화 등에 방대한 재정 소요가 발생하는 시점이므로 원하든 원치 않든 신자들에게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이 지어질 것이고, 이는 자연 발생적으로 중산층 중심의 사목 관행을 고착화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에 발맞춰,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특별히 집중”시키지 않는다면, 또한 본당의 의사결정 구조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약자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는 조만간 사회적 엘리트층만으로 구성된 ‘계급교회’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1980년 이후 천주교 신자의 여성 중심성이 급속히 심화되어 1980년에는 57.8%였던 여성신자의 비율이 1990년에는 60.3%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여성의 수효를 100으로 보았을 때의 남성의 수효 즉 성비(性比, sexratio) 역시 매우 불균형한 양상을 보여주는데, 천주교 신자의 성비는 1970년에 77이었으나, 1980년에는 73, 1990년에는 66으로 급속히 낮아졌다. 1993 년 현재 전국 인구의 성비가 101.4로 추계되고 있음을 감안하면.6) 가톨릭신자들의 성별 인구 구성이 얼마나 불균형한 것인가를 당장 알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그 동안 사실상 ‘여성사목이 부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성사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나가려는 노력이 시급히 요청된다. 필자도 참여한 최근의 한 조사 연구는 '여성신자들이 전반적으로 고학력화, 중산층화 되는 가운데 여성신자 집단의 내적 이질성이 급속히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7) 여성신자들의 중층적 구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여성사목의 전문화, 체계화, 과학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8) 여성신자들을 '기혼 중산층 전업 주부’와 동일시하고 그에 한정된 사목적 배려만으로 족하다는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욕구 충족을 경험하는 적극적 참여 파를 제외한 나머지 고학력층, 저 연령층, 직장 여성, 하류층 여성신자들의 종교적 욕구는 충족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총인구와 가톨릭인구의 연령 분포를 비교해 볼 때, 가톨릭신자의 경우 20대 연령층은 크게 적은 반면, 40대 연령층은 크게 많은 분포를 보여준다. 가톨릭신자 중 50대의 연령층은 총인구에 비해 근소하게 많고, 60세 이상은 근소하게 적다. 이 같은 사실은 2000년대 초에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노령화 사회’의 충격을 극대화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교회에 나오고 있는 젊은 층이 교회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새로운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도록 함으로써 노령화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수적 다수를 이루게 될 노령 신자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본당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상당 부분 급속한 양적 성장에서 비롯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교회의 양적 고속 성장은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전반의 급격한 도시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도시화는 도시교회의 급속한 성장과 농촌 교회의 쇠퇴를 초래하고, 도시 교회에는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을 집중시키는 반면 농촌교회를 도시 교회에 대한 신자 공급원으로 전락시켰다. 그 결과 도시화는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농촌교회를 공동화 (空洞化)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9) 우루과이 라운드(UR)의 발효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으로 더욱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의 농촌을 지키고 살려내는 일에 농촌 본당과 도시본당들이 힘을 합치지 않는 한, 농촌본당의 공동화와 도시교회의 과잉 비대화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날 양적 고속 성장의 후유증은 대부분 도시본당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본당이 거대화되고 관료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본당공동체에 대한 동일시와 만족으로 정의되고 있는 공동체의식의 약화, 그리고 본당의 직무 수행에 대한 성원들의 참여 부족이 근본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거대화된 도시본당 안에서 신자들이 공동체의식과 소속감을 경험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다. 1993년 말 현재 본당당 평균 신자 수는 3,150명에 이르지만,대도시 지역의 본당당 평균 신자 수는 4,840명으로 농어촌지역의 본당당 평균 신자수인 1,504명의 호2배에 달한다. 특히 서울대교구의 경우에는 본당당 평균 신자수가 무려 5,729명이고,서울시만으로 한정할 경우 본당당 평균 신자 수는 전국 평균의 약 2배, 농어촌지역 본당 평균 신자수의 약 4배인 6,200명에 이른다. 1992년 말 현재 서울시에만도 신자 수 7천명 이상 1 만 명 이하인 본당이 32개 소, 1만 명 이상인 본당이 13개 소로, 신자수가 7천명을 넘는 대형 본당이 50개 소에 접근하고 있다.10) 공동체 의식의 약화 현상은 냉담자와 행방 불명자 문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1993년 말 현재 냉담자는 전체 신자의 11.5% 행방 불명자는 13.6%로 둘을 합치면 24.6%에 달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 5명 중 1명이 냉담자나 행불자인 셈이다. 더욱이 영세 후 냉담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이 과거에 비해서 단축되는 추세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체 신자 가운데 냉담자 및 행불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시간의 흐름에 비추어 큰 변화가 없지만, 몇 년 전부터 전국 대부분의 교구에서 신자 관리를 강화하고 신자들의 공동체의식과 소속감을 끌어 올리고자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공동체운동’이 냉담자나 행불자의 비율을 낮추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필자가 최근 서울대교구의 한 본당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공동체운동의 구역 · 반 모임에 대한 기여도에 대해 신자들의 40% 이상이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고 보고 있고, 소공동체운동이 교우들간의 공동체적 우애와 친교를 증진 시키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신자가 30%를 넘었다. 또 현재 소공동체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신자들의 압도적인 다수가 신자들의 무관심을 지적했고, 이 밖에 남성 층의 참여 부족, 운영방식의 문제, 청년층의 참여 부족,교육 부족의 순서로 문제를 지적했다. 섣불리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소공동체운동은 신자들의 공동체의식 증진에 별다른 기여를 하 고 있지 못하며, 특히 구역 · 반 모임은 여전히 전업 주부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남성들과 청년층, 직장 여성층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원래 천주교의 교회조직은 고도로 중앙 집권적이어서 평신도 층에게는 교회운영에서 제한된 참여만이 허용된다. 한국 천주교회의 경우에도 다른 종교, 특히 개신교에 비해 평신도가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크게 제한되어 있다.11) 서구의 천주교회들과 비교해도 평신도들의 이니셔티브는 거의 보장되어 있지 못한 편이다. 이는 한국교회의 권위주의적 속성에도 연원 하지만,도시본당의 과잉 비대화, 그리고 그에 따른 교회 운영방식의 관료화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짙은 현상이 평신도 층의 참여 욕구 증대와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1980년 이후 시행된 몇 차례의 조사 연구 결과들은 교회 운영이 좀더 민주화되고 참여의 문호가 더욱 넓게 열리기를 평신도들이 바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바람직한 여성 사목위원의 비율에 대해 여성신자들의 절반 이상(52.8%)이 본당 여성 사목위원의 비율이 40%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2) 이 결과는 여성신자들이 주어진 현실에 상당한 불만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여성신자들의 이처럼 높은 기대와 요구가 그에 훨씬 미달하는 현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문민 정부의 등장과 지방 자치제의 본격적 실시, 시민운동의 활성화 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은 이런 경향이 교회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평신도 층의 기대 수준을 더욱 높일 것으로 판단 된다. 세속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대한 영합도 문제이지만,우려되는 바는 세속사회와의 '가치 격차’가 너무 크면 전반적인 사회 발전과의 괴리 심화로 인해 교회 안에 폐쇄적 하위문화가 형성되고 교회 자체가 점점 게토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신앙의 자립화, 단편화, 형식화 등을 조장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이 점점 세상과 이원화되고 개별 신자들에게서 교리적 충성과 실제 생활 윤리의 괴리를 낳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천주교 신자 들의 낙태나 이혼관행 등에서 교리적 충성과 생활 윤리가 이미 심각할 정도로 괴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대화된 본당을 맡고 있는 사목자들 역시 개별적인 본당 교우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갖기 어렵다. 남성이 다수를 이루는 일부 선택 받은 신자들을 제외 하면, 사목자와 평신도들 간의 인격적인 접촉은 거의 차단되어 있고, 특히 가정방문이나 개별적인 상담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교우가정을 방문하더라도 사진을 포함하여 데이터베이스화된 신자들에 관한 신상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미리 검색해 보아야 할 형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연한 결과지만, 교우와의 친밀한 접촉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사목자들의 직무 수행에 대한 신자들의 만족도도 낮게 나타난다. 예컨대 여성신자들은 사제나 수도자들의 미사 강론, 청빈생활, 정결생활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고(이 영역들에 대해서는 60% 이상의 신자들이 잘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알로꾸시오, 영성 지도, 신앙(재)교육, 성서공부 지도 등의 영역에서도 비교적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이 영역들에 대해서는 50% 이상의 신자들이 잘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정방문, 신앙 상담, 소외 계층 방문 등의 영역들은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고 있고(이 영역들에 대해서는 50% 이하의 신자들만이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가정 방문, 소외계층 방문에 대해서는 20% 이상의 신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13) 성직자, 수도자의 신앙상담, 가정방문, 소외계층 방문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은 본당의 대형화와 비대화에 따른 성직, 수도자와 평신도간의 괴리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 된다. 

 

사제 성소가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결국 사제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다양한 사목적 직무들이 본당 실무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분담 되어야 할 텐데, 이를 위한 준비도 미흡하다.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면서도 모든 결정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 사제의 권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사제들의 모순된 의식도 문제 해결을 더디게 만드는 한 요인일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자랑하는 방대한 지식층 신자군이 교회의 발전을 위해 충분히 조직화되어 동원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주일학교 학생보다도 신학 지식에서 뒤진 대학 교수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자의 60% 이상이 여성신자들이고 이들의 교회에 대한 불만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여성신자들은 남성들에 비해 사제와 접촉하기를 어려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수녀들에게 상응하는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고 있지 못하다. 

 

본당의 실무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 몫을 다하는 문제는 전례의 활성화, 그리고 종교교육과 영성 훈련이라는 좀더 넓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냉담자의 문제가 계속 심각한 상태인 것은 부실한 예비자 교육과 신자 재교육 체계에서 그 원인의 중요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14) 본당이 비대화 · 관료화되고, 중산층 중심으로 운영됨에 따라 교회 내의 많은 부분이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현상에 대한 상이한 대응’ 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바로 냉담, 행불자의 증가와 사적 계시 운동의 발흥이다. 본당의 관료화와 중산층화에 대한 저항 그리고 본당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종교적 열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냉담' 행불자의 증가(특히 젊은 층과 지식층의 경우)와 열광적인 종파적 신앙에의 몰두(특히 빈민층과 저학력 층의 경우)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성령 세미나의 번창과 광신적 사적 계시 운동의 확산은 본당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존의 종교교육과 영성 훈련, 전례 등이 많은 신자들에게 종교적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탈냉전시대의 불확실성 증대와 세기말이라는 시기적 요인까지 겹쳐 이 같은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신자 교육 및 재교육의 내실화, 형식화되고 타성화된 전례를 개선하는 방안을 포함하여 심도 있는 진단과 대책 제시가 절실히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볼티모어 대교구는 "좋은 본당은 자신의 봉사사명의 한 부분으로 인근 지역사회의 삶에 관계되어 있다. 에큐메니칼하게 혹은 시민적으로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본당은 지역 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키는데 기여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자제의 본격적 실시에 따라 정치적 ‘사회적 쟁점의 세분화, 공론화, 지역화 추세가 강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개별 본당 혹은 몇 개 본당들의 연합으로 지역적 문제들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더욱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의 문제,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비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본당이 해당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적 공신력과 도덕적 영향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등, 자유, 정의, 평화를 증진하는 직무들”, 다시 말해 예언자 직의 수행은 1970년대 이후 한국 천주교회가 높은 수준의 사회적 공신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교세 증가를 이룩하는데 원동력이 되어왔던 만큼,15) 이 방면에서 본당들이 지역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동시에 19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고양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노인, 장애인 등 특별히 곤란을 겪는 이들을 돕는 프로그램들”을 지역의 요구에 맞게 개발하고 실행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역 문제에 대한 탄력적이고도 효율적인 대응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 본당사제들에게 더욱 많은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요구되는 지역적 쟁점들을 풀어가기 위해 본당 내의 평신도 전문가를 발굴,육성하고 조직화하는 과제도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지역 내의 비종교적 민간 조직들과 협력하는 경험도 축적되어야 할 것이고,타 종교 조직과의 협력의 기 반으로서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종교적 관용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지금까지 미국 볼티모어 대교구의 본당사목 실태 분석 틀에 근거하여 우리 지역 교회(본당)의 현실과 문제점들을 개략적으로 진단해 보았다. 우리의 본당 현실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된 감이 없지 않으나, 이 글은 우리의 본당들이 여전히 역동성과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노출되고 있는 문제 점들도 급속한 양적 확대에 따르는 '과도적인’ 것이 대부분이라는 전제 위에서 쓰여졌다. 그러나 이 과도적이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문제들을 적기에, 적절한 방향으로,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가운데 많은 문제들이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띠게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초보적인 수준에서 문제점들을 기술하고 발견하려는 논의에 불과하다. 2000년대를 대비하여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본당의 조직 및 운영 방안을 모색하려면,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이고 체계적이며 포괄적으로 문제점들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바람직한 본당상을 정립하려는 노력도 동시적으로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목 일선에서 헌신하시는 많은 사목자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동 작업을 진행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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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riteria for a Good Parish", Origins, June 2, 1994, vol. 24, no. 3, 33-36면 

2) 통계청,「한국의 사회지표」, 1993;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한국천주교 평신도의 신앙생활 실태」,1994. 

3) 총인구에 관한 자료는 갤럽조사연구소,1989; 가톨릭정의평화연구소, 「한국가톨릭 교회와 소외 층, 그리고 사회운동」, 1990,2이면에서 재인용. 가톨릭 인구 전체에 관한 자료 역시 같은 출처임. 

4) 주2)와 같음. 

5) 서우석,"중산층 대형교회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서울대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1993에서 재인용. 

6) 통계청, 「한국통계월보」, 1994.11,10면. 

7) 강인철 ‘ 박문수, 「한국천주교 여성 신자 실태 및 의식 조사」, 우리신학연구소,1995. 

8) 최홍길,"여성신자에 대한사목적 배려”,「사목」95호(1984.9) 참조. 

9) 노길명, "도시화와 한국교회”,「가톨릭신문」,1995.5.14. 

10 )신치구, "통계상으로 본 한국 천주교회의 실태”,「한국천주교주교회의 희보」,제85 호(1995.1.1),38.42면. 

11) 노치준,「한국의 교회조직」,민영사,1995, 84-85면. 

12) 강인철. 박문수, 앞의 책,212면. 

13)같은 책, 195-208면. 

14) 오경환, "교회를 떠나는 이들”, 「생활성서」, 1992.10. 

15) 오경환, "교회의 목적과 예언자 직의 중요성”, 「사목」179호(1993.12) 참조.

 

[사목, 1996년 2월호, 강인철(우리신학연구소 사회과학분과장, 종교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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