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본당사목] 본당신부의 사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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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35

본당 신부의 사제상

 

 

서론

 

‘본당 신부의 사제상’ 하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할 것이다. 자기가 만났던 혹은 보아 온 실제의 한 본당 신부를 상상해 낼 수도 있고 혹은 자기가 읽었거나 관람한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을 머리에 떠올릴 수도 있다. 또는 자기 나름대로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한 사제상을 그려 볼 수 있고 막연히 한 지역의 교회 책임자로 단정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본당 신부의 사제상은 결국 생활의 한 부분이나 소임의 일부를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여기서는 본당 신부의 실상을 논하고 그에 상응한 생활 윤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에 근거한 사제의 허상이나 가상(假像)에서 본당 신부의 사제상을 보게 되겠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난 한국 천주교회 2明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1)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책이 있지만 그 사명은 오직 하나뿐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성화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그리스도한테 받았다. 평신도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며교회와 세계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자기 나름대로 완수하고 있다.”2) 이와 같은 교회의 공통 임무 안에서 정도의 차이만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구별되면서도 한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제직에 동참하는 성직 사제직과 이를 수행하는 직분상의 사제상이 있는 것이다.3) 이 직분상의 사제직 중에 가장 보편적이고 중심적 사제직이 본당 신부의 직분이라 하겠다. 교회법은 본당 신 부를 “자기에게 맡겨진 본당 사목구의 고유한 목자로서 교구장의 권위 아래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사목을 수행하는 자이다. 그는 법규범에 따라 다른 탁덕들이나 부제들과 협력하고 평신도들을 위하여 활동하면서, 그 공동체를 위하여 가르치고 성화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주교의 그리스도교 교역의 분담자로 소명된 자”4)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본당 신부는 이중의 소명을 지녔다고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선택되고 구원되어 그리스도룰 머리로 하는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동참하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 그리스도처럼 사제직과 예언직과 목자직을 공동체 안에서 수행하는 봉사자의 직책이다. 이 이중적 특성을 균형 있게 살아가며 충실하게 사명을 완성할 때 그는 본당 신부의 사제상을 부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본당 신부의 실상인 성사적 사제직과, 그 직무의 수행에 있어 기본 윤리에 해당되는 덕목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보고자 한다. 

 

 

I. 본당 신부의 사제직 

 

본당 신부의 실상은 그의 사제직에서 보아야 한다. 본당 신부는 누구나 성신의 도유(塗油)와 주교의 안수(按手)로 사제품위에 오르게 되고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의 협력자가 되며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사목직을 수행하게 된다. 

 

1. 본당 신부의 사제직 

 

본당 신부의 사제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동참하는 것으로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사제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5) 일반 종교에 있어 사제들은 그들이 봉사하는 제단과 그들이 봉헌하는 제물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당신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심으로 이룩하신 사제직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사제이시고 바른 제물이시다. 그리고 이 사제직에 동참하는 신자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바쳐야 한다. 교회가 제단에서 봉헌하는 미사 성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제헌을 기념하며 새롭게 하는 것으로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1 고린 11,24) 하신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서 행하는 것이다. "관리인에 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1 고린4,2). 이 미사 성제를 충실히 이행하므로 주님의 공동체를 새로 모으고 양육하며 주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여 더 효과적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공동체를 잘 모으고 성장시키며 양육해야 할지는 본당 신부들의 구체적 과제이며 전례의 생활화에 달려 있다. 

 

2. 본당 신부의 예언직 

 

본당 신부의 예언직도 일반 종교에서의 신탁이나 예언과 같은 현상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오셨음을 전하며(요한 3,16-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느님의 뜻을 남김 없이 전하는 ‘기쁜 소식’의 선포자들이며 증인인 것이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아무도 자기 임 의로 수행할 수 없고 파견을 받은 자라야 하며(로마 10,14-16) 그 권한은 하늘의 천사들의 것보다 확실한 것이며(갈라 1,8) 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중대한 의무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내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라고 고백하며 무슨 보수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복음의 선포자는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고(2 고린4,5)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분이 선포되는 것으로 삶의 의미와 기쁨으로 삼게 된다(필립 1,15-21 참조). 왜냐하면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드러났으며(골로 1,26) 이로써 오직 한 분뿐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그가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6) 

 

3. 본당 신부의 사목직 

 

본당 신부가 위임받은 사목직은 즉 양 떼를 다스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 사목직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양 떼를 성실히 돌보는 목자로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며 부정한 이익을 탐해서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1 베드 5,2). 예수님은 당신이 파견할 제자들에게 당신의 양순하고 겸손한 모범을 따르도록 당부하셨다.7) 그것은 곧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우리에게 오시고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온”(마르 10,45) 분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본받아 모든 이에게 자비롭게 대하도록 당부하신 예수님의 명령(루가6, 33-36)을 누구보다도 그의 대리자들인 사제들이 실천해야 하겠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일에 자만하지 않고 "저희들은 보잘것없는 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가 17,10) 하는 사람은 참된 제자이며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하는 표징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삶의 전부가 될 때에(필립 1,20) 그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할 수 있겠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예수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속에서는 죽음이 설치고 여러분 속에서는 생명이 약동하고 있습니다.”(2 고린 4,7-12)) 할 수 있는 사목자야말로 저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지탄받는 목자들의 상(像)이 아니고 요한 복음서에서 제시하여 주는 참되고 좋은 목자의 모습을 지닌 사목자가 될 것이다.8) 

 

 

II. 본당 신부의 사제상 

 

본당 신부를 볼 때 선 그의 직무 수행의 차원에서 볼 수 있고 직무를 맡은 연약한 인간성의 측면에서 볼 수 있으며 공동체나 신도들의 입장에서 바라는 사제상을 중심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직무의 고결하고 위대함과 소명을 받은 자의 인간적 허약성을 동시에 살펴보고자 한다. 

 

1. 성무(聖務) 수행자인 사제상 

 

1) 전례의 집행자 

 

본당 신부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구체적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주교를 통하여 위임 받은 권한으로 목자이며 봉사자로서 충실하게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 섬기고 서로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돌보는 가장(家長)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9)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을 위한 사물을 축복하며 주님의 권한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성 신의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게 하며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해 준다. 한마디로 신권(神權)을 행사한다. 이러한 엄청난 권한은 인간이 스스로 취할 수도 없고 또 무슨 자격 때문에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오로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계획과 약속으로 가능한 선물인 것이다. 

 

2) 성직자는 은총의 도구 

 

성직이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라면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의 능력보다 순명이다. 하느님은 제사나 제물보다는 순명을 원하시기 때문이다(1 사무 15,22). 사목자의 겸허한 순응만이 자신과 하느님 백성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을 통해서 자신과 뭇사람에게 축복을 끼치게 된 것이다(창세 12,1-3). 전권 대사로 파견된 사제들은 마치 모세가 파라오에게 파견 되는 것과 같다. 모세는 자기의 능력으로서가 아니고 파견하시는 전능하신 분에 의지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바오로 사도도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나 할 수 있습니다.”(필립 4,13)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신도들이 그를 단순한 순회 설교사로서가 아니고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또 그리스도 예수와도 같이 영접해 주었음”(갈라 4,14)을 상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예와 존경은 그의 능력이나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를 뽑아 주시고 파견하시는 주님의 영광과 권능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스스로 겸손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심으로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냈듯이 주님의 사제들도 겸손과 연약함을 감수함으로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에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11) 

 

3) 본당 신부는 본당의 가견적 중심 

 

본당이 하나의 구체적 교회 공동체이고 그 존재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를 통해서 계시된 삶의 길을 깨달아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면 이 모든 행위는 결국 본당 신부 중심으로 본당 신부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12) 이미 초세기 공동체의 모임에서도 이 특성은 잘 드러나고 있다. 즉 교회의 집회에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빵을 나누며 감사와 찬미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그러기에 현행 교회법도 본당 신부의 주거 의무는 중요하게 다루고 일정한 기간을 비우게 되면 관면을 받을 것과 어느 정도 이상은 자리를 비워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14) 그러므로 볼 수 없는 교회의 본질적 지역 공동체를 통해서 표현되고 성장하며 구원의 경륜이 역사화되는 것이다. 

 

2. 성소의 거대함과 성직자의 허약성 

 

1) 성직의 품위 

 

사제들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증언하는 사람이다. 한국을 방문해 주신 교황님도 성직자들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고 예수님을 나누어 주라.”고 당부하셨다.15) 이들은 하느님의 신비의 관리자들로서 하느님의 숨겨졌던 뜻을 알아듣도록 선포하고 죄인들과 고통 받는 자들을 위로하며 죄를 사해 준다. 그들의 말로써 성신의 능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한 연약한 인간으로 자기들의 죄도 용서받아야 하며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구해야 하는 허약한 사람들이다. 

 

2) 성직자의 나약함 

 

사제직의 기초이며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연약한 인간을 몰라 주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당하신 분이다. 그러나 죄는 지으시지 않았다(히브 4,15). 이 성경 말씀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이 되시고 인간으로서의 허약함을 통해서 완성된 후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는 진리이다(히브 5,7-9). 

 

인간의 상식과 능력으로는 조화시킬 수 없는 이 신비의 역설은 신비의 관리 자인 성직자에게도 해당될 수밖에 없으며 구고사(救古史)의 특성이기도 하다. 죄를 범하여 죽어 마땅한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하여 본성으로는 죽을 수 없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죄 없이 죄인과 같은 죽음을 수락하셨고 그의 죽으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신비를 아는 사람은 또 이 신비를 믿는 사람들만이 십자가를 자랑으로 삼게 되었다.16) 이와 같은 가치 전도는 최후 만찬 시에 예수님이 보여 주신 세족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베드로는인간적 예의와 성의로 스승이 종의 모습으로 하는 봉사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주 예수의 봉사직에 참여하기 위하여 절대적 조건임을 알았을 때 수락하고 만다. 이 모습은 지역교회의 목자인 본당 신부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성소와 자기 자신을 대조해 보면 너무 큰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17) 성직을 수행할 때에는 이 구별이 더욱 크게 느껴져서 믿음과 충실 외에는 다른 아무것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느끼고 또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는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만이 아니고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청되는 것이다.18) 예수님 자신도 게쎄마니 동산과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시며 끝까지 충실하셨다면 그의 수난으로 구원된 모든 신자들도 이 수난의 어두움을 통해서 부활의 빛과 영광에 도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신의 부당함이나 메마름에서 오는 유혹을 잘 견디어 내며 불러 주시고 뽑아 주신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불리움에 따르는 회의와 불안, 무능과 실패의 체험은 성직의 실상(實相) 중 하나임을 알고 동요되지 말 것이다.19) 위기 의식이나 부당함을 느끼는 것은 거룩하신 분을 만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20) 

 

 

결론 

 

본당 신부의 실상은 그의 성실한 성무 집행에 있고 성무 집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나누어 주는 것으로 참된 사제상을 부각 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본당 신부의 사제상은 신부들 자신이나 교우들에 의해서 요청되거나 인정받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인정이나 냉대에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자기의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이와 같은 생활에서 참된 사제상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15,39) 하고 고백하였듯이 부르심에 끝까지 충실하여 '치명’하게 될 때 그는 하느님의 사제였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사제상을 보여 준 사람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본당에 관하여 

교회법 515-518조. 

최창무, 본당이란 무엇인가-교회인 본당, 신학전망 55(1981), 56-68면 및 참고문헌. 

2. 본당 신부에 대하여 

교회법 519-545조. 

R.토마스, 본당 신부를 위한 새 교회법전의 요점들,「司牧」87(1983.5), 86-93면. 

3. 사제 및 사목자 생활과 영성 

최창무, 교직자의 직업윤리, 라틴 교부들 중심으로, 「司牧」 88(1983.7), 47-58면; 89(1983.9), 81-92면; 90(1983.11), 64-70면. 

아우구스띠누스의 목자론, 「司牧」92(1984.3), 67-73면; 93(1984.5), 87-95면; 94(1984.7), 101-107면. 

L. Bouyer, Sinn und Sein des Priesters(원문: Le sens de la vie sacerditale, Tournai 1960). 

O. MoBhamer, Priester und Frau, Freiburg 1961. 

Priesterlicher Lebensstil in der Geganwart(hrg. Echter-Verlag), Wurzburg 1965. 

C. Spicq, Spiritualite sacerdotale d’apres saint Paul, Lectio divina 4, Paris 1954.

 

* 이 글은 61년 3월 서품받은 사제들의 동창회 은경축 기념집 「본당」(1986년 3월 18일 발행)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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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사회 조사 보고서 41-78면, 109-112면, 160-164면, 248면, 375면 등 참조.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교령 2항. 

3) 교회 헌장 10항 참조. 

4) 교회법 519조. 

5) 히브리서는 5-10장에 이르면서 구약의 사제직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대조 설명하고 있다 

6) 골로 1,26-27; 요한 17,3; 2 고린 2,14-46; 에페 1,3-14; 필립 3,8-17 등 참조. 

7) 마태 11,29; 루가 22,24-27; 요한 13,13-18. 

8) 에제 34,1-31;요한 10,1-18. 

9) H. Rahner, Die Pfarre 10;65 참조. 

10) 2 고린 12,9-10; 1 고린 1,17-31; 필립 2,5-11 등 참조. 

11) 2 고린 12,10. 

12) 교회법 522-529조; H. Rahner, Die Pfarre 10. 

13) 사도 2,42-47; 4,32-36. 

14) 교회법 533조. 

15) 1984.5.5. 성직자 수도자와의 만남에서. 

16) 갈라 16,14. 

17) 아우구스띠누스의 강론 PLS 2,545-546. 

18) 갈라 4,14. 

19) 부르심과 관련: 출애 3,4-17;이사 6,1-9;예레 1,4-10 등. 불리운 자의 갈등과 회의: 민수 11,10-15;예레 11,15-20;12,1-5;15,10-18;20,7-18; 욥기 등 참조. 

20) 루가 5,8.

 

[사목, 1993년 6월호, 최창무(가톨릭대학 학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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