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자] 사제의 삶은 예수님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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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162

사제의 삶은 예수님다운 삶

 

 

들어가는 말

 

먼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음을 전제로 말을 하겠다. 하나는 평신도가 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질문자에 따라 분명히 답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먼저 밝힌다.

 

다른 하나는 '신부'라는 말을 쓰겠다는 것이다. '사제'라는 말도 쓸 수 있고 '성직자'라는 말도 쓸 수 있지만 그 말들은 쓰임이 너무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타종교에서도 특히 개신교에서도 쓰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 가톨릭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말은 '신부'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모습이 되신 것처럼 '신부'(神父), 곧 영적인 아버지라는 것이 가톨릭 성직자의 특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 역시 신부라는 말을 쓰고, 이 글에서도 그렇게 쓰기로 한다.

 

 

1. 신부는 누구, 무엇하는 사람인가

 

"신부는 오늘을 사는 예수님이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사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는데, 신부들의 모습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남들에게 보여 주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필자는 신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부들의 독신 생활, 예수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신부들의 기도 생활, 예수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선교와 사목, 예수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연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부의 삶은 예수님의 삶, 예수님다운 삶일 수밖에 없다.

 

신부가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때나 다른 사람들이 신부에 대해서 말할 때 늘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엇갈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2. 신부들의 사목자로서의 삶

 

신부들은 사목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필자는 신부들의 어려움을 말하기 전에 신자들의 그리스도인 생활의 어려움을 먼저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으면 거듭난다고 한다. 새로 난다고 한다. 곧 새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사로 새사람이 되었지만, 자기의 온 삶이 새로운 자기다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생각부터 시작하여 마음가짐, 말, 행동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인다워야 한다. 세례를 받아서 새사람이지만 새사람의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기 전, '자기'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참자기'가 된다. 그런데 자기가 없어지고 참자기로 살아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이와 같이 볼 때, 신부는 성품성사를 받으면서 '참자기'에서 '예수님'이 된다. 성품성사로 예수님이 되었지만 '신부 되어진다. 예수님 되어진다.'는 것이 신부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온 삶이 예수님의 일거일동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어려움인 것이다. 이는 신자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어려움들을 신부들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신부가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부가 신부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신부답지 않으면 안 된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부가 풀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원칙적으로 자기를 없애고 참자기가 되는 것, 곧 예수님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예수님의 삶을 살기 위해 신부들은 어떤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기도와 전도에 힘써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교회의 신부들은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많이 지쳐 있기도 하다. 기도와 전도에 전념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일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님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사목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 교회에 대한 설명이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기도와 전도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일을 나누었다. 그래서 부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사도는 오직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겠다고 하면서 일을 나누었던 것이다. 신부들이 일이 많다고 느끼면 곧바로 나누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해야 할 일을 신부가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부들이 굳이 안 해도 될 것을 어느새 하고 있기 쉽다. 따라서 늘, 언제라도 재검토하여 꼭 자기가 할 것을 구분하고 그것마저도 나누고 나누어 꼭 자기가 해야 할 것만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신부가 사목자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는 생명이다. 신부의 삶에서 기도를 뺀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늘 기도하셨다. 따라서 예수님다운 삶을 사는 신부에게도 기도는 삶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신부들이 하는 기도에는 성무일도가 있다. 신부들은 날마다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 융통성을 가져야 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도인 아침·저녁 기도, 다음으로 독서 기도, 그 다음으로 낮기도, 끝기도로 성무일도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신부는 이뿐 아니라 가정 방문을 한다든지 면담을 하면서 심지어 고해성사를 주면서까지 기도를 한다.

 

바빠서, 타성에 젖어서, 놀다가, 예수님답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신자가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신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하고 만일 신부들이 신부로서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성사를 보아야 할 것이다.

 

2) 효과적인 피정은 마음의 여유에서 온다

 

필자는 신부 수녀들의 피정을 많이 지도하고 있다. 그 피정을 하면서 가장 권장하고 좋아하는 피정은 '한 주간 피정'과 '대침묵 피정'이다.

 

주일을 포함해서 한 주간 피정, 칠일 피정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일을 포함하여 한 주간 피정을 하게 되면 월요일에 잘 쉬고, 주일까지 피정을 함으로써 훨씬 더 유익한 피정이 될 것이다. 특히 주일에 해야 할 본당 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곧 본당 사목 일에서 조금 벗어남으로써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피정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릭고 피정 기간 동안 대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강의를 듣고 그것이 이러냐 저러냐 이야기를 나눈다면 연수회가 될 뿐 진정한 피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미사는 신부의 입을 빌려 예수님께서 거행하신다

 

전례의 핵심은 미사다. 미사의 축성 부분을 보면, 신부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신부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 ......",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신부는 입만 빌려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신부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부는 예수님 모습이어야 한다.

 

강론 때도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 말씀을 전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꾸미거나 좋게 보이려고 하기보다 참자기답게, 예수님답게 미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면 교우들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미사가 될 것이다.

 

4)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신부들 또한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흔히들 '재교육, 평생 교육'이라고 말한다. 교구마다 그것에 대해서 많은 준비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신부들이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오늘을 사는 예수님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예수님은 사회의 변화를 느껴야 하고 그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어야 한다.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사회 변화와 더불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5) 규칙적인 생활에서 힘을 얻는다

 

먼저 신부도 잘 쉬어야 한다. 예수님도 쉬셨다. 복음서에도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서 쉬자."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다운 삶을 사는 신부 역시 쉬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할까. 바쁜 주말을 지내고 난 월요일, 신부들이 쉬는 모습을 보면 각기 다르다. 어떤 신부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등산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잠을 잔다. 반면 어떤 신부들은 밤 시간을 그 시간이 모두 자신의 시간인 양 사용함으로써 늦게 잠자리에 들고 그럼으로써 충분히 자지 못한다. 이 경우는 다음날 본당 일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다.

 

사실 신부 생활의 중심은 기도와 강론 준비로서 주로 오전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신부들이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나기 십상이고 그럼으로써 생활의 리듬이 깨지기 쉽다. 신부들이 자신의 생활을 규칙적으로 잘해 나가고 잘 쉬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비교적 바쁘지 않은 평일을 어떻게 바람직하게 보낼 수 있을까?

 

신부들이 해야 할 것은 기도, 공부, 그리고 쉬는 것이다. 그 가운데 꼭 해야 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렇지 않으면 핵심이 빠지는 신부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 다음 공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날마다 책을 본다든지 강론을 준비한다든지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 쉬어야 한다.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신부들에 따라 다른데, 이는 환경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도시 신부와 농촌 신부를 비교해 보면, 도시 신부에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다. 정해진 모임과 만남, 아무 때나 걸려오는 전화가 많다. 따라서 스스로 시간을 배정하기가 어렵다. 주어지고 정해진 일이 많음으로써 이리 저리 휩쓸릴 수 있는 상황이 많다. 그리고 할 일이 없을 때는 그냥 쉰다. 일을 하지 않는다. 마냥 쉬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 농촌 신부는 주말을 지낸 평일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특히 농번기에는 농민들이 굉장히 바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한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신부가 스스로 자기 할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계획해야 하고 자기 나름대로 일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차이는 신부들의 생활에 분명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6) 신부는 언제나 신부다

 

신부에게는 신부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휴가 기간에도 신부 생활은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휴가는 그냥 쉬는 것이다. 친구 집을 찾아간다든지 산에 간다든지 운동한다든지. 필자는 개인적으로 등산, 운동, 수영 따위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골프 치는 것 등 돈 드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신자들에게뿐 아니라 안 믿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평신도들에게 여러 번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가 직업상 골프를 치러 갈 때가 있는데 거기서 종종 신부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어색한 느낌이 든단다. 불쾌한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신부가 왜 그런 데 오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는 신부가 신부로서의 표양이 되고 있지 못함을 말해 준다고 본다.

 

안식년은 교구 별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신부들을 10년마다 보냈다. 신부들과 일 대 일로 만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해서 정했다. 이것은 작은 교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고 싶어하는 신부는 공부하게 하고, 여행하고 싶어하는 신부는 여행도 하면서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그런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본다.

 

 

3. 신부의 독신 생활

 

신부가 독신 생활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부는 예수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기혼 사제도 있었다. 지금도 동방 교회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신부들이 독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신 삶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신부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신부'라고 하면 영적인 아버지이다. 따라서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을 제 딸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버지라고 한다면 제 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딸이라고 하면 보호하고 감싸주고 다치지 않게 늘 살피고 곱게 살 수 있도록 적절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여성에 대해서 '나이든 여성은 어머니를 대하듯이 젊은 여성들은 동생을 대하듯이 대하라'(1디모 5장 참조)고 한 성서 기록도 있다.

 

신부도 사람이기 때문에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얼마든지 느낌이 있을 수 있다. 남자는 여성을 대하는 데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고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여성을 보시고 느끼시는 바가 없었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신부는 신부다. 유혹하는 여성마저도 여성으로 보기보다 딸로 보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4. 신부의 사회 활동

 

신부도 사회 속에서 산다. 그래서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또 경우에 따라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평신도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평신도들은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신부의 사명은 복음 선포다. 그래서 서로 중점을 두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신부들이 사회 생활하는 데 특별한 제한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한국 실정을 보면 본당 사목 하는 신부가 반, 나머지 반은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신학교에서, 교회 기관이나 교구청에서, 복지 사업 단체에서 사회와 밀접하게 부딪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신부이지만 사회의 일에 나서야 할 때가 있다. 필자도 안동교구에 있을 때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선 경우가 있었다. 마땅히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5. 한국 교회가 앞으로 더 힘써야 할 것

 

주교의 역할은 신부들을 뒷받침하는 것이고, 지도하는 것이고, 방문하는 것이며, 신부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다.

 

신부들은 해야 할 일만 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가 유교 불교 영향을 받은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는데, 신부들이 특히 본당의 경우 전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결정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것을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외국 본당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부들이 해야 할 것을 지키고 사목회나 평신도들의 활동을 오히려 뒷받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신부들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부들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영적인 뒷받침을 해 주며 신부로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신부들이 직접 안 해도 될 것은 나누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신부 수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해외 선교 신부가 많아져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성소자가 많은 것은 주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축복이었다. 따라서 그 축복을 나누어야 한다. 온 세상에 선교사를 보내야 할 때다. 그런데 한민족의 단일성에서 비롯한 한국의 특수성은 성직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데도 나눌 수 있는 축복을 실천하기 어렵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성 때문에 해외 선교에 나간 신부들 가운데 언어 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현지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요즘 외국에 나가는 신부가 조금씩 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다. 지구촌은 하나다. 그래서 어려움은 있겠지만 선교 신부가 많아져야 하고, 많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구에서는 신부들의 평생 교육에 힘써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신부들은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신부들에게 그러한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현재 서울대교구 소속 행주 성당에 계시는 두봉 주교님을 만나 인터뷰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주).

 

[사목, 2002년 3월호, 두봉(전 안동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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