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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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2-0829...수...세례자요한의 순교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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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8-28 ㅣ No.1295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 [0829]

예레미야 1,17-19           마르코 6,17-29

2012. 8. 29. () 등촌3

주제 : 삶의 자신감이 가져오는 결과(!)

사람이 세상에서 용기를 갖고, 그 용기를 드러내며 사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앞에 펼쳐진 현실이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前提)로 합니다. 너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무런 문제없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길을 간다고 지적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고, 그런 소리를 들을 상황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옳은 삶의 방법을 말했을 때, 반응도 두 가지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 잘못을 돌이켜 삶의 자세를 바꾸는 경우가 그 첫 번째이고, 내가 잘못 생각하여 사실은 잘못도 아닌데, 잘못이라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의 소명을 충실히 실천한 것이므로, 하느님은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있겠노라는 약속을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복잡합니다. 현 상황이 잘못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시시비비는 논의되지 않고, 그저 대중(大衆)의 논리대로 삶은 흘러갑니다. 그게 반드시 올바른 길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세례자요한의 삶을 묘사하는 몇몇의 신앙영화들을 보면, 어떤 마음과 생각이면 그렇게 살 수 있게 할까 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목숨을 내놓기까지 초지일관한 자세를 갖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오래전에 나온 영화이기는 합니다만, 1850년 남미를 배경으로 하는 미션이라는 영화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의 내 목숨에 위협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나마 위협으로 끝나면 다행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세례자요한의 삶의 경우처럼, 세상권력자의 힘에 의해서 더 이상 옳은 소리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예상할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굽힘없이 살아야 할까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소리도 듣지 못한 귀머거리처럼, 벙어리로 살아야 할까요?

누구도 효과적인 실천방법을 알려주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예레미야 예언서, 독서를 통해서 들은 것처럼, 세상의 힘에 눌려서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지 못하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아주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실천한다고 해서, 이 세상의 삶에서 떡이나 밥이나 옷이나 돈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 목숨을 달라고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례자요한의 순교를 기억하는 날, 올바른 삶의 지혜를 주시라 청하고, 그 지혜를 잘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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