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2-1216...대림3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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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12-22 ㅣ No.1332

대림 3 주일 [다해]

스바니야 3,14-17      필리피 4,4-7     루카 3,10-18

2012. 12. 16. 등촌3

주제 : 하느님을 맞이하는 자세

우리는 세상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고가는 사람 없이 딱하게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이 시간에 할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는 찾아갈 대상이나 나를 찾아올 손님이 누구인지에 따라 준비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다양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우리가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준비하는 자세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것임은 당연한 소리일 것입니다

 

< 오늘 // 어제 >, 성당에서는 성탄을 맞이할 준비를 위한 대청소가 있었습니다. 담당구역을 정하고 930분이나 10시쯤부터 청소를 시작했는데, 1030분이되기 전에 마무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어떠했을까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협동한 결과로 빨리 마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대충했기 때문에 시간을 적게 쓴 것이었을까요? 이렇게 질문은 합니다만, 사실 이런 일에 대한 정확한 평가방법은 따로 없습니다.

 

세상일들에는 다른 사람이 그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일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혼인준비나 잔치준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다음 토요일인 1222일에 거행하게 될 세례식에 참여하여 세례를 받는 일도 그런 일들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일들에는 잘 한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판단할 수 있고, 왜 저만큼 밖에 준비하지 않을까 하는 평가와 그 사람이 준비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하는 부족함이 느껴져서 심히 미안하다는 생각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대림3주일입니다. 2012년에 기념하게 될 성탄도 이제는 시간으로는 2주간 혹은 < 열흘이나 // 아흐레 > 남았습니다. ‘일각(一刻)이 여()삼추(三秋)’ 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하겠지만, 실제 느낌으로는 그 시간이 길게 남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때, 올해는 유난히 성탄의 기쁨을 노래할 힘이 없는 듯 보입니다만, 성탄대축일을 맞이하는 준비를 잘 하고 있느냐고 나에게 누군가가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내가 나를 향해서 하는 대답이 다를 것이고, 내가 남에게 말로 드러내는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 대림3주일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대림절은 하느님께서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준비를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간이기에, 오늘 루카복음서의 말씀은 세례자요한의 선포를 전합니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자세와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광야의 목소리였던 세례자요한은 더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누어주라, 정해진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고, 가지려고 하지 마라,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현재의 것으로 만족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세례자요한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살이에 대한 대처방법이 구구절절 다 옳은 말씀이라고 평가하겠지만, 이 말씀을 대하면서 내가 정말로 실천하고 있는 말씀이고, 내 삶이 그에 가까이 가 있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어쩌면 늘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대상들 안에 들어있느냐가 더 중요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할 준비는 프란치스코성인이 최초로 만들었다는 구유를 잘 꾸미는 일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길을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거나 듣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하는데서 시작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구유를 준비하는데 참여하고, 캐롤(=기쁨의 노래)을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성탄의 준비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럴 때 입장은 아주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탄,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찾아오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구체적인 삶의 자세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방문을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스바니야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손을 늘어뜨리고 힘없는 상태로 있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언제 우리 삶에 하느님이 찾아 오실지는 모르지만, 기쁘고 또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기쁘게 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계심을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은 세상살이에서 흔히 하는 말처럼, 세상목숨이 끝나고 난 다음에 이루어질 일은 아닙니다. 필리피 교회공동체에 살던 사람들을 향하여, 바오로사도께서 쓰신 편지에 나오는 것처럼,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자세라야만 주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자세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건 이론이라고 말하거나, 가치 없는 말이라고 차치해버린다면 그런 사람은 그가 갖는 삶의 자세에 일치하는 결과만 얻게 될 것입니다.

 

대림3번째 주일, 우리가 자선을 베풀어야 함을 기억하는 날, 내가 남을 위하여 돈을 내놓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이들을 기쁜 삶으로 이끌 방법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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