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3-0127...연중3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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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1-27 ㅣ No.1338

연중 3 주일 (다해)

느헤미야 8,2-4.5-6.8-10                  1코린 12,12-30            루카 1,1-4; 4,14-21

2013. 1. 27. 등촌3

주제 : 내가 가장 잘 하는 일

사람의 삶에 희망을 주는 것도 많고, 희망을 뺏고 절망을 주는 것도 많은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거창한 말로 시작했습니다만, 이런 현실에서 절망하는 일 없이 우리의 삶에 희망만 오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 삶에 기쁜 소식만 가까이 오게 하고, 절망이 오더라도 그것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질문은 쉽지만, 대답은 참 어렵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숨을 멈추는 순간이 되면 나는 어떤 일을 했다고 세상 사람들이 판단해주겠습니까? 이런 소리를 들으면, 여러분의 생각에 떠오르는 미래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세례자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난 다음, 세례를 받으셨고, 전도를 시작하는 첫 목소리는 나자렛 회당에서 하셨다고 쓰는 것이 루카복음의 내용입니다. 오늘 들은 복음내용은 묵주기도, 빛의 신비3단에서 기억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셨다는 시작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예언자의 말씀을 사용하여 선포한 내용은 무엇이라고 기억하십니까? 우리도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른다는 신앙인으로 살면서, 내 삶의 기준은 과연 어디에 두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는 있습니다.

 

이사야예언서를 읽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내용은, “하느님의 영께서는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하느님의 영으로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하러왔고,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들 사이에 함께 하신다는 <희년>을 선포하러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히브리민족에게 그 입장은 달랐을 소리였을 것입니다. 이론은 그렇습니다만, 히브리민족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오늘 복음에 그 해석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이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셨지만, 실제로 히브리민족 사람들이 현실로 겪고 있던 로마제국의 통치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그러했겠습니까? 사람들이 바라던 현실의 내용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첫 번째 독서 말씀은, 기원전 400년 경에, 바빌론 유배에서 두 번째 무리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즈라 사제가 들려주는 율법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담긴 율법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백성들이 눈물을 보이고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울었는지 그 이유가 독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자신들을 포함하여, 선조들이 위대한 임금 다윗이래로 하느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지키지 않았던 잘못의 결과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고 싶었는데, 그 축복을 베풀어주지 않은 하느님이 밉고, 이민족의 지배에 눌려 살아야 했던 자기들의 신세가 서러워서 그랬을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일들 가운데는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있고, 하느님의 지혜를 얻어야만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은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들 앞에 일어나는 세상의 일들을 잘 이해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처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그 위치를 올바르게 알고, 그 위치에서 충실히 살 때,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 다른 사람과 일치하여, ‘그리스도 신비체의 몸으로 살아갈 때, 그때가 가장 훌륭하게 사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비체의 몸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사람의 몸이라고 부르는 대상도 수많은 역할을 분담하는 지체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말씀에도 나왔습니다만, ‘손과 발, 귀와 눈이 내 삶에 담당하는 기능은 다른 것이 대신해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일들입니다. 몸이 할 수 있는 여러 지체들 중에서, 우리가 한 가지 기능만 더 우대할 수는 있지만, 내가 특별히 여기는 지체만 몸에 남아있고, 다른 지체가 없다면 우대하는 지체가 그 기능을 발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힘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다른 이와 협동해서 무슨 역할을 하도록 명을 받았는지, 자기 귀로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 자신만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명일 것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이라고 알아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가 가진 능력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이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데에 협조할 수 있다면 정말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들은 것처럼, 예수님의 사명선포를 들으면서, 우리의 사명은 어떤 것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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