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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상의 평화는 불가능한가?: 회칙 지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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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30 ㅣ No.1083

[경향 돋보기 - 지상의 평화는 불가능한가?] 회칙 「지상의 평화」와 그리스도인의 자세


복자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1963년 4월 11일에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전 세계 그리스도인과 선의의 모든 이에게 반포하셨다. 요한 23세는 1958년 교황이 되어 5년간 직무를 수행하셨는데, 이 회칙 반포 후 2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인 6월 3일 세상을 떠나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하였으나 끝을 보지 못하고 회기 중에 선종하신 것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지난 2000년 9월 3일 복자품에 오르셨다. 올해는 「지상의 평화」 회칙을 반포한 지 50주년이 된다.

이 회칙은 ‘지상의 평화’라는 말로 시작한다.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집니다”(머리말 1항).

평화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은 인류에게 다시 없을 것이다.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니 ‘평화’를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 유의어로는 안전, 평온, 안온에 해당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평화’는 인간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구약성경 133곳에, 신약성경 74곳에서 발견될 정도로 많다. 그만큼 사람과 공동체의 절실한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 가정, 사회, 나라, 세계가 불목과 싸움, 미움, 질투를 멀리하고 화목과 사랑의 평화스러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모든 이의 이상이며 꿈이다.


회칙의 배경과 현대사회

요한 23세 교황께서 교황직을 수행하시던 당시에 과학과 기술은 경이로운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는 두 차례의 잔인한 전쟁을 겪었고, 세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며 무서운 대립과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1961년에는 독일 베를린에 장벽이 세워져 도시를 둘로 나누어, 이 불통의 벽은 세상을 반씩 나누는 상징물이 되었다. 또 회칙이 반포되기 불과 6개월 전인 1962년 10월, 로마에서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되었으나, 냉전 중에 있던 양 진영의 인류는 핵전쟁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1962년 10월 동서 두 이념을 대표하는 미국과 소련이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극한 대립사태에 직면하였으나 요한 23세 교황의 중재와 노력으로 전쟁 발발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세상의 평화가 절실하다고 본 요한 23세 교황은 이듬해 4월 바로 이 「지상의 평화」 회칙을 반포하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세계정세는 매우 불안하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국가 간 전쟁, 내전 등 국지전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에도 북한의 핵 문제, 남북한 전쟁발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 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지난 5월 3일 우리측 인원의 전원철수 조치로 잠정 폐쇄되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2012년 말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하고, 올 2월 3차 핵실험을 하였으며, 지난 5월 18-20일 사이에 단거리발사체 6발을 발사하였다. 이것이 휴전선 일대에 배치되면 서울과 수도권, 평택시 미군기지와 그 남쪽까지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

남북한 사이에 상호 신뢰와 존중, 대화를 통해 평화와 안정의 틀을 어서 구축해야 한다. 회칙 「지상의 평화」의 정신에 따라 우리 민족과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도록 기도하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회칙의 구조


회칙은 세상의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제안이나 계획을 내놓고 있지 않다. 교회는 정치집단이 아니기에 사회-정치적 과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방향과 전망을 제시한다. 회칙은 세상이 평화의 길을 가려면 하느님께서 명하신 계명과 질서를 준수하라고 강조한다. 자연과 온갖 생명의 존중심, 인간 사이의 존중과 질서의식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세상의 평화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회칙은 머리말과 결론, 본문 5부로 되어있으며 모두 172개 항에 이른다. 제1부 ‘공동생활의 질서’에서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를 소상히 언급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불가침한 기본권리를 성찰하도록 인도한다.

제2부 ‘각 정치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과 공권력 간의 관계’에서는 모든 권위와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고, 평화는 반드시 도덕적 기초와 토대를 갖는다고 기술한다.

제3부 ‘정치 공동체들 간의 관계’에서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정치 공동체들이 진리와 정의에 따라 정진하라고 강조하고, 제4부 ‘인간과 정치 공동체들의 세계 공동체에 대한 관계’에서는 평화가 사람들의 진솔한 의식, 대화, 행위를 통해 정착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제5부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는 가톨릭인들’에서는 평화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실천이 중요하며, 특히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투신이 반드시 요청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평화의 길을 거부하는 행위들

그런데 세상에는 폭력과 무력을 이용하고, 교묘한 거짓과 범죄행위를 통하여 개인과 국가 사이의 이익을 꾀하려는 유혹이 적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안에 하느님은 양심과 도덕심을 심어주셨다. 회칙은 아무도 이를 거스를 수 없다고 강조한다(4-7항). 내밀하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불멸하는 의식으로 양심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마음의 지성소에 새겨진 양심을 거스르면 개인과 국가 공동체는 탈선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명분 없는 싸움과 갈등을 연출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 나라들이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모든 민족과 나라가 평화를 열망하였지만, 완전한 안정과 태평성대를 향유한 시대는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끊임없이 싸움, 질투, 살육이 이어졌다. 돈이 탐나서 자기 집이나 가게에 불을 지르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고 자해하며,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 가장 가까운 애인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 시대의 평화를 파괴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개인적인 범죄 행위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하고 공포에 몰아넣는 슬픈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여러 가지 사회-정치적인 사안들로 하여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노동자, 지역적이고 계층적인 문제, 국책사업의 추진과 관련한 문제 등이 국민들의 평화와 안정, 화합을 해치고 있다. 몇몇 사안을 살펴보겠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2,600여 명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장을 비롯한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되었다.

농성을 진압하려고 최루액과 테이저건을 사용하는 등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와 함께, 노조측이 경찰의 진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새총 발사 등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해고자와 그 가족들 수십 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이명박 정부 임기 중 매우 뜨거운 논란을 빚었다. 먼저 강정처럼 해안이 돌출된 지형이 군사시설물, 특히 해군시설에 적합한지 의문이며, 군사시설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은폐, 엄폐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의가 제기되었다.

주민 찬반의견을 왜곡하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시점에서 무리하게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을 하고 시위군중을 연행하고 물리적 해산을 시도한 당국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아직도 이 문제는 종결되지 않고 있다. 3만여 명의 무죄한 이들이 학살당한 4·3사태의 아픔이 서려있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도민의 희망을 정부가 저버리지 말아달라는 소망이 쇄도하고 있다.

경남 밀양 송전탑 저지운동은 8년간 계속되고 있다. 한전이 지난 5월 18-19일에 사업을 재개한다고 하자 평온했던 산골 마을은 전쟁터가 됐고, 중장비를 막고 강력하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20여 명의 70-80대 노인들이 실신하거나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급하려고 밀양의 수려한 경관지역과 주민의 생활터전에 송전탑을 세우려 하는 것이다. 2012년 1월에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자살한 이후 이 지역 5개면 노인들이 힘을 합쳐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밀양은 송전선로가 76만 5,000볼트 초고압이며, 그 초고압을 실어 나르는 송전탑의 높이만 평균 100m가 넘는다. 송전탑 아래에서 살아갈 주민들에게 전자파에 따른 건강 피해는 불을 보듯 분명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송전선로를 땅으로 묻는 지중화 방식을 원한다. 송전탑 백지화를 위해 전국의 환경 · 권익 · 종교 단체가 힘을 합하여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이런 문제들로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이들이 심한 갈등과 다툼, 용서와 양보 없는 대립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양보와 타협 없는 싸움을 벌이면 결국 평화는 멀리 사라지고 미움, 상처, 가슴앓이만 남는다. 열린 마음, 이해와 포용의 정신으로 평화의 나라를 만드는 소명이 우리의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이다.

부족국가, 민족국가, 다민족국가로 발전하면서 인류는 수많은 살육적 전쟁을 치렀다. 우리 민족도 큰 아픔을 겪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하기까지 3년간 계속되었다.

이 전쟁으로 한국군 사상자는 62만여 명(전사 14만여 명, 부상자 44만여 명, 실종 및 포로 4만여 명), 연합군 사상자는 15만여 명(전사 4만여 명, 부상자 10만여 명, 실종 및 포로 1만여 명)이나 되었다. 북한은 150만여 명의 사상자와 행불자가 발생하였다. 1,000만여 명의 이산가족도 생겼다. 이로써 같은 언어와 문화, 역사를 갖고 있던 우리 민족은 치유하기 어려운 막대한 정신적 상처와 고통,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되었다.

20세기에 지구촌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참상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연합국은 500만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2,200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동맹국은 330만여 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1,500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민간인 사망자는 군인보다 더 많아서 1,30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연합국 측에서는 전투병력과 민간인을 합하여 4,400여 만 명,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 등 기타 동맹국은 전투병력과 민간인을 합하여 1,450여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승국을 중심으로 1945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창설되었다. 소련 군대가 주둔한 동유럽, 외몽골, 북한 등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동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진영으로 재편되었다.

한 국가의 내전이나 국가 사이의 전쟁은 막대한 인적, 물적, 문화적 손실을 초래한다. 하물며 세계대전이 남긴 비참하고 처참한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현재 9개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위력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나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지구촌 전체가 초토화되어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세계는 평화를 보장하는 상호 신뢰와 협조적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끊임없는 대화와 바람직한 평화구축 노력에 힘써야 한다.


맺는말

이 회칙의 주제는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163-165항). 선의의 모든 이가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진리, 정의, 사랑, 자유 안에서 사회생활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개인 사이의 관계, 시민과 정치 공동체 사이의 관계, 개인, 가정, 종교단체, 국가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세계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질서 안에서 참된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이 회칙은 분명한 지침을 주고 있다(166-172항). 개인과 공동체 구성원이 자유를 갈망하지 않고, 사랑으로 활성화되지 않고, 정의와 반대의 길을 가면서 진리 위에 서있지 않으면 평화는 결코 실현될 수 없으며, 그런 평화는 공허한 언어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사회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충실한 거울이다. 평화의 선물을 주시도록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에페 2,14-17).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주셨고, 평화를 전달하고 계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대의 예언자로서, 평화를 전하고 뿌리내리게 하는 사도직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이용훈 마티아 주교(수원교구 교구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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