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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정보 사회와 자아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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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254

정보 사회와 자아 정체성

 

 

서론 

 

정보화 시대 또는 정보 사회로 명명되는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정보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만큼이나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변화에 대한 해석들도 다양하다. 더불어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게 될 사회적 변화와 현상에 대한 예측도 무수히 다르다. 그러나 다양한 시각과 예측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동의하고 있는 것은 산업 혁명에 비견될 정도의 정보 통신 기술 혁명1)이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인가가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인간이 가지게 되는 일차적인 감정은 두려움이다. 변화는 현상태의 바뀜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안정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또는 익숙하였던 환경에서 낯선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는 속성이다. 그래서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일단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과 비관적인 예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정보 사회를 산업 사회와 구분하면서 무엇인가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이 때, 정보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비관적인 예견은 그래서 어찌 보면 인간에 내재된 속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정보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변화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에 따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냉정한 시각으로 살펴보아야만 할 구석들이 상당히 있다.

 

정보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논의들이 단지 변화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에 따른 것이며, 사회는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도 더욱 발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일 경우 정보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단순한 기우로 치부하면 된다. 그러나 정보 사회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에 따른 것이기보다는 실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사실에 따른 것이라고 할 경우 인간 사회는 발전과 진보라는 그럴듯한 색채로 덧칠한 퇴보와 파멸의 밑그림을 가진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 사회에 대한 더욱 냉철한 논의는 좀더 다양하게 그리고 좀더 심도 있게 전개된다고 하여도 결코 과한 행동이 아닌, 어쩌면 인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정보 사회에 대한 더욱더 냉철한 논의를 유도하고자 하는 아주 작은 노력일 뿐이다. 연구자가 나름대로의 가치 체계를 가진 인간인 이상, 연구자가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하는 주장은 가당하지 않다. 이는 가장 객관적인 사회적 사실을 밝혀 내고자 노력한다고 하는 실증주의적인 입장의 과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가해지는 비난 논리이다. 유사한 논리가 이 글에도 가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정보 사회에 대한 발제자의 가치가 분명히 글의 구석구석에서 배어 나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 사회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을 가진 발제자의 가치관은 정보 사회를 제아무리 중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하였음에도 글의 곳곳에서 발견될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 사회에 대한 냉철한 논의의 필요성을 더욱더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보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대주제는 이 글의 발표자에게는 너무나도 과중한 주제로 다가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는 여러 가지의 경험들과 맞닥뜨리게 함은 아닌 것이라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발제자에게 정보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대주제는 인간의 힘없음과 더욱이 지식이라고 여겨지는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게 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발제자의 정리되지 못한 사고 속에서 정보 사회와 자아 정체감이라고 하는 소주제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음을 미리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정보 사회와 자아 정체감이라고 하는 소주제를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병리 현상 또는 개인의 일탈 행위들을 개인의 자아 정체감 형성 문제와 연결시켜 다루어 보고자 하였다. 정보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개인의 일탈 행위와 자아 정체감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해 가다 보면 정보 사회에서의 인간 존엄성을 다룰 수 있는 그 어떤 단초라도 얻어 내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엮어 낸 글이 이 글이며, 이를 통해 정보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의 문제가 좀더 깊이 있게 논의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자아 정체성과 환경 

 

자아 정체성이란 흔히 동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인간만이 지닌 특성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간은 동물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자신이 유한한 생을 산다고 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생활하는 동물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이며 자신은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따라서 자아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성찰적인 사고 과정들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인간 사고의 산물이다.

 

인간은 생의 모든 단계를 거쳐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자아 정체성의 확립은 인간이 평생 동안 이루어 내야만 하는 생의 과업이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자아는 인간이 자기를 둘러싼 주위의 환경들을 인식하고, 주위 환경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아 정체성이란, 객체로서의 자아와 주체로서의 자아가 동일시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곧 타인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상상하게 된 객체로서의 자기 자신(객체로서의 자아)과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자신(주체로서의 자아)을 맞추어 가면서 형성하게 되는 것이 자아 정체성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그래서 이른바 정신 질환자로 판명되는 인간들의 경우는 객체로서의 자아와 주체로서의 자아가 동일시되지 못하고 또한 통합되지 못함으로써 자아 정체성이 부재되었거나 복수의 자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로 해석되고 있다.

 

주체로서의 자아와 객체로서의 자아가 동일시되는 과정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환경에 대한 성찰적 사고가 필요하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타인에게서 비롯된 정서적 환경을 포함한다. 정보 사회에 들어와 겪게 되는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개인의 자아 정체성 확립에서 과거와는 다른 물리적, 정서적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도전과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자아 정체성 확립과 관련된 도전과 문제들이 정보 사회에 들어와서 제기되는 문제들만은 아니다. 이미 산업 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아 정체성 확립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자아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곧 계몽 시대에 개인은 온전한 중심을 갖춘 통합된 존재로서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통합된 하나의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 여겨졌던 자아 정체성에 대한 시각이 후기 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개인은 하나의 안정된 정체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여러 갈래로 파편화된, 그래서 때로는 모순되거나 결정되지 않은 정체성들을 복합적으로 지닌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자아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에는 산업 사회에서 학문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사회 과학의 발달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사회학에서 자아 정체성은 자아와 사회 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곧 개인의 정체성은 개인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완전한 정체성 확립 능력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채워져야만 하는 완전성의 결핍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일관된 자아를 중심으로 통합되지는 않는다고 여기게 되었다.2)

 

또한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산업 사회에서 개인의 자아를 해체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자아란 우리가 생각하는 중심의 관망자나 중앙의 의미 산출자가 아니며 오히려 복잡 다양한 의식의 흐름을 연출하는 병열 회로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자아는 다원적 자아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3) 

 

산업 사회에서 지적된 자아의 파편화 현상과 다원화 현상은 우리에게 정보 사회의 비윤리적 일탈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윤리적 일탈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로서 자아의 파편화와 다원화 현상은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인간 자아의 파편화 현상과 다원화 현상은 인간의 주위에 둘러 쳐져 있는 환경에 대한 고찰을 우선적으로 요구한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한 고찰을 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정보 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비윤리적 일탈의 현상 또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현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분석하고자 한다. 

 

 

2. 정보 사회의 일탈 행위 성향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탈 행위는 다양하다. 다양한 일탈 행위 중에서도 산업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상 공간을 중심으로 일탈 행위의 성향을 살펴보면 커다랗게 세 가지의 특성 - 1. 성 관련 일탈 행위의 증가, 2. 사회 규범 해체적 일탈 행위의 증가, 3. 개인 권리 침해의 일탈 행위 증가-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1) 성 관련 일탈 행위의 증가

 

정보 사회는 산업 사회에 비해 성과 관련된 일탈 행위의 성향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1996년 6월 말 현재까지 경찰에서 적발한 컴퓨터 관련 사범은 1,370명으로 1995년 같은 기간에 적발한 274명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 경찰이 적발한 범죄를 유형별로 살펴볼 때 인터넷을 이용한 음란, 복제물 판매와 사이버 성폭력이 1,302명으로 가장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금융 전산 자료 유출 및 홈뱅킹 사기 등의 사범은 10명, 그리고 해킹 사범은 4명, 컴퓨터 바이러스 제작 및 유포 3명, 인터넷 불법 사이트 운영 2명 등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성 관련 일탈 행위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성 관련 일탈 행위는 1996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여 급기야 1999년 경찰은 사이버상에서의 음란물과 성폭력 범죄 등과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7월 정부는 사이버 범죄의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의지를 천명하게 되었다. 

 

"'빨간마후라'에서 'O양의 비디오'까지 아마추어들이 찍은 음란물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확산 속도와 범위, 사회적 파장은 2년 전 '빨간마후라' 때와 비교할 수도 없다. 'O양의 비디오'류의 음란물 대량 유통과 상업화는 인터넷과 CD롬이라는 뉴미디어가 가속화시키고 있다. A양의 옛 애인 H씨의 검찰 진술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O양 비디오'도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유포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아마추어 포르노'의 효시인 '빨간마후라'는 중고생을 중심으로 비디오 한 개당 2만~3만원씩에 수천 개쯤 팔렸다며 'O양 비디오를 본 사람은 수십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4) 

 

성과 관련된 일탈 행위의 증가가 비단 한국의 사회에서만 높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 사회에 접어들어 나타나고 있는 성 관련 일탈 행위의 증가 성향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 회사인 '데이터 모니터'가 밝힌 인터넷 시장 조사 내용을 보면 1998년 미국과 유럽에서 성인 사이트가 벌어들인 돈은 9억7천만 달러로 각종 정보를 파는 인터넷 콘텐츠 시장 매출 총액(14억 달러)의 69%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시장 조사 회사인 '미디어 매트릭스'가 조사한 결과 1998년 9월 현재 인터넷 검색 엔진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자 두 명 중 한 명은 성인 사이트를 찾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성인 사이트의 접속 증가가 곧 성과 관련된 일탈 행위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성과 관련된 정보의 증가는 인간의 성적 욕구와 충동을 자극함으로써 성 관련 일탈 행위의 동기로 작용하게 되어 성과 관련된 일탈 행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짙은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인터넷 음란 호객 사이트의 범람은 성과 관련된 정보의 증가 현상이 초래하는 부작용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음란 호객 사이트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윤락녀를 모집하거나, 섹스파트너 교환을 제안하는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정보 가운데는 심지어 자신을 20만원에 판다는 광고 문구와 함께 자신의 사진과 신체 치수, 그리고 연락처까지도 게시하고 있어 산업 사회의 성적 일탈 행위의 하나였던 매매춘의 윤락 행위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가상 공간을 통해 너무도 쉽게 그리고 일상의 삶 가까이에 다가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성인은 물론 청소년들에게까지도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성 관련 정보의 범람은 특히 청소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통신을 통한 원조 교제의 광고는 매매춘의 대상이 성인에서 청소년들로 확장되고 있음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심각한 영향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모든 조사 연구에서 정보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정보들의 가장 대표적인 수혜자들은 성인들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라는 모순적 결과를 보여 주고 있어, 앞으로 성과 관련된 청소년의 일탈 행위가 늘어날 가능성을 충분히 점칠 수 있다.

 

성과 관련된 일탈 행위의 증가는 포르노그라피의 영역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사이버상에서의 성폭력은 그것이 비록 현실 세계에서의 성폭력처럼 육체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폭력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육체적인 성폭력에 거의 유사한 피해를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성 관련 일탈 행위의 증가에 따른 사회적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이버 성폭력의 일례로는 최근 들어 늘고 있는 사이버 스토킹이 있다. 사이버 스토킹은 가상 세계에서 불특정 다수가 익명으로 만난다는 특성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의 스토킹보다 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이버 스토킹의 피해는 전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한국의 경우 사이버 스토킹의 피해자는 지난해 월평균 5명 정도로 과거에 비해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정보 사회에서 사이버 스토킹의 피해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견된다. 미국의 경우 1999년 사이버 스토킹의 가해자를 공식 기소하여 징역 7년의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함으로써 성폭력 피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나 성 관련 일탈 행위의 증가는 앞으로 정보 사회에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 '인류의 미래는 섹스 곱하기 테크놀로지이다' 고 단언하고 있는 제이 발라드의 주장5)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인류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되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2) 사회 규범 해체적 일탈 행위의 증가

 

정보 사회의 일탈 성향으로 지적될 수 있는 또 다른 성향은 '사회 규범 해체적 일탈 행위의 증가'이다. 규범이란 사회 구성원들의 행위에 대한 규칙과 기대를 의미한다. 사회 규범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합의된, 기대되는 행위의 기초적 준거이다. 정보 사회에 접어들면서 산업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사회적 행위의 기초 준거는 해체되고 있다. 정보 사회에서의 규범의 해체 현상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예로는 해킹,6) 바이러스 유포, 허위 정보의 유포라는 컴퓨터 범죄가 지적될 수 있다.

 

해킹은 타인의 컴퓨터 시스템에 무단 접속하여 중요 정보를 검색하거나 파괴하고 심지어는 타인의 정보를 훔치는 절도 행위를 통틀어 의미한다. 해킹에 대한 정의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 곧 '무단 접속', '파괴', '절도'의 용어들은 일반적으로 반규범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이 반규범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용어인데도 해킹의 빈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해킹을 옹호하는 주장들마저 늘고 있어 기존의 반규범적이라는 준거 자체가 정보 사회에서 해체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해킹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주장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7) 우선 해커들은 자신의 행동이 '해커 윤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해커들은 자신들이 반규범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다른 규범에서 행동할 뿐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나 사상을 갖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닌 것처럼 자신들의 행위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커들이 제시하고 있는 행위의 준거가 되는 가치관은 '정보는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어야 하며 거기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커들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사회가 더욱더 개방되고 발전적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들은 사회의 발전을 해킹이라는 수단으로 이룩하고자 한다는 주장을 성립시키고 있다.

 

두 번째로 해커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사회의 안전을 강화하는 일종의 봉사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이 해킹을 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의 보안상 결함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해커들은 시스템의 보안 결함을 찾아내는 사회적 봉사자라는 것이다. 해커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시스템의 안정성이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고 있다고 항변한다. 타인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기물을 검색하고 파괴하고 훔쳐 가는 행동을 그 가옥의 안정성 강화를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항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동안 반사회적 행동으로 여겨졌던 사회적 규범들이 해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커들이 자신을 항변하는 세 번째 주장은 남아 도는 시스템 논변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값비싼 기계들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활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비어 있는 타인의 집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 사회적인 낭비를 줄이는 길이기 때문에 빈집은 그것이 비록 타인의 집이라고 하더라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적인 비약을 가능하게 한다.8)

컴퓨터 바이러스 유포란 컴퓨터에 침입하여 컴퓨터를 오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을 유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이 가동될 경우 컴퓨터 시스템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저장된 파일을 손상시킴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시간적인 손실을 야기한다.

 

최근 들어 발생하고 있는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는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전세계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8년 현재 약 500여 종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으며, 그 중 45%는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PC 인구 가운데 약 90% 이상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바이러스의 유포에 따른 피해는 거의 일상 생활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바이러스 유포자에 대한 검거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바이러스의 유포자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세계적인 피해에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제작한 바이러스를 고의적으로 유포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은 분명 반사회적 행동이다. 그러한 반사회적 행동의 빈도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사회적 규범이 해체되고 있는 현상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사회적 규범의 해체가 이루어지는 현상은 반규범적 일탈 행위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환경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듀르크하임은 사회적 일탈 행위는 그것이 사회적 규범과 법으로 제재를 당함으로써 사회적 구성원들에게 규범과 법에 대한 준수 의식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그것이 국경을 뛰어넘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한 제재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닌 행위이다. 따라서 개인이 저지르는 반규범적 일탈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재의 부재는 규범의 강화를 야기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사회 구성원들은 규범에 대한 해체적 성향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3) 개인 권리 침해의 일탈 행위 증가

 

개인의 권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중시되기 시작하여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성장한 개인주의로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집단의 가치보다 우선하게 된 것이 산업 사회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의 발전은 개인의 권리 신장과 비례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개인의 권리가 정보 사회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개인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탈 행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사회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보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가 부정되고 있는 일탈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는 사생활 침해가 있을 것이다. 이른바 '몰카'로 명명되는 몰래 카메라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탈 행위이다. 그런데도 몰래 카메라에 의한 일탈 행위는 더욱 늘어나고 있어 몰래 카메라로 유통되고 있는 음란물이 1999년 현재 150여 종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몰카 비디오 홍수 시대, 음란물의 주종을 이루던 서양 포르노가 시들해지고 본인들 몰래 찍은 보통 사람들의 '연출되지 않은 사랑 행위'가 비디오로 대량 유통된다. 세운상가 주변의 판매상은 '요즘 손님들은 값이 비싸더라도 아마추어들의 라이브 테이프만 찾는다'며 '수요가 늘어나니 생산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취급하는 절반 이상이 이런 것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서울의 일부 지역이나 근교 러브 호텔 중 몇 군데에서도 역시 객실 한두 개에 몰카를 설치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용모가 괜찮은 젊은 커플들이 들어오면 종업원이 이들을 그 방으로 안내해 음란물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주장이다.......(몰카 비디오) 대부분은 찍히는 사실을 모른 채 벌이는 남녀 커플의 성행위가 담겨 있다. 얼굴 모습과 대화 내용이 또렷해 당사자들에겐 치명적이다.9) 

 

정보 사회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 권리의 침해에 따른 피해가 더욱 심각하게 증폭되고 있다. 산업 사회에서 몰래 카메라로 제작된 비디오는 그것이 거래로 유통되기 때문에 비교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통되어 왔다. 정보 사회에 접어들어 급격하게 발전하는 통신 환경은 몰래 카메라로 제작된 비디오가 불특정 다수에게, 거래에 따른 유통이 아닌 공개적 유통 환경을 통해 제공되고 있어 개인이 가지게 되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몰래 카메라와 함께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인 권리 침해의 일탈 행위로는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가 지적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는 개인이 가진 재산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탈 행위이다. 산업 사회에서 제품을 제조한 사람이 자신의 제품에 대해 가지는 재산상의 권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정보 사회에 들어와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사람의 재산상 권리는 불법 복제로 침해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가 절도에 비견되는 일탈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이 불법 복제를 행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타인의 재산상 권리를 침해한 행동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는 1999년 마이크로 소프트사와 한글과 컴퓨터 등의 국내외 5개 소프트웨어 업체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불법 복제해 사용한 한국 전력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냄으로써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졌다. 지난해 검찰청에서 지식 재산권의 침해 사범으로 적발한 경우는 총 1만 9백 50명이었으며, 이중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 사범의 경우는 1998년에 비해 4.2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가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 주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는 통신망의 발전과 함께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띤다. 1999년 모통신사의 동호회 자료실에서 홈페이지 저작 도구가 올려져 수백여 명이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통신을 통한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가 문제되었었다.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 이외에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탈 행위로는 개인 관련 기록 또는 정보들을 무단 유통하는 행위가 있다. 개인에 관한 정보를 허락받지 않은 채 유통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현재 개인에 관한 정보는 당사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마구 유통되고 있다. 개인 정보의 유통이 개인 권리 침해라는 사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의 부재로 개인 정보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도 전무하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대다수 인터넷 사이트들은 자체적으로 관리 중인 개인 정보의 보호 대책이 제대로 강구되지 않은 채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10) 개인 정보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결여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4. 정보 사회의 특성과 자아 정체감 형성의 문제 

 

1) 익명성의 증가

 

스튜어트 홀은 현대를 특징짓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한 가지로 '시간과 공간의 분리'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전 현대의 사회에서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장소에 묶여 있었던 데 반하여, 현대 사회는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장소로부터의 묶임에서 벗어나 서로 분리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가상 공간의 출현으로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터넷 주소는 분명 송-수신자들의 편지가 발송되고 수신되는 주소이건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지 메시지의 송신과 수신을 가능하게 한다. 공간은 공간이되 과거와 같은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난 상상 속의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가상 공간의 출현은 인간의 인식에 상당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인간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가상 공간의 특성으로는 익명성이 지적될 수 있다.

 

가상 공간의 출현은 익명성에 따른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상 공간에 제공되는 익명성은 인간에게 다양한 자기 정체성의 창조와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인간 관계는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가지의 형태로 창조할 수 있다. 특히 자아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발달 과업 가운데 하나로 채택하게 되는 청소년기에 가상 공간은 자신을 자아 정체성의 다양한 형태로 창조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 된다. 개인이 소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가상 공간은 그래서 자신의 성(性)마저도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11)

 

가상 공간이 제공하는 다양한 자기 경험의 기회는 자기 변신에 따르는 통제감과 우월감의 감정적 경험도 함께 제공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였던 자신이 고정적 실체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자신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경험은 세상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하고 그에 따라 우월감마저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가상 공간에서 반복됨에 따라 개인은 지극히 나르시스적인 성향을 발달시키게 된다. 무수한 변신이 가능한 가상 공간 속에서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에서 나르시스적인 퇴행12)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환상의 세계는 현실 세계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줌으로써 가상 공간에 대한 도착적 쾌락을 제공할 가능성마저도 있다.13)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통신 중독, 음란물 사이트 중독, 게임 중독 등의 현상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해방되는 하나의 방편으로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나타나는 도착적 형태로 볼 수 있다. 현실 세계의 고통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사이버 공간은 개인이 자아를 탐색하고 정체성을 발달시키는 데에 커다란 방해 요소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아 정체성 확립은 자신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요구하고, 자신에 대한 성찰적 사고는 고통이 따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갖게 되는 다양한 자아의 실험 기회는 현실적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라고 하는 가상 공간이 지니는 특성과 함께 통합된 자아의 정체성보다는 오히려 복합적14)이면서도 혼돈된 자아에 대한 인식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아 정체성 발달에서 위해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가상 공간은 익명성으로써 개인에게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정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실 세계에 비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강제력을 동원시킬 수 없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가상 공간은 범죄에 대한 유혹에 가장 쉽게 노출되는 공간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가상 공간의 익명성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최근 들어 사이버 범죄15)로 명명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은 바로 익명성이라는 가상 공간의 특성과 도덕적인 자기 규제의 결핍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들이라 할 수 있다.

 

2) 타인의 상실

 

가상 공간은 타자의 실질적 존재가 부정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타자가 실종된 공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에워싼 타인들에게 영향을 받게 되며, 그들과의 상호 작용으로 자아가 형성된다. 쿨리와 미드는 인간의 자아 형성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됨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자아 정체성의 형성에 미치는 타인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쿨리는 인간의 자아 형성 과정을 'looking-glass self', 곧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아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쿨리와 마찬가지로 미드 또한 개인은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s)에 좋은 모습으로 비쳐지기 위해 타인의 가치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미드는 인간의 행위는 I(주체로서의 자기)의 충동에서 시작하여 남들의 기대, 곧 Me(객체로서의 자기)의 관점에서 조정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행동에서 타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타인이 존재하기는 하되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 타인들만 존재하는 공간은 자아를 형성하는 'Me'의 관점이 존재하기 힘든 공간이다. 따라서 인간의 자아 형성에서 중요한 객체로서의 자아가 상실됨으로써 자아 정체성 형성에 장애를 가진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타인이 실종된 공간은 개인의 행동 제약으로 발생하는 심리적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현실 세계의 인간 관계를 규정하는 윤리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행동에 대한 제약과 강제력을 지닌다. 개인의 행동에 대한 제약과 강제력은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지니게 한다. 타인이 실종된 가상 공간에서는 이러한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공간이 된다.16) 또한 미드의 주장처럼 인간의 자율적 행동 규제가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I'와 'Me'의 부단한 대화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때 'Me'가 상실될 가능성이 높은 가상 공간은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 힘든 공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타인이 상실된 공간은 타자와의 상호 의존과 타자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 거부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반사회적이며, 반도덕적인 특징을 지닐 가능성이 증가한다.17)

 

따라서 객체로서의 자아 형성을 제약하는 가상 공간은 타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쉽게 망각하고, 현실 세계의 윤리에 따른 행동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자율적 자기 규제에 도전을 제기하는 공간이다. 이에 따라 타인이 실종된 가상 공간에서 형성하게 되는 정체성은 '부유하는 정체성'의 성격을 띠게 된다. 

 

'부유하는 정체성'은 정신 분열적 또는 나르시스적 영역을 방황하며 제한 없는 자유와 지배의 감성은 탈신체화된 유아론적 정체성에 속한다. 이러한 탈 신체화된 정체성이 가상 현실의 사회적 확산으로써 사회에 정착될 때 실제의 삶의 공간의 윤리는 치명적이 된다. 가상 공간의 '탈타자화된 자아'는 일종의 자폐증이며, 컴섹스의 '디지털 오르가슴'은 현실 세계의 욕구 불만의 투사이며, 더욱 큰 욕구 불만으로 귀결된다.18) 

 

타인이 상실된 가상 공간에서 형성되는 인간 관계는 수평적 구조를 지닌 공간이다. 수평적 구조라는 용어를 수직적 구조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가상 공간의 수평적 구조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수평적 구조의 가상 공간은 자칫 모든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 오도될 위험성도 지닌다. 크게는 법이 지닌 권위는 물론 작게는 개인이 지닌 인간으로서의 권위,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도 가상 공간의 수평적 구조 속에서는 부정될 수 있다. 그 결과 인간이 형성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윤리와 가치관마저도 권위적인 것으로 여기고 부정하는 공간으로 발전될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아 정체성의 확립을 주요 발달 과업으로 달성하여야 하는 청소년기에 현실 세계를 피하여 수평적 구조를 지닌 가상 공간 속에서 현존하는 가치관을 부정하고 익명성이라는 수단으로 형성되는 자아 정체성은 그것이 제아무리 가상 공간 속에서 제공되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기 실험으로 형성된 자아 정체성이라고 하여도 현실 세계에서의 재현과 적용에는 상당한 문제가 제기된다.

 

3) 매개된 경험의 증가

 

인간과 인간의 의사 소통을 매개하는 매체의 발전은 정보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발견할 수 있는 특성 가운데 하나이다. 매체는 경험을 매개하는 도구이다. 기든스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인간은 매체의 발전을 통하여 매개된 경험의 증대를 겪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현대적 제도의 발전과 확대는 매개된 경험의 증대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여 현대 사회의 발전에 있어 매개된 경험을19) 증대시킨 매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매체의 발전이 비단 정보 사회에서만 지적되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 사회에서도 매체의 발전과 중요성은 TV의 대중적 보급과 그에 따른 뉴미디어의 발전으로 이미 여러 학자들이 주장해 왔다. 정보 사회에 들어와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킹에 의해 맥루한의 주장은 특히 부각되고 있다. 맥루한20)은 매체의 인간 신체의 연장론을 주장하면서, 한 매체가 시간-공간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정도는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이나 메시지에 일차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의 형태 그 자체에 달려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라는 매체의 발전은 과거 TV가 초래하였던 사회적 변화와는 비견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컴퓨터가 가져오는 매체의 발전과 영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매체에 대한 예견, 특히 컴퓨터와 관련된 예견은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의 등장에 따른 전세계적인 변화로, 최근 들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이라는 통신망은 기존의 각종 매체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경험의 매개를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매체의 발전은 단순한 경험의 매개만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경험들을 창조해 냄은 물론, 경험을 선별적으로 매개함으로써21) 자아 형성에서 문제들을 야기한다.

 

새로운 경험의 창조와 경험의 선별적 전달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직접 경험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간접 경험에 따른 것이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간접적인 경험은 그것을 전달하는 기호 체계로 왜곡될 소지를 충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호하게 전달된 경험을 자기가 가진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투사함으로써 왜곡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곧 인간은 매개된 경험을 왜곡시킴으로써 자기 성찰의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찰적 능력을 방해받는 매체 환경 속에서 인간은 왜곡된 경험으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지난 1990년대 초 걸프 전쟁은 매체의 발달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생중계된 전쟁의 장면은 전쟁이 가져오는 참상보다는 오히려 전쟁을 일종의 게임으로 즐기게 하는 경험을 매개하였다.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과 미국이 쏘아 올린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접전을 벌이는 장면을 생중계로 목격하고 있던 인류에게 스커드 미사일이 방어하지 못한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어디에서 어떠한 참상을 초래하며 폭발하였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이는 아마도 걸프전을 생중계한 CNN의 숨은 의도에 전세계 인류가 유도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거나 부상하였음은 분명한데도 전쟁의 생중계는 우리에게 마치 오락 게임을 하는 듯한 흥분의 경험을 매개한 것이다.

 

수신자에 의해 왜곡된 경험은 또 다른 왜곡된 경험을 매개함으로써 더욱 증폭되고 그에 따라 원래의 현실을 왜곡시킨다. 이처럼 왜곡되고 증폭된 경험의 매개는 인간이 인간에 대한 또는 인간이 사회에 대해 가지는 기초적인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왜곡된 경험이 증폭된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자아는 인간으로서의 기초적인 신뢰가 무너진 가운데 그리고 자신의 존재론적 안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형성된 자아일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고전적 개념은 '함께하기' '같이 나눔' 등의 뜻을 함의한 커뮤니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하리는 인간의 자아를 네 가지(알려진 자아, 눈먼 자아, 감춰진 자아, 미지의 자아)22)로 구분한다. 최창섭은 커뮤니케이션이란 개인이 다른 개인과 교호하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감춰진 자아가 알려진 자아로 변화되고 눈먼 자아가 개방된 자아로 변화됨으로써 미지의 자아까지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23) 따라서 매체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매체를 통한 인간의 자아 찾기가 위에서 지적된 왜곡된 경험들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의 상호 교환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인간의 자아 찾기는 혼돈스럽게 된다.

 

자아 찾기의 혼돈은 인터넷이라는 통신망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인터넷은 선진국의 문화적 자극을 후진국의 대상자들에게 매개함으로써 선진국의 문화로 동질화되는 과정 속에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인간의 자아 정체성이 환경과 상호 작용으로 끊임없이 형성되어야만 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때 지역적인 공동체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자아 형성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24)

 

정보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한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통신망의 발전이 초래한 정보의 폭증 현상 또한 인간의 자아 형성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정보의 폭증은 인간의 정보 수용 능력의 확장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도 인간의 정보 수용 능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폭증하는 정보의 양과 인간의 정보 수용 능력의 한계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무력감을 자극한다. 또한 과다한 정보에 노출될 경우 인간은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함께 정보에 대한 사고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이다. 정보의 변별 능력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고하기를 포기한 인간은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를 과신하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은 정보에 대한 성찰적 사고는 물론 자신의 실존에 대한 관심마저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아 정체감이 자신의 실존에 대한 성찰적인 이해로써 형성된다고 할 때 실존적 관심의 약화는 인간의 자아 정체감 형성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4) 허위 욕구의 증가

 

정보 사회의 또 다른 특성으로 욕구의 증가가 지적될 수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전 지구인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자극이 되어 일상 생활 속에 잦아든다. 이러한 현상은 전 지구를 하나의 유사한 문화 공동체로 만들어 갈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양한 문화 자극으로 욕구의 증가를 창출하고 있다.

 

그 동안 욕구의 증가는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문화 산업의 증대라는 주제 속에서 숱하게 논의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마르크스는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필요한 것을 생산함으로써 개인의 욕구가 충족되었던 데 반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이 필요와 욕구를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곧 마르크스는 생산력의 발달이 욕구를 증가시키며, 그래서 욕구는 생산 메커니즘에 따라 규정되어 더욱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PC의 생산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발생한 PC와 인터넷에 대한 유도된 필요성의 증가는 PC와 인터넷을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하고 있는 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아도르노는 자본주의가 창출한 욕구는 '허위의 욕구'라고 하는 데서부터 욕구의 증가가 가져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문화 산업의 제고'라는 논문에서 문화 산업은 지배 집단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하여 기술을 이용하고, 이성을 도구화하고 문화적 표현을 상품화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허위의 욕구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25) 허위의 욕구 창출이 아도르노의 주장처럼 지배 집단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판단을 유보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욕구 증가는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에서 발견되고 있는 현상이다.

 

김용석은 정보 사회의 특성으로 '유도된 필요성'의 증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욕구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고, 그것이 일정한 상황에서 결여되어 있는 상태가 부각되어야 하는데 정보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생산 체제 내에서 무수한 필요성을 창출하여 인간에게 창출된 필요성을 부각시킨다고 주장한다.26) 그는 특히 정보 사회 또는 탈산업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정보 사회는 진보된 자본주의 생산 체제 속에서 각 개인이 본질적이라고 느낄 정도의 필요한 것들을 무수히 생산해 냄에 따라 '유도된 필요성'이 개인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기말과 세기초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지식 정보 사회에서 유도된 필요성이 개인에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것은 '창(window)'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의 유도된 필요성들은 주로 '사각의 틀'을 통해 들어왔다. 대중 소비를 위한 쇼윈도(show window)가 그러하며, 영화관의 화면과 TV, 비디오, 컴퓨터 모니터가 그러하다. PC의 모니터는 아마도 21세기 쇼윈도가 될 것이다. 그것은 사물뿐만 아니라, 정보와 아이디어, 이념과 예술적 감각의 전시장이자 매장이 될 것이다.27) 

 

정보 사회에 들어와 나타나고 있는 마케팅의 핵심은 드러커가 주장하는 '고객의 창조'로 요약될 수 있다. '고객의 창조'가 정보 사회 기업 운영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욕구의 창조'가 정보 사회에서의 기업에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보 사회는 산업 사회보다 더욱 증가된 '창조된 욕구'가 소비되는 대중 소비 사회임을 짐작하게 한다. 김기곤은 대중 소비 사회의 심각성을 소비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소비 인간'을 창출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소비 인간'은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하고자 하는 특성을 지님과 동시에 소비하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그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구체적 만족보다는 구입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주는 만족을 추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28)

 

소비가 주는 만족으로 '소비 인간'은 소비를 위한 소비를 더욱 추구하게 된다. 세네트는 소비 인간이 형성하는 자아를 자아 도취적 성향의 자아로 설명한다. 세네트는 자본주의가 소비자를 창조하고 소비자는 욕구를 분화시킴으로써 자아의 '자기 도취적' 경향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세네트는 자아의 자기 도취적 성향은 외부의 사건을 자기의 욕구와 관련지어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만을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친밀한 사회적 관계마저도 파괴하게 되는 성향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세네트의 자기 도취적 자아의 형성에서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의 자기 도취적 성향으로 개인적 존엄감이 상실된다고 하는 것29)이다.

 

소비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상품, 그리고 그가 또다시 창출하는 새로운 욕구의 증가와 소비 인간의 탄생이라는 정보 사회의 특성은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질식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유도된 필요성을 소비하는 인간의 주체적 삶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의 책무를 철저하게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시킴으로써 '자기 도취적' 자아 형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래쉬는 세네트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켜 자기 도취적 자아의 소유자는 혼동스럽고 충동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며 자기 도취적 인성은 타인의 욕구에 대해서는 어렴풋한 이해만을 가지고 자신의 내부는 '나는 거대하다', '나는 공허하다', '나는 가짜다'라는 느낌이 혼재되어 갈등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소비 인간이 형성하는 자기 도취의 자아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자신에 대한 타인의 감탄과 승인을 추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30) 소비를 위한 소비는 인간이 타인의 감탄과 승인을 얻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따라서 소비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상품, 그리고 그가 또다시 창출하는 새로운 욕구의 증가라는 정보 사회의 특성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의 책무를 철저하게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자아도취적 성향으로 형성하여 자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질식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5) 소외감의 증가

 

정보 사회는 산업 사회보다 인간의 소외 현상이 더욱 심각하게 대두될 수 있는 사회이다. 정보 사회는 흔히 탈산업 사회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 탈산업 사회의 용어는 이미 197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서 산업 경제 체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고 속에서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당시 탈산업화라는 용어는 사회 경제 체제가 대량의 제품 생산을 위한 거대한 공장과 기계, 그리고 설비 등의 이미지에서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한 소품종 다량 생산을 위한 생산 체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다니엘 벨은 서구 사회의 경제가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추동력이라 설명하였다. 보콕과 톰슨은 다니엘 벨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직업 구조의 변화에 좀더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31) 그들은 산업 사회의 육체 노동 직업은 화이트 칼라와 전문직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고 있으며, 과거 육체적인 힘과 숙달을 요구하던 노동은 이제 생각하는 노동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니엘 벨이 주장한 탈산업화의 서구 경제의 변화는 마치 탈산업 사회가 탈자본주의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다니엘 벨이 주장한 탈산업 사회는 탈자본주의 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 속에서 정보와 지식의 사용이 증대되는 또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 사회(자본주의가 재구조화된 사회)가 곧 정보 사회이다. 카스텔스는 현재 서구의 사회가 정보와 지식의 중요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곧 탈산업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산업 사회가 탈농업 사회가 아니었듯이, 정보에 기초한 사회가 단순히 탈산업 사회라고 주장할 수는 없음을 강조하면서 정보화에 따라 형성된 경제적 정치적 환경의 틀 속에서 자본주의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32)

 

정보 사회가 탈자본주의의 사회가 아니며 자본주의의 재구조화로 바라보는 관점은 앙드레 고르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고르는 정보 사회의 신기술은 고용 구조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에 따라 사회는 새로운 귀족층과 대량 실업자층으로 양분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동화된 정보 사회에서의 작업장 환경은 직업 창출이 일어나지 않는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이란 아무런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래서 노동 직무의 질과 지위가 무의미해지는 활동이 될 것이라고 본다.33) 고르의 주장은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현상이 산업 사회에서보다 정보 사회에서 더욱 가속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든스는 정보 사회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현상을 전문 지식인34) 집단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그들이 사회 속에서 담당하는 기능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전문가 체계가 정보 사회의 모든 일상 생활에 침투함으로써 산업 사회에 존재하였던 국지적 통제력마저도 침식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산업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던 국지적 지식은 정보 사회에서는 더욱더 큰 범위에서 재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국지적 통제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 인간은 숙련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박탈당한다고 주장한다.35) 이상의 여러 학자들의 주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인간의 소외 현상은 정보 사회가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여전히 존재하는 현상이며,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인간의 소외를 크게 네 가지 범주(1.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2. 노동 자체로부터의 소외, 3. 인간의 유적 본질로부터의 소외, 4.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에서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는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상품)로부터 소외됨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은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며, 그에 따라 노동자의 가치는 상품의 가치보다 저하됨으로써 노동자의 자기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설명은 앙드레 고르의 노동자의 탈숙련화 주장과 연결시킬 때 정보 사회의 더욱 심화된 인간 소외 현상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다니엘 벨이 주장한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체제로 이행한다36)는 정보 사회의 특성은 표면적으로는 정보 사회를 인간 소외가 심화되는 사회이기보다는 인간 중심의 사회로 인식시킨다. 그에 따라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경제 체제 이행이 물질 위주의 경제 체제에서 인간 중심의 경제 체제로의 이행인 듯한 오해를 야기함으로써 마르크스가 주장한 인간의 소외 현상이 점차 소멸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체제로의 이행이 반드시 인간 중심의 경제 체제로 이행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 중심의 경제 체제 이행은 대체적으로 정보 사회에서 정보 서비스 관련 부분의 증대에 따른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정작 정보 서비스 관련 부문에서 인간의 소외 현상은 산업 사회보다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흔히 정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를 시너지 효과라고 한다. 정보와 정보의 융합이 가져오는 정보의 증폭을 설명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이다. 시너지 효과로 설명되는, 정보와 정보의 융합으로 일어나는 정보의 증폭은 정보의 생산과 융합에서 인간의 통제력 상실이 더욱 심해질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소외 현상은 더욱 증폭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너지 효과로 개인이 생산해 낸 정보는 또 다른 개인이 생산해 낸 정보와 융합하여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정보로 증폭되어 재탄생된다. 곧 정보의 원생산자는 정보의 특성에 의해 자신이 생산한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함으로써 이미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 통제력의 상실은 비단 정보의 융합과 생산에서뿐만이 아니라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모델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은 미로같이 얽혀 있는 자회사들과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매우 혼란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은 인간이 자신을 확인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더욱 나아가 자기 실현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활동이다.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은 자기를 발견하고 자아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의 상실을 의미한다.

 

6) 육체의 폐기

 

인간 삶의 통제력을 기계에게 이양하였던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은 정보 사회에서 인간이 자신을 기계와 동일시하는 육체의 폐기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프링거는 17, 18세기에 인간은 이성으로 인해 축복받은 존재라는 믿음의 계몽 철학은 19세기 산업 혁명으로 정점을 이루면서 기계의 힘을 능가하는 인간 지성의 힘을 보여 주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들어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변화하기 시작하여 점차 기계가 인간의 육체보다 우월한 것으로 묘사되면서 인간 이성에 도전하게 되었으며, 20세기 말에 접어들어 인간과 기계 사이의 구분은 희미해지면서 인간이 기계와 동일시되고 스스로를 기계처럼 묘사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정보 사회에 들어와 탄생하고 있는 사이보그 또는 사이버네틱 유기체는 모두 인간과 기계가 수렴되어 탄생된 새로운 잡종이며 이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폐기되는 극단적인 면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폐기되는 현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스프링거는 최근 들어 사회의 각 부문에서 인간의 소외 현상이 '육체 폐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포스트모던적 소비 사회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품 시장이다. 그 안의 모든 것은 상품화되었으며 광고와 패키지로 된 이미지들, 항상 변화하는 의상과 음악, '생활 양식'의 유행이 우리를 에워싼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포스트모던적 인간을 폭격하며 이상화된 인간 육체의 주마등을 창조한다. 인간 육체의 끊임없는 묘사가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 결과적으로 실제의 인간 육체를 대치한다. 따라서 포스트 모던 문화 비평가인 아서 크로커와 마리루이즈 크로커가 주장하듯이 인간의 육체는 이미 폐기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만일 (자연적) 육체가 포스트모던적 상황에서 이미 사라졌고 우리가 육체로서 경험하는 것이 단지 육체 수사학이라는 환영적 모사물에 불과하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왜 오늘날 육체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커졌겠는가?"라고 묻는다.37) 

 

인간 육체의 폐기는 인간의 자아 정체성 형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육체가 폐기된 자아가 있을 수 없다. 육체는 자아 정체성의 성찰적 행동을 담당하는 중심부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개봉된 영화 '말코비치 되기'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현대 인간의 의식을 극명하게 들어내 보이고 있다. 자신이 아닌 말코비치라는 타인이 되어 보기는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쉽게 포기하고 쉽게 남의 인생을 살아보는 과정을 유희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현대 인간의 자아 정체성 포기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육체의 폐기와 자아 정체성의 포기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 나타나고 있는 인간의 실존적 안전에 대한 위협에서 발생된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에이즈, 암, 핵폭발, 인구 과잉, 환경 문제 등과 같은 유례 없는 위협에 처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실존적 안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육체 외부에서 인간 의식을 보존하려는 또는 인간 의식을 전자적으로 모사하려는 계획을 고안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이미 모호해진 상황에서 자아를 재정의하려는 부단한 몸부림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38)

 

인간의 육체는 소외로부터의 마지막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에게 자아를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제공한다. 육체의 폐기 현상은 인간이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마지막 토대마저도 포기함으로써 자아의 상실을 가져온다. 자아 정체성의 형성이 사람 됨의 인지적 구성 요소를 포함하는 행위라고 할 때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개념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정보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육체의 폐기는 사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개념 문제를 초래함으로써 자아 정체성 형성의 가장 근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7) 놀이성의 소멸과 문화의 상실

 

인간의 자아 형성에 놀이가 갖는 중요성은 그 동안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적해 왔다. 미드는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개인들의 행동을 단순히 모방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모방하는 놀이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로 인식하게 된다. 단순한 모방의 놀이는 좀더 복잡한 게임의 놀이를 통해 타인의 역할을 취해 보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복합적인 기대를 추상화하기 시작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게임은 단순한 모방 놀이와는 달리 주체로서의 자기와 객체로서의 자기를 인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로소 자기에 대한 인식을 형성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적인 게임에 참여하는 경험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역할을 동시에 학습하게 되고 그 결과 일반화된 타인(generalized others)의 관점을 구축하게 된다. 일반화된 타인의 관점을 구축하는 것은 일관된 자아의 형성과 병행하는 것으로 비로소 자기 나름대로의 행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9)

 

놀이가 인간의 자아 형성에 미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한 미드의 지적 이외에도 역사학자인 호이징하는 놀이의 중요성을 인류 문화의 근본적인 요소로 주장하면서 놀이가 가지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놀이를 문화보다 오랜 것이라는 사실을 "문화는 놀이의 형식 속에서 성립되었고 문화는 처음부터 놀이된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인간 생활 속의 문화 인자로 파악되어야 하며, 인류 사회의 원형적 행동에는 처음부터 놀이가 존재하고 있다."라고 요약하여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문화 현상으로서 놀이의 본질과 의미는 순수한 생물학적인 현상 또는 순수한 육체적인 행동을 넘어서는 하나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기능하는 것이라 역설한다.40)

 

문화란 그것의 근원적인 단계에서 놀이되어진 것이라는 결론 속에서 호이징하는 현대 문명 사회의 문화적 상실을 놀이적 요소의 소멸에 따른 것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놀이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속에는 참된 놀이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봉헌과 존엄과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문화는 다른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의 문화는 이제 놀이가 아니다. 비록 놀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거짓된 놀이다. 그것은 거짓으로 놀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놀이가 끝나고 놀이 아닌 것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알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문화란 고귀한 놀이 속에 뿌리를 갖는 것이며, 문화가 양식과 존엄을 갖기 위해서는 놀이 요소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41) 

 

그는 현대 사회의 스포츠를 일례로 스포츠가 순수한 놀이의 영역에서 멀어져 감에 따라 그 자체의 어떤 것이 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스포츠는 현대 문명에서 더 이상 놀이도 아니고 진지함도 아니며, 현대 사회 생활 속에서 스포츠는 본래 문화 과정에서 이탈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호이징하가 주장하는 놀이 요소의 소멸과 문화의 상실이라는 주장은 정보 사회의 놀이 형태를 분석하여 보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정보 사회의 놀이는 환상의 세계와 함께 편안함과 쾌적함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형태의 놀이 공원은 환상의 세계 속에서 편안하고 쾌적하게 놀이를 즐기게 한다. 이러한 놀이들은 개인의 다양한 정신 활동을 축소시킬 가능성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놀이 공원에서 인간들은 환상적 모형들을 감각적으로 즐김으로써 개인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경험의 기회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42)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 관련 게임과 전자 오락 게임은 휘황 찬란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 놀이 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나이에 관계없이 대중을 매료하고 있다. 가상 공간이 제공하는 놀이의 환상 세계가 극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면 할수록 현실 세계의 놀이와 비교된다. 특히 컴퓨터 게임과 같은 전자 오락은 현실 세계의 놀이에서 가능하지 않은 놀이의 규칙과 시나리오를 가지고 현실 세계의 놀이를 더욱 볼품없게 만든다. 환상의 놀이 세계에 매료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현실 세계의 놀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환상의 놀이 세계가 주는 즐거움에 안주하고자 한다. 최근 들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게임 중독 현상은 놀이에 중독되었다고 하는 사실보다는 전자 게임의 세계가 주는 환상의 즐거움에 중독되었다고 하는 사실로서 인간의 문화 소멸이라고 하는 심각성을 야기시킨다. 참된 문화란 어떤 형식의 놀이 요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정보 사회의 놀이가 제공하는 환상 속의 다양한 거짓 놀이의 요소는 인간의 문화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

 

인간의 문화 소멸은 자아 형성의 사회적 기반을 소멸함으로써 인간의 자아 정체성 형성에 혼돈을 초래한다. 호이징하는 문화는 자제와 극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자신의 목적과 의지를 지상 최고의 것으로 혼동하지 않는 능력이며, 자발적으로 승인된 일정한 한계 속에서 성립되는 것임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언제나 놀이되는 것이며, 진정한 문화란 언제나 페어플레이를 요구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페어플레이란 놀이의 개념 속에서 표현된 상식이다. 환상 속의 놀이는 그것이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기 때문에 이성과 인간성이 또는 종교가 규정한 규범을 은폐하거나 쉽게 위배할 소지를 지니고 있다. 환상의 놀이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놀이의 개념 속에 포함된 페어플레이라는 상식을 쉽게 파괴함으로써 문화를 파괴하고 그 결과 인간의 자아 형성에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지닌다. 

 

 

5. 정보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 

 

기든스는 개인적 무의미감, 곧 삶에서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느낌이 후기 현대 사회에서 근본적인 정신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는 실존적 고립으로 발생한 현상이며, 실존적 고립(existnetial isolation)이란 타인들에게서 개인의 분리라기보다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실존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도덕 자원들에게서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든스가 지적한 현대 사회의 실존적 고립은 정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설명하는 중요한 핵심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기든스의 실존적 고립에 대한 개념을 정보 사회에서 발생하는 자아 정체성의 위기 현상을 정보 사회의 특성과 연관하여 다루는 가운데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자아 정체성의 위기는 인간에 대한 위기이다. 인간에 대한 위기는 또 다시 인간이 근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존엄성에 대한 위기이기도 하다.

 

정보 사회는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다가올지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미지의 사회이다. 이 글이 정보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과거에 대한 향수만을 부르짖는 듯한 느낌으로 읽는 이들에게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정보 사회는 분명 좋은 측면도 지닌 사회일 것이다. 그런데도 밝은 측면이 아닌 어두운 측면만을 부각시킨 것은 어두운 것을 강조함으로써 밝은 측면이 더욱 밝게 보이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두운 측면을 강조하여 정보 사회에서 더욱 밝게 빛내고 싶은 부문은 바로 기술이다. 정보 사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이룩된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이 어두운 측면에 가려 빛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사고 중심에 기술의 발전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구축되지 않은 데서 발생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기술 발전을 위한 기술만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진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은 영어로는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이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Communication은 함께하기, 서로 나눔의 뜻을 지닌 용어이다. 인간간의 나눔을 위해 개발된 기술의 중심에 인간이 함께 하고 있지 않을 경우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은 인간을 삼켜 버린다. 우리는 정보 사회에서 발전한 정보 통신 기술의 중심 축에 인간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정보 사회의 밝은 면이 빛을 더욱 발한다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럴 때만이 인간의 존엄성은 과거 그 어느 사회보다도 정보 사회에서 귀하게 여겨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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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 사회론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대개 크게 2가지로 나누어지고 있다. 단절론과 연속론이 그것으로서, 정보 사회를 탈산업 사회로 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회로 보는 관점과 정보 사회를 자본주의로 연결된 사회로 파악하는 관점이 있다고 하겠다. 단절론의 입장을 취하는 이론가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보 통신 혁명을 농경 사회와 산업 사회를 구분하였던 산업 혁명에 비견하여 산업 사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를 초래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2) 이를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한 개인적 주체로부터 사회적 주체로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개념 변화로 보기도 한다.

 

3) 강홍렬, 윤준수, 황경식, [고도 정보 사회의 정보 윤리 확립을 위한 정책 방안], 정보통신정책연구원, 1997년.

 

4) [조선일보](1999.3.17.).

 

5) 클라우디아 스프링거 지음, [사이버 에로스:탈산업 시대의 육체와 욕망], 한나래, 1998년.

 

6)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해킹이 크래킹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해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7) Eugene H. Spafford, "Are Hacker Break-ins Ethical?" in Computer, Ethics, and Society, Oxford University Press, 1997년, 정보 사회와 정보 윤리의 제문제에서 재인용.

 

8) 이 외에도 스패포드는 해커들의 주장으로 학생 해커의 논변과 사회 보호자의 논변을 들고 있다. 학생 해커의 논변은 대부분의 해커들이 학생들이며, 학생들은 해킹을 함으로써 컴퓨터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울 뿐이라고 주장하는 논변이다. 사회 보호자의 논변은 정보 공유의 논변과 일정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해커는 데이터가 독재자에게 함부로 남용되는지를 살피는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논변을 의미한다.

 

9) [중앙일보](199.8.31.).

 

10) 이 사실은 가상 사회의 법률적 문제를 연구하는 대학생들의 학술 연구 모임인 CYBIK의 연구에서 조사된 결과이다. [전자신문](1999.8.23.).

 

11) 황상민, 한규석, [사이버 공간의 심리 : 인간적 정보화 사회를 향해서], 박영사, 1999년.

 

12)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상태를 정신병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때 현실로부터의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 환상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인간의 퇴보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로 볼 때 가상 공간은 전형적인 정신병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13)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가 실시한 통신 중독의 연구에서 실제 통신 중독의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들에게서는 통제력과 우월감에 있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으며, 통신 중독의 원인으로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것으로서는 현실로부터의 해방이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김옥순, [정보 사회와 청소년(통신 중독)],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1998년.

 

14) 현대성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기든스는 현대의 특징으로 복합적인 자아 정체성의 발달을 주장한다. 기든스는 복합적인 자아 정체성을 자아 정체성이 하나의 중심축으로 통합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의 중심축으로 형성된 자아로 설명하면서 이를 자아 정체성의 탈구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의미하는 복합적인 자아 정체성이라 함은 하나의 중심축과 여러 가지의 중심축이라는 중심축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단일한 혹은 다원화된 중심축의 구축조차도 이루지 못한 채 자아에 대한 혼미된 인식을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15) 사이버 범죄 문제는 정보 사회가 진화할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사이버 범죄에 대한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조차 합의되지 않고 있다.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증가한 것은 지난해 7월 이른바 'O양의 비디오'라고 명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보 통신부에서 지난해 7월 사이버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사이버 범죄의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사이버 범죄에 대한 의미가 비교적 영역별로 구분되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사이버 범죄 특별법에 제시된 사이버 범죄는 크게 6가지의 영역(사이버 테러, 음란. 폭력물 유통, 불법 거래 행위, 지적 재산권 유통, 전자 상거래 사기 행위, 전파 도용)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그 동안 제기되었던 수많은 정보 통신 관련의 사회적 문제들이 각 영역의 세부 사항으로 제시되고 있다.

 

16) 가상 공간 속의 탈억제 현상은 사이버 공간의 제한된 채널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가상 공간에서의 의사 소통은 현실 세계와는 달리 비언어적인 단서(예: 표정)에 의해 미묘한 의미가 전달되지 못한다는 제약에 의해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게 위해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탈억제의 현상이 촉진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황상민, 한규석, 앞의 책 참조.

 

17) 로빈스는 타자가 상실된 가상 공간은 타자의 실질적 독립적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진입하는 상호 의존과 책임의 관계가 거부되는 공간이며, 그러한 한 반사회적이며, 반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Kevin Robins, "Cyberspace and the World We Live in" in Cyberspace/Cyberbod/Cyberpunk of Technologicl Embodyment, London, 1995년:강홍렬, 윤준수, 황경식, [고도 정보 사회의 정보 윤리 확립을 위한 정책 방안], 정보통신정책연구원, 1997년에서 재인용.

 

18) 강홍렬, 윤준수, 황경식, 위의 책 참조.

 

19) 그는 인간의 거의 모든 경험은 매개된다고 본다. 사회화와 그리고 특히 언어의 습득을 통해, 언어와 기억은 개인적 회상을 통해 집합적 경험의 제도화를 통해 본질적으로 모든 경험을 매개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매체는 이러한 인간의 경험을 매개하는 중요한 도구로 보고 있다. 안소니 기든스, [현대성과 자아 정체성], 새물결, 1997년.

 

20) 맥루한은 '미디어가 메시지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니스의 뒤를 이어 매체의 출현이 사회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교하게 이론화하였다.

 

21) 경험의 선별적 매개라 함은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송신자의 의도된 짜임새 속에서 수신자는 개인이 처한 여건에 따라 송신자의 의도와는 다른 경험들을 선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 텔레비전, 영화, 그리고 비디오가 보여 주는 시각 이미지가 지닌 문제로 과현실의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시각 이미지의 과현실화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시청자들에게 나타났었다. 일례로 버팔로라는 동물을 TV로만 접하였던 개인들은 버팔로에 대한 경험을 개인이 선별적으로 접수함으로써 안전 사고에 노출되는 빈도가 더욱 증가하였다. 비슷한 예가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이라는 매체 환경의 발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송신자는 인터넷을 통해 예술적인 여성의 벗은 몸매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나 개인에 따라 예술적인 여체는 외설적인 여체로 변화되어 매개되는 것이다. 곧 수신자의 조건에 따라 매체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자에게 주관적으로 재편성되면서 또 다른 현실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22) 알려진 자아(open self)는 개방된 자아로 나도 인식하고 남도 인식하는 자아이다. 눈먼 자아(blind self)는 남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자아, 그리고 감춰진 자아(hidden self)는 나는 알고 있는데 남이 모르는 자아이다. 미지의 자아(undiscoverd self)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자아를 의미한다. 최창섭, [언어와 미디어 환경], 성바오로 출판사, 1986년 참조.

 

23) 위의 책.

 

24) 로빈스는 전지구화의 현상에 따른 문화적 동질화의 문제를 새로운 지역간의 정체성과 새로운 세계적 정체성의 형성을 주장하고 있다. 로빈스의 주장은 전지구화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문제는 개인의 자아 정체성과 연결할 때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게 된다. K. Robins, "Tradition and translation:National culture in its global contest", in J. Corner, and S. Harvey(eds), Enterprise and Heritage:Crosscurrents of National Culture, London, Routledge.

 

25) 이강수 편, [대중 문화와 문화 산업론], 나남출판, 1998년.

 

26) 시민 사회와 경제 조직의 발달로 욕구와 그 충족 수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그 결과 자연적 욕구와 문화적 욕구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인간의 삶이 자연적이든 문화적이든 수없이 많은 필요성에 둘러싸이고 각개인이 그 필요성의 일부가 결여됨을 감지함에 따라 개인의 욕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러한 해석을 문화적 이해에 관한 헤겔 이론의 재해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27) 김용석,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푸른숲, 2000년.

 

28) 김기곤, [욕망의 인간학], 세종출판사, 1997년.

 

29) Sennett, Fall of Public Man:안소니 기든스, [현대성과 자아 정체성]에서 재인용.

 

30) S. Lash, Sociology of Postmodernism, London, Routledge:크리스 쉴링, [몸의 사회학], 나남출판, 2000년에서 재인용.

 

31) 전효관 · 김수진 외, [모더니티의 미래], 현실문화연구, 2000년.

 

32) 위의 책.

 

33) 위의 책.

 

34) 다니엘 벨은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정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정보 사회에서 지식과 정보라는 자원을 통제하는 집단을 지식 엘리트 집단으로 표현하고 강조하고 있다. 기든스가 의미하는 전문 지식인은 다니엘 벨의 지식 엘리트 집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35) 안소니 기든스, [현대성과 자아 정체성] 참조.

 

36) 이 관점에 대하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37) 크라우디아 스프링거, 앞의 책 참조.

 

38) 안소니 기든스, 앞의 책 참조.

 

39) 전병재, [인간과 사회, 비판 사회 심리학적 이해], 경문사, 1997년.

 

40) 호이징하는 법과 질서, 공예와 예술, 시, 지혜와 과학 등이 모두 놀이라는 오랜 토양 속에 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프로베니우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프로베니우스는 먼 옛날 인류는 먼저 식물계와 동물계의 여러 현상을 인간의 의식 속에 받아들였고, 그 다음으로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 대한 감각, 달과 계절의 변화에 대한 관념, 태양 운행의 관념들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인류는 이 존재하는 것의 모든 질서를 신성한 놀이 속에서 연출 곧 놀이하며, 놀이를 통해서 놀이 속에서 표현된 사건을 새로운 것으로 실현화화고 또는 재창조하면서 우주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호이징하, [호모루덴스], 까치, 1998년 참조.

 

41) 위의 책.

 

42) 김용석, 앞의 책 참조.

 

[사목, 2000년 10월호, 김옥순(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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