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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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1: 갇힌 성지와 잊힌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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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84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 읽기 전에

 

 

평화신문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특집 기획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를 연재합니다. 이 연재물은 잊힌 팔레스타인 성지와 그곳 토착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삶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읽기 전에

 

라틴어로 '팔레스티나'라고 부르는 팔레스타인은 원래 2000년 전 예수님의 활동 무대 곧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를 가리켰다. 1947년 유엔은 이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의 57%를 이스라엘 영토로, 나머지 43%를 아랍 계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팔레스타인 영토로 분할하는 안을 채택했다.

 

유다인들은 이를 받아들여 1948년 '이스라엘'로 독립했으나 아랍 국가들은 거부해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결과 생긴 휴전선(그린 라인)을 경계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체 지역의 78%를 장악했고, 나머지 22%(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만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남았다. <지도 참조>

 

그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22%의 팔레스타인 지역마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아래 놓이게 됐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 사회는 팔레스타인 땅의 22%인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을 불법 점령지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 지역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2002년 8월부터 안보와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과 분리하는 장벽 쌓기를 본격화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4년 7월 이스라엘 분리 벽 건설이 국제법에 저촉된다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장벽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현재 장벽 길이는 700km에 이른다.

 

 

싣는 순서

 

① 갇힌 성지와 잊힌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②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심 - 야곱의 우물(나블러스)

 

③ 나환자 열 명을 고치심 - 브르킨(제닌), 자바브다 그리스도인 마을

 

④ 라자로를 살리심 - 베타니아(동예루살렘)

 

⑤ 광야 가까운 고장으로 물러가심 - 에프라임(타이베), 지프나 그리스도인 마을

 

⑥ 믿음의 조상 :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 아브라함의 무덤(헤브론), 평화운동단체

 

 

필자 이승정씨

 

이승정(체칠리아)씨는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런던대학교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중이다. 서울 YMCA 청소년사업부 부장과 '시청자 시민운동본부' 본부장을 지냈고, 현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에서 대북지원 실무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평화신문, 2008년 5월 25일]

 

 

[예수님 흔적 따라 장벽을 넘다] (1) 갇힌 성지와 잊힌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어머니 교회 이어주는 다리, 토착 그리스도인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 장벽에 평화를 염원하는 문구와 심장 모양을 그려 넣고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인연

 

팔레스타인에 첫발을 디딘 것은 2006년 10월이었다. 영국 런던대학 교육대학원(Institute of Education) 박사과정 현장 연구로 갈등 및 분쟁 지역의 평화 교육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예루살렘 북쪽으로 불과 16km 떨어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다. 이스라엘의 매끄러운 도로와는 다른 울퉁불퉁한 먼지 길을 달려 검문소를 여러 번 거치며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했다. 9m 높이 콘크리트 벽으로 세워진 분리 장벽의 섬뜩함과 산 정상에 생뚱맞게 모여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 모습, 곳곳에 나붙은 죽은 자의 인물 포스터….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의 고압적 태도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보며 당시는 내 안전만을 염려했다. 젊은이들은 TV 화면으로 보았던 아랍계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과 모두 닮아 보였고 가능한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팔레스타인에서의 첫 체류는 3개월로 늘어났고, 올해 1월까지 4차례 방문을 통해 만 10개월을 팔레스타인에서 살았다.

 

 

부당한 점령 정책

 

팔레스타인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매일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뤄지는 점령 정책의 부당한 이야기들을 듣고 또 목격해야 했다.

 

2002년부터 이스라엘이 쌓기 시작한 분리장벽으로 자신의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들,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을 갈라놓아서 허가증 없이는 친지 방문이 어려운 사람들, 통행증이 있어도 곳곳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리며 모멸감으로 치를 떨어야 했던 이야기, 이스라엘 정착촌을 짓기 위해 땅이 몰수되거나 집이 철거된 사람들, 거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족 중에 한두 명이 현재 감옥에 갇혀있거나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으로 사망한 가족사를 갖고 있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분노에 찬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었다. 이곳에서 '평화'와 '평화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 무력하고 단순하며 순진하게 보였다.

 

 

예수님의 평화

 

그해 대림절, 라말라에서 멀지 않은 작은 수도 공동체에서 성탄절 피정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방 가톨릭교회 신부님의 말씀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예수님은 보복의 논리를 거부하신다.'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오른뺨을 맞는 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이라면 왼뺨마저 상대에게 내미는 것은 보복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분노가 원한이 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 폭력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얌전하게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요구하는 바에 한 걸음 앞질러 몸을 내던짐으로써 폭력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분노에게 주도권을 넘기면 우리 인생에 평화는 사라진다. 예수님은 평화사상, 평화 이념을 설파하신 사상가가 아니라 평화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신 '실천가'이셨다.“

 

이는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 오던 평화, 평화교육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것은 하느님께 완전히 속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걸으셨던 이 땅에서 그 때나 지금이나 억압과 핍박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와야 했던 이유였다. 그때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성지를 찾아 나섰고,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신앙 전통과 믿음,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스도의 평화를 배우고자 했다.

 

 

동방교회 사람들

 

사실, 팔레스타인 도착 후 첫 주일 미사에서 아랍 복장을 한 많은 노인들을 교회에서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아랍인 혹은 아랍 복장을 한 사람은 모두 무슬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미사 시간 내내 이들의 존재가 궁금했다. 이들이 2000년 전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자손들이며 팔레스타인에서 수 세기를 살아온 토착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혼란과 당혹감은 동시에 내게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했다. 서방교회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들이 동방교회에 대해 어찌 이렇게 무지할 수 있었는지? 왜 동방교회 사람들은 역사에서 잊혀야 했는지?

 

아시아의 한 구성원이면서도 서구 중심으로 쓰인 역사(교회사를 포함해)만을 인류 문명사로 알고 있었다는 부끄러움과 자각은 팔레스타인에서 지내는 동안 내 역사 의식에 균형을 잡아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팔레스타인 가톨릭교회에서 만난 아랍 그리스도인 할아버지.

 

 

토착 그리스도인의 현재

 

현재 이스라엘 군사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토착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수는 5만 명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수 12만5000명을 합쳐 성지 전체의 토착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수는 17만5000명으로 전체 팔레스타인 인구의 2.3%이다.

 

이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의 65%는 그리스정교회와 시리아정교회, 아르메니아정교회 등 동방교회에 속해 있으며, 라틴교회(로마 가톨릭)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30%, 개신교회에 속한 신자 수는 약 5%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수는 지난 수 년 동안 급격히 줄고 있다. 군사점령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과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어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이민자 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그리스도인들과 2000년 전에 세워진 예루살렘 어머니 교회를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다. 이들의 생존은 어머니 교회의 독특한 문화와 현황을 보존하는 데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어느 팔레스타인 친구 말처럼 이곳에서 토착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진다면 성지는 박물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살고 있는 잊한 그리스도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평화신문, 2008년 5월 25일, 이승정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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