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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10: 십자고상 (상) 2-6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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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0) 십자고상 (상) 2~6세기 십자가의 예수님, 고통보다는 승리자의 당당함 드러내
십자가 지고 있는 어린양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 교회를 세우고 승리와 희망의 그림으로 그 내부를 장식했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표현할 때도 십자가 상의 죽음보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즐겨 그렸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십자가형을 받고 처형된 자를 신으로 섬길 수 있느냐”며 모독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매달려 수난당하시는 주님의 비참한 모습을 표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십자고상(十字苦像) 작품은 초기 교회 미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해시대 그리스도인의 표식으로 몰래 사용되던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때는 312년 로마 테베레 강 밀비오 다리 전투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군대가 벡실리움(vexillium, 군기)과 방패에 십자가를 그리고 전장에 나가 막센티우스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이후 십자가는 로마군의 표식이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를 ‘키로’(Chirho) 십자가라고 합니다. 헬라어 ‘Χριστοs’(크리스토스)의 앞 두 글자를 붙인 형태입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는 예루살렘 골고타에서 주님의 성 십자가를 발굴한 후 주님 무덤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 십자가를 비롯한 예수님 관련 성물과 골고타 흙을 가져와 로마에 예루살렘 성 십자가성당을 봉헌하자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이 빠르게 확산하였습니다.
이 시기 또 다른 십자고상 작품 한 점을 소개합니다. 바로 430년께 만들어진 로마 성 사비나성당(Basilica Sanctae Sabinae)의 나무문 조각입니다. 돋을새김 부조인 이 작품에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과 그 좌우로 두 죄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두 죄수는 모두 두 팔을 벌린 채 기도하는 ‘오란테’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 사비나 성당은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처음으로 거행한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재의 수요일이면 교황이 사비나 성당을 순례하고 이곳에서 재를 얹는 예식을 주례합니다.
두 예수상은 차이점도 있습니다. 상아 장식함의 예수님 얼굴은 긴 머리에 수염이 없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반대로 성 사비나 성당의 예수님은 긴 머리에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그리스풍의 혼합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벗은 몸에 익숙했으나 시리아 사람들은 성 육신의 맨몸을 드러내는 일은 주님께 대한 모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십자고상의 예수님을 그릴 때도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도상이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6세기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입니다.
박해시대 초대 교회 때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5세기 말 고대 교회 시대 때까지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은 주님의 수난보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자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십자고상의 예수님이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그림은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 중 일부, 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2월 25일, 리길재 기자] 0 1,96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