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강론자료

2011-0501.....부활 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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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5-21 ㅣ No.1038

부활 제 2 (가해)
사도행전 2,42-47             베드로11,3-9            요한 20,19-31
2011. 5. 1. 등촌3
주제 : 평화를 이루는 일은 부활을 실현하는 일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우리가 신앙에서 말하는 대로 부활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신앙인으로서 그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내 삶에 찾아오실 하느님의 빛과 힘이 엄청나다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해주더라도,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한다면, 내가 오늘밤 잠자리에 들었다가 내일 아침에 아무런 탈 없이 일어날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 부활대축일이었고,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2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미사에 오신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입을 꽉 다물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니까, 이 자리에 왔지요!!’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하고 묻는다면, 어떤 것이 정답일까요?
 
부활의 모습이 어떠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2가지 내용이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에 한 곳에 모여 있었던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이고, 그 자리에 있지 함께 있지 않았던 토마스사도는 나는 눈으로 놀라운 사실을 보기 전까지는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는데, 한 주간이 지난 안식일 다음날에 놀라운 체험을 하고나서야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도의 무리에 들었다는 2가지 내용이 함께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나서야 받아들이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라는 사건을 사람의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집니다. 세상에 살던 사람들은 숨이 멈추면, 누구나 꽁꽁 묶여서 나무상자에 들어갔다가 땅속에 묻히거나 또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이별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똑같이 드러나는 것이어야만 부활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지구상에 사는 사람의 숫자는 50억 명은 족히 넘는다고 하니,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부활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이 온통 사람으로 가득 차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숨을 쉬고 살 수는 있을까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보고, 내 삶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모습들을 따라 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이 없을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부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토마스 사도처럼, 창에 찔렸던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는 경험이 있어야만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부활은 어떤 모습입니까? 부활을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으로서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기에도 세상의 평화는 무척이나 중요했을 것이기에, 오늘 복음에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평화를 빌어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다고, 요한복음사가는 세 번씩이나 적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세상에 실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평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세상의 얘기도 있습니다만, 신앙에서는 다릅니다. 신앙의 입장은 이러합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어야 평화는 시작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친교를 이루어야 그 평화는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며, 내 것을 이웃과 나눌 때 그 평화는 조금씩 크기가 커져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청해야만 우리 삶에서 그 평화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사도행전의 말씀을 곁들여 생각할 수 있다면, 평화를 말로 빌어주는 일은 쉬울 수 있어도 그 평화를 우리가 삶에 실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한두 번쯤 숨을 크게 쉬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평화였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간절하게 빌어주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평화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 부활의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평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우심도 함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삶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잠시 기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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