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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자살 예방: 자살, 누구를 위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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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03 ㅣ No.935

[커버스토리] 자살 예방, 누구의 몫인가 - ‘자살, 누구를 위한 선택?’

이웃에 대한 관심 · 사랑 실천이 필수 활동


“죽고만 싶은데, 우리 본당 수녀님께선 늘 기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친구는 ‘네가 뭐가 부족해서’라며 참으라고 다그치네요. 십자가 위 예수 그리스도께선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선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어요. 결국 내가 나를 도와야겠죠.”

본당 수녀의 추천으로 심리상담소를 찾은 한 중년여성의 입에서 중얼중얼 이어진 말이다. 실제 자살 유혹에 빠진 이들은 ‘죽고 싶다’는 말은 해도 ‘도와 달라’는 말은 쉽사리 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알고 있는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살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는 가장 악한 행위다. 스스로 죽고 나면 하느님의 사랑을 누릴 수도, 그 뜻을 실천할 수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조차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등 3대 종교 인구의 비율이 55%를 훌쩍 넘어섰는데, 자살은 계속 늘어만 간다. 반면 자살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돕는 교회 활동과 관련 전문가들은 크게 부족하다.

자살 시도는 ‘도와 달라’는 마지막 절규다. 따라서 교회는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자살 실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민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 1위다. 2003년 이후 우리나라는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다. 2011년 노인 자살률과 청소년 자살률도 1위에 올라섰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도 바로 ‘자살’이다. 2010년에 이어 2011년에도 연속된 통계 수치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31.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2000년 13.6명에 비해 두 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 수를 연간 날짜로 나누면 매일 43명이 스스로 죽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1일부터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발효됐지만 자살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관련 조례도 갖추지 못했으며, 현재로선 저소득층과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 위기 대처에 급급한 실정이다.

게다가 매스미디어는 자살과 관련해 무분별한 보도를 이어감으로써 오히려 모방 자살 등을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일부 언론보도는 자살이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할 문제라는 인식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사실과 묘사 중심 보도에 머물러, 일반인들이 자살의 다양성을 이해하거나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높은 자살률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죽으면 고통이 끝난다’ 혹은 ‘내 판단에 따라 자살할 수 있다’는 등의 그릇된 생각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이다.

많은 이들이 자살 행위에 대해 ‘오죽했으면…’ 이라고 말하며 자살을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도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0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1.8%나 됐다. 또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자살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응답은 약 70%에 이르렀다.

지난 3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국자살예방협회에 의뢰한 ‘생명존중에 대한 국민 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3세 이상 국민들의 28.3%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중 40.6%는 자살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3.4%는 실제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청소년이 전체 응답자의 9.9%였다.

특히 자살 현상만 문제 삼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 올바로 알려주지 못하는 사회 현실도 심각한 장애물이다. 자살 원인에 대해서도 왜곡된 시각과 태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이 흔히 던지는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라”는 말은 자살을 예방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살은 단지 개개인의 용기나 의지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2011년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진행한 ‘자살예방 명동거리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이 자살예방에 대한 구호를 외치며 들머리에서 명동 평화의 거리까지 행진에 나서고 있다. 


자살에 대한 교회 가르침

물론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자살, 즉 자신을 죽이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접 살인에 해당한다. 이러한 행위는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권을 침해하며, 자기를 사랑하고 완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와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된다.

초대 교부들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자살은 물론 순교를 고의적으로 추구해 생명을 쉽게 끊어 보이는 행위까지 모두 반대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 또한 “죄악을 피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도 자살해선 안 되며, 참회를 통해 죄를 속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특히 “자살을 정당화하는 구실로써, 즉 인간 생명을 해치는 기준으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율성 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자살자를 위한 전례를 금지시킨 것은 물론 교회묘지에 안장하는 것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교회는 의학 발달에 따라 자살의 다양한 원인이 규명되면서 자살자의 인간적인 나약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를 보여, 자살자의 주관적인 죄책을 판단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새 교회법(1184조)에서는 공개적 추문의 연유가 되는 분명한 죄인들에게만 장례미사를 금지, 해당 교구 주교의 사목적 판단에 따라 자살자를 돌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살이 온전한 자유의지로 생명을 끊는 행위라기보다는, 피폐한 사회 환경과 이웃의 무관심, 사랑 부족 등의 사회적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자살자 혹은 자살시도자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적극 인식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줄 사목적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지난달 25일 열린 생명위 정기회의에서 학교폭력에 의한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해 논의한 후 “자살은 개인의 윤리적인 결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인 문제인 동시에 개인의 책임만을 물을 수는 없는 사회적 환경과 심리적 병 등의 배경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해결할 문제”라며 “원론적인 설교에서 보다 구체적인 사목적 지원을 확산해나갈 때”라고 전했다.

그러나 교회는 자살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목소리에는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은 다른 종교 전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7대 종단은 지난해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 사회의 자살 예방을 위해 절대 자살을 미화하거나 동정 어린 시선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며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용납될 수 없고, 고통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이나 문제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 우재명 신부는 “각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할 수 있는 본당과 가정, 관련 기관단체 등과 연계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폭넓게 실천하는 것은 자살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전했다.

 

 

교회 내 사목 현황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에 대해서는 수많은 경고와 사목적 대안 마련이 촉구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생명수호운동 안에서도 자살과 관련해 가톨릭적인 시각에서 만든 지침을 제시하거나, 이를 널리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 상담소 등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961년 명동 성모병원이 개원과 동시에 ‘자살예방센터’를 두고 자살에 대한 연구 및 교육, 예방진료 등을 진행했지만, 이러한 활동은 병원 확장과 함께 중단됐다. 최근 들어 자살 문제가 더욱 심각한 사회이슈로 제기되면서 주교단 모임과 생명 관련 기관단체가 주관한 세미나 등을 통해 자살과 관련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는 움직임도 이어져왔지만, 뚜렷한 후속 프로그램은 아직 영글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현재 전문 상담소를 운영할 뿐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자살 예방 활동을 지속하는 교회 기관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유일하다.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겸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우재명 신부는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 충동을 느낀 이들이 상담할 장소조차 찾기 어렵다”며 “자살방지를 위한 상담소 설치와 이를 위한 전문가 양성은 생명운동 차원에서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우 신부는 “각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할 수 있는 본당과 가정, 관련 기관단체 등과 연계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폭넓게 실천하는 것은 자살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전했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고,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약’도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일회성 ‘위기 개입’이 아닌, 보다 전문적이고 상설화된 새로운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6월 3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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