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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 카작댁 아셀 씨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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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19 ㅣ No.558

[달라도 우리, 다문화] ‘카작댁’ 아셀 씨의 행복한 크리스마스

 

 

연말에 단란한 다문화 가정을 소개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성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곽정남 유스티나 수녀(경향잡지 6월호 90쪽 참조)는 기꺼이 서너 가정을 알려주었다. 그 가운데 카자흐스탄 출신의 마하노바 아셀 안젤라(30세) 씨가 마음을 끌었다.

 

 

“아, 아셀 마음에 들어요”

 

11월의 첫 주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성당에서 아들 건호(4세)를 데리고 나온 그이를 만났다. 서둘러 교중미사부터 참여하였다.

 

가던 날이 장날, 본당 바자회가 열렸다. 무슬림이었지만 돼지고기도 좋아한다고 활짝 웃으며 순대를 사 먹자고 한다. 이웃에 산다는 필리핀 여성 마리앤 씨와 류삼석 사무엘 씨 부부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나서 그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남편 일하러 카자흐스탄에 왔어요. 그때 처음 만났어요. 남편은 귀금속 공장 기사님이고 한국 사람이라 처음에 저는 관심 없었어요.

 

회사에서 2박 3일 여행을 갔는데 이야기하다가 우리 남편 제 모습 보고 ‘아, 아셀 마음에 들어요.’ 해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저도 기사님 마음에 들어요.’ 했는데,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초대했어요. 저는 동생들을 데리고 갔어요. 그때 우리 남편 프러포즈했어요.

 

 

“가톨릭을 이상하게만 생각했어요”

 

2005년 결혼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 태릉 입구에서 시아주버니랑 방 두 칸을 하나씩 나누어 살았어요. 남편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지금은 쉬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귀금속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시부모님이랑 살다가 지하방에 살다가 2007년 종암동으로 이사 와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임신했어요. 일을 그만두었어요. 집에서 심심했는데 동사무소에서 전화 왔어요. 성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고.

 

그때 수녀님 처음 만났어요. ‘저는 카자흐스탄 파란 옷 입을 거예요. 어떤 옷 입고 나올 거예요?’ 하고 약속하고 만났어요. 저는 옛날에 가톨릭을 이상하게만 생각했어요. 수녀님 아마도 일반 사람 아니다, 안 웃고 그냥 기도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달라요. 수녀님이 제가 말을 잘 못하는데도 다 알아들어서 기뻤어요. 센터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좋은 일 하고 아낌없이 내어주시니까”

 

“한국에 있는 친정”이라고까지 표현한 센터에서 그이는 2008년에 다문화 가정 합동결혼식을 올리고,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에서 카자흐스탄 문화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지금은 대학에서 이중언어 교사 공부를 하고 있다.

 

고향인 마르하시의 의과대학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다더니, 토요일마다 아들을 시댁에 맡기고 열심히 간병인 통역일을 배우고 있단다.

 

“러시아에서 암 치료하러 온 사람들의 통역을 하는건대, 건호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열심히 할 거예요. 한국에 와서 좋은 것 많아요. 복 받았어요. 여러 나라 친구들 있어요. 한국 친구들도 있어요. 한국 친구들한테 많이 배워요. 한국 할머니들도 많이 알아요. 저보고 알뜰하겠다고 해요. 강사 나가면 아이들이 아셀 선생님 만나고 싶다고 해요. 편지도 많이 받아요. 신이 나요.”

 

 

“먹어. 여기 앉아”

 

“시집살이가 맵다는데 저는 시집을 잘 갔어요. 남편이 다리가 불편해서 저한테 절하는 걸 못 보여주고 시디를 보여주어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시집 와서 첫 번째 절 망쳤어요. 큰절 안 하고 부처님한테 절하는 것처럼 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불교 신자였어요.

 

처음에는 한국말을 잘 몰라 어머님한테도 ‘먹어. 여기 앉아.’ 하고 반말했어요. 성당은 제가 스스로 나갔어요. 수녀님 보고, 선생님 보고, 좋은 이야기 들으니까. 정말 좋은 일하고 아낌없이 내어주시니까.”

 

지난해 영세한 아셀 씨를 보고 올해는 시어머니도 성당에 나가 교리를 배워 이번 성탄 무렵에 세례를 받는다며 기뻐한다. 그러면서 남편도 성당에 다녔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뜻있고 즐거운 성탄절을 맞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을 만나보고 싶다고 청했더니, 마감을 며칠 앞두고, 남편의 허락을 얻었다는 연락이 왔다.

 

‘카작댁’ 안젤라 씨 가정의 행복을 빌며 11월 둘째 주 월요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 언덕바지의 작은 아파트. 남편을 기다리며 아셀 씨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주 전에 만나 함께 미사도 드리고 음식도 나누어서인지 “형제님!” 하고 정답게 맞아준다. 러시아 말을 곧잘 하는 건호도 웃으며 반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남편 이영민(44세) 씨가 돌아왔다.

 

카자흐스탄에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은데 유달리 아셀 씨에게 마음이 끌려, 러시아말을 배우고 싶다고 접근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아내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올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영민 씨 말대로 아셀 씨는 올해 여름 보수적 시어머니와 외국 며느리이야기를 다룬 다문화 국악 뮤지컬 ‘러브인아시아’에서 귀여운 ‘카작댁’ 역을 맡아 전국을 돌며 카자흐스탄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사진 구경을 하다가 가족의 저녁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빌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번 만났지만 그새 정이 들었는지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는 건호에게는 이번 성탄절에 산타클로스가 되어줄 것을, 영민 씨가 세례를 받는다면 대부는 힘들어도 도움이 되어줄 것을 속으로 다짐하며, 지난 번에 아셀 씨에게 배운 러시아 말로 작별인사를 했다.

 

“다스비다니야(다음에 봐요)!”

 

 

성탄, 기다림과 설렘으로

 

성탄이란 낱말이 기다림과 설렘으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이마를 흘러내리던 차가운 세례수의 느낌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즈음이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는 미당의 시구가 떠오른 것도 세모의 회환 때문일까. 그래도 ‘나는 왔다.’에 방점을 찍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날씨 탓인지 불빛이 더 따듯해 보이는 주점으로 향하는 마음이, 시의 첫 구절까지 바꿔놓는다. “애비는 기자였다.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경향잡지, 2010년 12월호, 배봉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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