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한국 천주교회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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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환 [isdol] 쪽지 캡슐

2002-02-27 ㅣ No.13

6. 신유대박해 (순조1년 서기1801년 - 1802 1년)

*** (초대 교회지도자들의 순교) ***

 

정조가 24년간의 재위끝에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대통을 잇게된 분이 순조였다.

그러나, 그는 열한살의 어린나이어서 궁중에서 가장 어른은 경주 이씨 가문의

김대비가 수렴정치를 하게 됨으로써 천주교회사의 피비린내나는 박해가

시작된다.

또한 조정에는 남인, 북인, 소론, 노론 등의 당파 싸움이 치열하였다.

 

김대비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의 정식호칭은 정순왕후로서 영조의 계비로서 열다섯살때 입궁한 분이었다.

순조에게\는 계증조모에 해당하는 분이다.

그는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대권을 장악하고 5년간의 수렴정치를 시행하였으며

그동안 어린 군주의 후견인으로 정치계에 영향을 미쳤다.

영조말 1762년에 임오사건이라 하여 영조가 유일한 뒤주속에 재왕으로 알려진

사도세자를 참살한 일이 생김으로써 당쟁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당시 사도세자의 장인이었던 홍봉한은 (정조의 외조부) 시파에 속한 분이었다.

김구주는 바로 홍봉한을 제거하려고 공작하다 오히려 화를 입어 김상로는 죽음을

당하고 자신은 흑산도로 년간의 귀양끝에 겨우 복귀의 은사를 입게 되었으나, 나주에 옮겨와서 궁벽한

가운데 일생을 마쳤다.

바로 그의 여동생이 정순왕후는 벽파와 손을잡고 그 반대파인 시파를 몰아

내려고 했다.

그때 마침 시파를 이루고 있는 남인 계통에 천주교 신자나 천주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김대비는 그점을 이용해서 1801년 10월, 이른바 사학

"이라는 것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인륜을 헐어 없이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짐승으로 돌아가게한다.......". 등의 반역죄인으로 다스려 오가 작통법

(다섯집씩 반을 만들어 그중에 천주교 신자가 있으면 관에 고발하도록 한 제도)

을 실시해서 뿌리째 없애려고 하였다. (사학엄금 서울이나 시골 할것없이)

이로 인하여 전국에 300여명이 순교하게 되는 대박해였다.

 

대표적잉 순교자는

이승훈, 정약종, 최필공, 홍교만, 홍낙안, 최창현,황사영 등이 바로 10월 8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목베여 죽이고 이가환, 권철신은 감옥에서 죽었다.

기타 많은 분들이 순교와 생명을 바쳤다.

주신부는 자기 때문에 많은 교우들이 희생된다고 생각하여 1801년 4월 24일

의금부에 놨 31일 노량진 새남터 백사장에서 군문효수 당하였다.

이 박해는 지방까지 퍼졌는데 특히 전라도 박해는 극심했다.

특히할 사항은 이순희 루갈다 동정부부 (치명자산) 순교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는 서로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1797년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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