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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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9) 시온산 최후의 만찬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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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3 ㅣ No.1665

[성지를 찾아서] 해외 성지 (9) 시온산 최후의 만찬 성전


사도들과 성찬을 나눈 방, 2천년 후에도 그렇게 겸손하고 소박했다

 

 

마침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눈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을 찾던 날은 유다인들의 안식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되어 토요일 해가 지기 전까지 계속되는 안식일(샤밧)에는 일상적인 일들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 수도,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누를 수도, 전기를 켤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차도 운행되지 않고, 멀리까지 이동해서도 안 된다. 자칫 종교적 유다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차를 몰고 갔다가는 돌 세례를 맞기 십상이다. 유다인이 아니어도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을 찾던 날도 ‘다윗왕의 무덤’이 있는 주 출입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뒷문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단순하고 소박한 고딕식 홀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홀이었다. 50, 60명이 서서 들어감직한 이 홀에는 고딕 양식의 창문과 십자군의 홍예문이 있을 뿐, 장식이라고는 없다. 그저 벽 쪽에 여덟 개의 기둥과 방 중앙에 세 개의 기둥이 고딕형 천장을 받치고 있다. 크고 아름답고 화려한 성전들과는 아주 다르다. 겸손함과 소박함 그 자체이다. 그랬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매달리기 하루 전날, 열두 사도와 함께 마지막 식사(last supper)를 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사랑의 계명을 남기던 그 현장은 결코 휘황찬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예수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다.”고 하시며 성체와 성혈, 곧 성찬을 나누셨다. 성찬의 전례는 교회 공동체가 세워진 원천이다. 성찬의 전례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을 떼어내 주는 그리스도 사랑의 표현이자 교회의 상징이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 ‘최후의 만찬’에서 보듯이 그렇게 멋있는 제대는 없다. 서기 70년 디도(36회에 쓴 ‘통곡의 벽’만 남기고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한 로마 장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곳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제대고 뭐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전승에 따라 파스카의 최후의 만찬 장소는 재건되었다. 바로 ‘최후의 만찬 경당’이다.

 

 

섬김을 강조한 세족례와 최후의 만찬

 

부활절(올해 4월 8일)을 앞둔 사흘간을 기독교에서는 ‘성삼일’(성 목요일, 성 금요일, 부활 성야 토요일)로 거룩하게 보낸다. 사순시기를 끝내고, 성삼일의 시작인 성 목요일에는 전세계의 가톨릭교회에서 똑같이 오전에 성유축성미사를 드리고 오후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 미사’를 거행한다. 최후의 만찬 기념미사에서는 사제가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례가 열린다.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스스로를 낮췄듯이 그렇게 섬기는 정신이 세족례에 담겨 있다. 기둥만 있을 뿐 외롭게 텅텅 비어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홀에 서서 섬김의 정신을 강조한 예수님을 떠올린다. 섬김의 정신, 바로 우리에게는 이 정신이 얼마나 부족한가?

 

‘최후의 만찬 성전’은 비잔틴 시대부터 성역화되어왔으나 폐허로 남아있다가 14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재건되었다. 세계 각처에서 성지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고딕식 2층 성전을 짓고, ‘체나꿀럼’(Coenaculum)이라고 이름지었다. 라틴어로 ‘체나꿀럼’은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개신교에서는 마가의 다락방)을 의미한다. 같은 지상층 다른 위치에 다윗왕의 가묘가 있고, 위층에는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난 ‘성령강림성전’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령강림성전’은 지금 출입 금지 구역이다.

 

 

시온산에 있는, 성체 성사 이뤄진 곳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유다교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독교와 같이 구약을 믿고, 하느님을 믿고, 모세오경을 믿되,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는 성령 강림도, 성령이 임하여서 방언을 말하던 오순절 역사도 인정하지 않는다. 유다 사제나 율법학자들이 기피인물로 꼽던 세리, 사마리아인, 병든 사람, 고통받는 이웃과 스스럼없이 식사를 같이하고 대화하는 사랑의 예수를 유다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왕이 아니라 낮고 불쌍한 모습으로 오는 사랑의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유다교이고, 그게 바로 기독교와 유다교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냥 야트막한 동네산 같은 시온산에는 성찬의 전례가 시작된 최후의 만찬 기념 성전,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난 성령 강림 경당, 예수 사후 비탄에 빠진 제자들을 다독거리며 살다가 하늘나라에 오른 성모님영면성당, 닭울기 전까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울며 회개한 닭울음성당(=베드로회개성당)도 있다. 그래서 시온산은 예루살렘과 성지 전체를 상징하는 이름이자 정신적인 고향이다.

 

[매일신문, 2007년 3월 22일, 글 사진·이스라엘 시온산에서 최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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