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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시복시성에 대한 몇 가지 질문 (1) 순교 정의 갈수록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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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03 ㅣ No.957

[순교자성월 특집] 시복시성에 대한 몇 가지 질문 (1)


순교 정의 갈수록 복잡 … 안건 따라 면밀한 조사 필요

 

 

2009년 9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거행된 ‘103위 순교자 시성 25주년’ 축제에서 정진석 추기경(가운데)과 김운회 주교(왼쪽), 염수정 주교(오른쪽)가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현대의 시복시성 절차가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앙선조를 기리는 우리의 순교신심과 시복시성은 맞닿아 있으므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복잡다단해져가는 현대사회의 현실 속에서, 어려운 절차와 교회법 등으로 이뤄진 시복시성은 우리에게 꽤나 멀리 있는 단어인 듯하다.

 

하지만 단순히 교회의 책무라고 미뤄두기에 시복시성의 꼭짓점은 신앙선조를 기리는 우리의 순교신심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어김없이 찾아온 9월 순교자성월, 그동안 알쏭달쏭하게만 느껴졌던 현대사회의 시복시성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세례 받은 사람만 성인이 되는가?

 

얼마 전 한 본당의 주일학교 A교사는 학생들에게 “세례 받은 사람만 성인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벽에 부딪혔다. 교사 또한 질문에 대한 답이 알쏭달쏭했고, 확실한 답을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해져가는 현대사회 안에서 순교의 범위를 판단하기란 매우 까다롭고 민감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오히려 오래 전 ‘정부’라는 확실한 박해자와 함께, 박해자가 신앙에 대한 극단적 미움을 가졌고, 신앙인이 어떻게 신앙을 증거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여부가 확실했던 시절에는 순교를 판단하기가 쉬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순교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순교자가 될 수 있는 이는 일반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수세(水洗) 받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고, 혈세(血洗, 자기의 피로써 자기 죄를 씻는 것)를 통해서 신앙을 고백한 이들도 순교자로 본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최근 주교회의 시복시성특별위원회가 펴낸 「시복시성절차 해설」에 따르면 “주님께서 ‘누구든지’라고 하시며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으셨으므로 세례 여부는 관계없다”며 “비록 어린이일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미움 때문에 박해자에 의해 살해되면 혈세로 인정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0년 시성한 중국 성인 120명 가운데 세례를 받지 못한 두 명의 예비신자가 있었으나, 혈세로써 하느님과 교회를 증거하기 위해 순교했다는 이유로 시성됐다.

 

 

박해자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가 떠올리는 박해자는 누구일까.

 

대부분 ‘박해자’라는 주체를 떠올리면 포졸들을 앞세워 신앙선조들을 체포했던 정부를 이야기한다. 신앙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있으며, 힘과 권위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도 박해자들은 정권과 세상의 권위를 이용하는 자들로 표현되며, 신앙인을 의회에 넘기고 채찍질하는 자들로 나타난다.

 

박해자는 반드시 비신앙인이거나 이단자일 필요는 없다. 하느님의 법에 반대되거나 의롭지 못한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박해자의 범위는 매우 넓어지게 된다.

 

「시복시성절차 해설」을 집필한 최인각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학생처장)는 “신유박해 이전 박해자는 정부보다는 가문이라고 볼 수 있다”며 “박해는 정부뿐만이 아니라 가문, 가장, 당파, 타종교인, 이데올로기, 개인, 집단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형벌이 순교자를 만들지 않고, 원인이 순교자를 만든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실제로 ‘제사문제’ 등 유교정신과 부딪히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많은 신앙선조들이 가문의 박해를 당했다.

 

정약종 순교자 역시 부친이 천주교를 금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정치적인 이유와 자신들의 정권 취득, 이익 추구 등을 위해 현대사회 안 박해자의 주체가 더욱 교묘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박해에 대한 생각은 광의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교황청은 모든 박해자를 일반화해 정의하지 않고, 순교사건을 개별적이며 세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순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순교’를 이야기하면 우리는 우선 ‘치명’을 떠올린다. 참수형을 받아 그 자리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피를 흘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순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박해자가 순교자들의 증가를 막으려고 심리학적이고 간접적인 죽음을 처음부터 작정하고 감행했을 경우나, 순교자들의 시신을 불태우거나 은밀한 장소에 묻는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참수형, 총살형, 독극물형, 전기충격, 사형 등으로 말미암은 직접적 죽음은 어떠한 의심도 일으키지 않지만, 감옥이나 탄광에서 심한 노동으로 맞이하게 되는 간접적 죽음의 형태는 살인의지를 확인하는데 논란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최근의 모든 안건에서는 육체적 죽음에 이른 순교자들만이 시복에 올려졌다.

 

「시복시성절차 해설」은 “현대에는 순교자의 시신에서 고문과 상처의 흔적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다”며 “생애와 덕행을 통해 그 의문이 되는 사실을 순교로 볼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전한다.

 

순교의 모든 사실은 각각의 장소와 시간이라는 환경에서 발생하고 성숙되며 열매를 맺는다. 죽는 순간에 신앙 고백 없이 과거의 신앙상의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교회법에서는 순교로 본다.

 

순교자의 시복시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안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 확인의 과정이 필요한 것도 모두 복잡다단해져가는 현대사회의 변화들을 올바로 규정짓기 위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시복시성절차 해설」 출간


“복잡한 시복시성 한 권으로 배워요”

 

 

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는 지난 6월 「시복시성절차 해설」을 편찬, 출간했다.

 

책은 시복시성의 의미와 시복시성의 기본요소, 교구의 시복시성 절차, 교황청의 시복시성 절차 등 다양한 시복시성의 절차를 실었으며, 문서 양식과 서식 등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와 증거자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을 추진하며 현재 교황청 시성성에서의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복잡하고 엄격한 시복시성 절차에 대한 해설서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박정일 주교는 간행사를 통해 “시복시성은 교회의 통상적 업무의 하나이고 앞으로도 한국교회 차원의 시복시성 추진이 있을 수 있음에 비춰 시복시성 절차법에 대한 해설서의 출간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며 “로마에서 ‘시복시성 청원인 과정’을 이수한 교회법 학자 최인각 신부님의 수고로 출간하게 됐다”고 전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이 책이 앞으로 남아있는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근현대 신앙의 증인의 시복시성과 한국교회 차원의 시복시성 추진에 있어서도 원활한 진행을 돕는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1년 9월 4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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