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2-0527...주일...하느님께서 주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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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5-26 ㅣ No.1236

성령 강림 대축일 - 나해

사도행전 2,1-11 코린토112,3-7.12-13 요한 20,19-23

2012. 5. 27. 등촌3.

주제 :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강림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당신의 뜻대로 관리하며 사는 일을 힘겨워할 우리 인간을 위해서 다시 찾아오신 날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에 관해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이 미사에 오신 여러분 가운데, 성령강림을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신 날이며,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힘을 받는 날이라고 생각할 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신 날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내는 결과가 다를 것이고, 그 하느님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서 도망칠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를 것입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히기 전에 먼저 생각을 하고, 내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미리 생각한 그 일에 부딪히게 될 때, 앞서 준비한 지혜를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과정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놀라운 순간은 어떤 모양으로 다가오겠습니까?

 

하느님의 힘이 우리를 다시 찾아오셨고, 이렇게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힘은 지난주에 우리가 기억한 승천을 기념하는 이별의 축제처럼, 우리를 다시 떠나가시지 않을 터이니, 우리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고 사는지에 따라, 우리 모습도 바뀌고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힘은 우리에게 언제 다가오시겠습니까? 신앙인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궁금하면서도 대답을 얻고 싶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가 해야만, 무슨 축복을 청할 것인지, 내 삶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서 고쳐야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똑같은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신앙인이 아니라거나, 남들이 알기에는 천주교회 신앙인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질문일 것이고, 의미 없는 대답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느님께서 언제 우리를 찾아오시겠느냐는 이 질문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세상과 남들이 평가해주는 좋은 대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자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 삶에 머물고 계십니다. 제가 하는 주장은 아닙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의 모습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심을 깨닫는 것은 언제인가?’로 말입니다. 이렇게 바꾸면, 대답하기가 조금 더 쉬워질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성령을 받을 때 사도들의 상황은 몹시 불안정했습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당황하기 딱 좋은 순간이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현실에서 그런 때를 맞이하면, 자기 삶에 도움이 될 힘을 찾기 시작하고, 그때가 되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지도 않는데, 하느님께서 내 앞에 나타나셔서, 내가 하느님이라고 선언하실까요? 내가 하느님의 힘을 인정할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내 삶에 나타나셔서 나는 하느님(!)’하고 선언하실까요? 그렇게 놀랍게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면, 그때 우리가 하느님을 받아들일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행동하실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그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심을 내가 깨달을 때에 나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사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가능하냐에 따라, 내가 하느님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면서도 나를 향해서 아는 척을 해달라고 애원하셔도 내가 모른척할 것이냐 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세상살이를 대하는 일에 겁이 없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힘입니다. 이때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삶에 겁이 없게 해주신다는 것은 만용(蠻勇, =foolhardi-ness; reckless-ness)을 갖게 해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용이라는 말은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세상에서 지키고 받아들이고 따르는 자세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데에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심을 내가 깨닫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를 앞세우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 거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세상의 일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라야 할 기준이 있음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사는 사람을 세상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하도 묘해서,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세상이 그냥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빌어주시는 평화를 받아 누리고, 내 삶에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겠지만, 우리가 노력하기를 포기한다면 내 곁에 계시는 하느님, 내가 사는 집의 큰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방문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의 평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는데 아주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우리가 나서게 되는 순간에,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네가 세상에서 너는 내 뜻을 잘 실천한 사람이구나(!)’ 하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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