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2-0826...주일...성체를 올바로 대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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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8-25 ㅣ No.1293

연중 21 주일 (나해)

여호수아 24,1-2.15-17.18에페소 5,21-32 요한 6,60-69

2012. 8. 26. 등촌3

주제 : 성체를 올바로 대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사람마다 귀중하게 여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이든지 가능하게 해준다고 생각하기 쉬운 돈이 그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그 중요성에 대한 자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먼저 생각한다는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가 다를 것이고, ‘신앙을 먼저 생각한다는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가 다를 것입니다. 정답은 없다고 말하기 쉽지만, 맺는 삶의 결실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난4주간 동안,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이 생명의 빵인 성체(聖體)는 성당에 와서, 또 전례를 거행하는 때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갔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오늘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세상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벅차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요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소리들을 듣습니다만, 그 소리들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살피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들 귀에는 수많은 소리가 들려와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 것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로 상대방의 얘기를 존중해서 듣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말이겠지만,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나 지도자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골라서 듣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삶의 여러 가지 사정들을 앞세워, 세상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신앙에서 떠난 냉담자를 위해서 기도는 합니다만, 오늘 복음을 들으면서, 그렇게 예수님에게서 멀어져 간 사람들을 얼마나 신경 써야 하겠는지 살펴야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예수님을 뒤따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기 갈 길로 간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다가 실망해서, 떠나는 이들들 붙잡지도 않으셨고, 기적을 베풀어 자기발로 떠나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지도 않으셨습니다.

(=냉담자포기!!!!)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이 선포된 지난 연중17주일부터 4주간 동안 복음은 그 말씀의 올바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오늘은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을 올바르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체에 대한 올바른 자세, 생명의 빵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갖춘 사람이거나, 올바로 대하려고 하는 사람이 현실 삶에서 드러내야 할 자세를 오늘 여호수아서 구약독서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인 신약독서를 읽고 그 대답을 찾아볼 순서입니다.

 

자신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어떤 것인지 여호수아가 선포한 자리에서, 히브리민족의 백성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자기들의 삶을 담아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히브리민족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했던, 스켐에서 있었던, 신앙대회의 결정사항이었습니다. 기원전 1400년경, 지금부터 3400년 전의 일입니다. 그렇게 선언한 것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의 선언이었지만, 그렇게 약속했던 사람들이 세상 삶을 마치고 죽어가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그 다짐과 실천은 빛이 바래갑니다. 이것이 사람이 드러내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히브리민족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는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도 살펴야 할 일입니다.

 

신앙에 관한 요소를 다짐하게 했던 여호수아의 선언에 비교해서, 바오로사도는 좀 더 현실적인 삶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아내와 남편에 관련된 비교이야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교회공동체와 그리스도예수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자세를 본받아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도 적용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올바로 실천하는 일은 둘 사이에 사랑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대충 노력하다가 그만 둘 일도 아니지만, 쉽사리 해치우겠다고 덤빌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앞세울 일도 아니지만, 아주 힘겨운 일이라고 물러설 일도, 또한 내가 하는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남을 위한 사랑이라고 우길 일도 아니어야 합니다.

 

성체를 받아먹는 사람, 신앙인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겠다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서 올바른 태도는 무엇이겠는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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