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2-0911...화...세상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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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2-09-11 ㅣ No.1304

연중 23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코린토 6,1-11         루카 6,12-19

 

2012. 9. 11. 등촌3

주제 : 세상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사제로 살다보면, 다른 사람은 별로 고민할 것 같지 않은 문제를 생각외고 깊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별로 쓸모없는 일에 심각한 것인지, 입장과 환경에 따라서 오락가락할 수는 있어도, 나름대로는 깊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바오로사도 역시도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서 그런 고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 독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앞길이 탄탄대로였던 것이 바오로의 미래였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나서기 전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그랬던 그가 율법을 앞세우려던 열성에 뻗쳐서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남들은 겪지 않은 이상한 체험을 한 다음에, 또 한 번의 반전을 자기 삶에 이룹니다.

 

바오로사도에게 세상은, 특히 신앙을 갖지 않았거나 신앙과는 관련 없이 높은 직책에 올라있던 사람들은 모두 신앙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대상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오로 사도의 생각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세상 삶에 있던 신앙인들이라고 하던 사람들, 세상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오로 사도가 보기에는 안타까움이고, 불만이고, 한탄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신앙의 길을 따르는 성도(聖徒)들이 세상을 심판할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신앙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자기들끼리 해결하지 않고, 세상의 심판자들에게 그 문제의 판단을 묻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신앙인들이라면, 그저 신앙인들의 싸움과 다툼에서 그냥 져 줄 수 없느냐는 소리도 합니다. 어쨌거나 오늘 이 자리에는, 바오로사도의 이런 자세를 맘에 들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가 판단하는 자세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양비론(兩非論,=맞서서 내세우는 양쪽의 말이 다 그르다는 주장이나 이론양시론)이라는 이론입니다. 사람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한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룻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시고 나서, 당신과 함께 복음선포의 길에 나설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일반적인 세상의 모습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제자가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당신 뜻에 맞는 제자를 선택하셨다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제자가 스승님을 버리고 떠난다고 할 때, 또 신앙인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그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대답이 쉬운 질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답을 듣기는 어려워도 대답을 해봐야 하는 질문입니다.

 

루카복음서는 제자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일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모습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까요? 궁금하기도 하고, 대답을 해야 할 질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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