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성미술 이야기: 에이크 형제의 헨트 제단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7-04 ㅣ No.28

[성미술 이야기] 에이크 형제의 헨트 제단화

 

 

헨트 제단화를 접은 모습

 

 

까막눈 신자들에게 교회신비가 한눈에

 

제단은 미사를 위해 쌓아올린 높은 단이나 제사 장소를 말한다. 또 성당에 들어서면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주님의 식탁(I 고린토 10, 21)을 굳이 성당의 동쪽 머리에 둔 것은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고 그날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제단화는 제단이 변형되어서 나왔다. 11세기께 제단 뒤로 장식면이 생기고, 차츰 뚜껑이 달린 언약궤처럼 모양이 바뀌다가 15세기에 들어서 그림병풍의 형식으로 발전한다. 한편, 제단화가 성행하면서 제단은 차츰 목재에서 석재로 바뀌는데, 1570년에 피우스 5세가 칙령을 내려서 반드시 석재만 사용하도록 했다.

 

제단화 가운데 그림을 두 짝이나 세 짝을 붙여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제작한 날개 그림을 두고 두 폭 또는 세 폭 제단화라고 부른다. 특히 북유럽 미술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제단화의 탄생 첫 시기에 출현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바로 헨트 제단화이다.

 

에이크 형제가 그린 헨트 제단화는 접었을 때 8면, 폈을 때 12면이나 되는 큰 그림이다. 평일에는 제단화를 접어둔다. 그러나 주일이나 축일에는 활짝 편 그림을 볼 수 있다. 『글 모르는 이에게는 그림이 책과 같다』고 한 그레고리우스 1세의 말마따나, 까막눈의 신자들은 주일에 성가가 울리는 성당에 들어섰을 때 봉인한 신비가 열리듯 날개를 펼치는 제단화를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헨트 제단화는 크게 보아 위 아래로 나뉜 구성이다. 상단 그림 복판에는 성부가 앉았고, 성모와 세례자 요한이 양옆을 지킨다. 최후의 심판 날, 뭇 불쌍한 영혼들의 구원을 청하는 전형적인 「간구」의 소재이다. 그런데 오른손을 들고 은총의 손짓을 보이는 성부는 특이하게도 교황의 법식을 갖추었다. 또 발아래 놓인 왕관은 무슨 뜻일까? 오랫동안 교황과 황제 사이의 수위권 논쟁은 중세 신학자의 논쟁거리였다. 또 세속 권력을 거두어 다스리는 교황의 정치적 책무와 한계에 관한 논의도 식을 줄 몰랐다. 여기서 헨트 제단화는 성부를 교황처럼 꾸미고 왕관을 발치에 놓아둠으로써 세속권에 대한 교회의 권리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제단화의 상단 바깥그림에는 천사들의 합창과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자리잡았다. 천사들은 입을 모아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를 외치며 만군의 야훼와 그의 영광을 노래한다. 성가대 가운데 이맛살을 찌푸린 천사들은 높은 음을, 입을 크게 벌리고 턱을 끌어당긴 천사들은 낮은 음을 맡았을 것이다.

 

제단화 맨 바깥 날개에 아담과 하와가 알몸으로 서 있다. 이들은 신약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예수의 구약적 예형이다. 하와에게서 비롯한 원죄의 굴레를 마리아가 원죄없이 잉태하심을 통해서 벗겼을 뿐 아니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인사말 「아베」가 하와의 이름 「에바」를 뒤집기 때문이다. 가령 8세기 수도자 파울루스 디아코니쿠스는 「아베, 마리아의 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베라고 인사하네 / 천사의 입술이 / 하와의 이름을 뒤집어 /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하네』

 

또 아담과 예수를 하나로 묶은 것은 바오로의 신학이었다.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로마 5, 15).

 

헨트 제단화 하단으로 내려오면 내용이 무척 복잡해진다. 아니, 눈으로 읽기만 복잡하지 알고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용이다.

 

어린양을 경배하는 제단 주위로 천사와 구약의 예언자, 종려 가지를 든 순교자와 동정녀들의 성스러운 행렬이 에워싸고, 그 뒤로 여러 민족, 여러 언어의 순례자들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 붉은 천을 씌운 제단 이마에는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그리고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고, 어린양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성작을 채운다.

 

제단 아래 팔각형 샘은 생명의 샘이다. 제단과 샘을 한 축에 놓은 것은 죽음을 생명으로 이기는 구원사의 논리이다. 또, 제단 위쪽으로 날아 내려오는 성령의 비둘기가 황금빛살을 뿌리며 순결한 피의 의미를 알린다. 여기서 제단 위의 어린양은 어린 목자이자 구원의 주님을 뜻한다.

 

『옥좌 한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묵시 7,17).

 

헨트 제단화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다른 제단화들이 단골 주제로 삼는 지옥의 풍경도 천국의 풍경도 안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어떤 축일을 기념하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이 문제는 우연찮게 해결되었다. 13세기 제노바의 주교 야코부스가 펴낸 황금전설에서 모든 성인 대축일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목이 실려 있는데, 베드로 대성당의 교회지기가 꿈에서 본 광경이 헨트 제단화의 그림하고 내용이 똑같았던 것이다.

 

『지고하신 하느님이 옥좌에 앉으셨고, 양편으로 천사들의 성가대가 에워쌌는데, 눈부신 왕관을 쓴 동정녀들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와 낙타 털옷을 입은 요한이 다가왔고, 수많은 순결한 처녀들의 무리와 주교의 복식을 한 덕망 높은 원로들의 무리가 뒤따랐다. 같은 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는 성가대의 무리와 기사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만방의 무리들이 그 뒤에 따라왔다』

 

뒤이어 교회지기의 꿈에 나타난 성 베드로는 연옥의 풍경을 보이며 당부하기를 교황 성하께 알려서 그 날을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로 정하고 기리도록 일렀다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3년 5월 11일, 노성두]



1,84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