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730.....연중 제17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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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7-29 ㅣ No.1825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 홀수 해

탈출기 40,16-21.34-38             마태오 13,47-53

2017. 7. 30.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생각할 법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고,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감추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함부로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세상에 사는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때에 만난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일에 대한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실 때(?) 우리가 만나겠다고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하느님께 시간을 내어드린다는 자신감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광야생활을 시작한 히브리백성에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상징이었던 성막에 관한 내용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우리가 성막의 모습을 볼 수는 없습니다. 요즘 하는 말로 해석하면, 성막은 아무 때나 이동할 수 있었던 성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일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성막에 함께 하시는 모습으로 히브리인들과 가까운 거리에 머무르셨지만, 그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까운데서 공경의 마음을 보였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시대와 상황은 달라졌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이 생각하고, 성전에 얼마나 자주 찾아오느냐고 묻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 삶이 바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신앙생활입니다. 하느님은 너그러우신 분이시고 세상의 구원자이시니 인간을 향하여 화를 내서도 안 되고, 그저 자비만 베풀어주셔야 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한쪽 편으로 굳어지기 십상(==십상팔구/십중팔구)입니다. 그 한쪽편이란, 우리가 하는 것은 그저 말로라도 하느님을 공경할 테니, 그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축복을 내려주셔야 한다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사실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은 이론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람은 하느님에게 이렇게 주장하고 요구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사람의 주도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셔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신앙에서는 말합니다만, 세상에서 한 자리한다는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뜻대로 하느님도 좌우하려고 합니다. 그 입장에서 오늘의 복음을 대하면, 아쉽고 불만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나라에 대해서 이해하거나, 하느님에 대한 것은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참으로 뛰어난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떤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고, 자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삶에 찾아오시어 당신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실 때, 우리가 거침없이 시간을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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