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2015-0812.....연중 제19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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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8-11 ㅣ No.1835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 홀수 해

신명기 34,1-12              마태 18,15-20

2015. 8. 12.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자비에 관하여

세상의 삶에 열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신앙에 대한 것보다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우리가 정말로 귀중한 자세를 갖고 대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그에게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다가올 수 있거나 읽을 수 있는 첫 느낌은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일 것입니다. 그의 삶에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자세를 지닌 사람은 여러 가지 입장에서 사람의 삶을 제압(!)하는 일들을 순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얘기가 어제와 오늘 독서를 통해서 들은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아주 못된 사람이 하는 질문입니다만,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계신다면,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그냥 두실 분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을 존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마음이 있을까요? 함부로 말할 것은 아니지만, 긍정의 대답을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행동했던 모세였지만, 그는 느보산의 어느 골짜기에 묻혔다고 합니다. 가나안땅 정복을 눈앞에 둔 히브리백성들이 그 무덤장소가 어디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면, 뒷날의 우리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삶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할 법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아주 많은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한 해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삶을 해석하는 대로 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공동체와 그 일원으로 사는 삶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세상을 무시하라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신앙인은 세상의 삶에 빛을 주어야합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뜻을 더 우선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더 우선으로 사는 사람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일 것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고 있겠습니까? 잠시 묵상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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