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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42-45: 춘천교구의 통일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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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12 ㅣ No.1104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42) 춘천교구의 통일사목 I : ‘한솥밥 한식구’ 운동

 

 

1994년 12월 14일, 죽림동 주교좌성당에서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가 춘천교구의 제6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청의 임무를 띠고 공식적으로 북한을 방문한바 있었던 장익 주교는, 1996년 11월 추계 사제연수에서 ‘민족 화해를 위한 통일대비’를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북한 문제 전문가를 초빙하여 통일에 대한 전반적인 주제를 다루며, 분단된 국가와 강원도, 분단 교구의 특성에 따른 통일준비와 교회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심도 있게 준비한 이 강좌는 교구 사제들은 물론 수도자와 평신도들에게도 개방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개된 ‘한솥밥 한식구’ 운동은 1997년 4월 12일 장익 주교의 호소문 ‘빵도 하나 우리도 한 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날은 춘계 사제연수가 끝나는 날로 교구 사제들은 ‘한솥밥 한식구’ 운동을 위해 종잣돈 276만원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고 지속적인 실천을 결의하였다. 또한 장익 주교는 같은 해 열린 제74회 풍수원 성체현양대회에서 ‘빵도 하나 우리도 한 몸’이라는 강론을 통해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1997년 6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는 교구 내 분단의 현장 5곳 – 화천 평화의 댐(춘천지구), 철원 노동당사(서부지구), 양구 가칠봉 전망대(중부지구), 고성 통일전망대(영북지구), 안인진리 6·25 첫 남침지(영동지구) - 에서 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하며 한솥밥 한식구 손수건과 지갑 지니기 운동도 전개되었다. 대희년인 2000년 6월 24일 저녁에는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회상 · 화합 · 일치의 잔치’를 열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선포하며 마무리되었다.

 

“오늘의 결연(結緣)은 우리의 북녘 동포 돕기를 더 구체적으로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막연히 또는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북녘 동포를 돕고자 하는 우리의 사랑을, 통일 후 북녘땅을 복구하는 우리의 헌신을, 북녘땅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다짐하는 약속입니다. 양쪽의 대표가 나와, 손도 맞잡고 도장도 찍으면 더욱 좋겠지만 통일과 평화는 무엇보다 우리의 진실한 마음으로부터이고 방 한 칸 내어놓는 사랑의 결심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관심은 내 가족 내 자식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관심을 보였어도 한순간이었을 뿐 북강원도에 몇 개 군이 있는지, 분단 전에 몇 개의 성당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연(結緣)을 맺는 이 자리, 이 시간을 통해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다짐합니다.” [2019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 평신도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43) 춘천교구의 통일사목 II : ‘빵도 하나 우리도 한 몸’ - 1997. 4. 12 장익 주교 호소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금 북녘 동포들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더러는 탈출을 시도하고 더러는 굶주림으로 목숨마저 잃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껏 크고 자라서 우리 민족의 앞날을 펴나가야 할 어린이들까지도 애처롭게 굶어 죽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내 삶에만, 우리 식구에만 마음을 쓰느라 북녘 동포의 이 굶주림과 고통을 남의 일처럼 모른 체하고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닌지요? 같은 동포가 굶주려 쓰러져 간 뒤의 통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같은 겨레입니다. 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한 식구입니다. 우리는 ‘한솥밭 한식구’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3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북녘 동포들의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이며 하느님의 자녀된 도리입니다. 더욱이 그 절반이 북녘에 있는 춘천교구 신자 공동체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랑의 부름입니다. 허기진 오천 명 군중을 앞에 두고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먹일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제자들을 시험하여 물으신 다음 자기 도시락의 전부였던, 그러나 군중을 먹이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이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웬 아이가” 선뜻 내놓은 것으로 그 오천 명을 모두 배불리 먹이시는 나눔과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요한 6,5-12)

 

우리 교구는 휴전선 철조망으로 둘로 나뉘어 민족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몸에 안고 있는 교구입니다. 우리 생명의 양식으로 당신 한 몸을 다 내어 주신 예수님을 따라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가진 것을 나눈” (사도 4,32) 초기 교회 신자들처럼 오늘의 우리 또한 힘을 합쳐 “하나 되게 하소서”(요한 17,11) 하신 주님의 염원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니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빵도 하나 우리도 한 몸이니 우리 겨레는 ‘한솥밭 한식구’입니다. [2019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 ·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44) 춘천교구의 통일사목 III : 남북 한삶 위원회

 

 

춘천교구는 ‘한솥밥 한식구’ 운동과 함께 지속적으로 통일사목을 주관하도록 ‘남북 한삶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98년 6월 22일 춘천교구 사무처는 공문을 통해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해를 맞아, 특히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춘천교구로서, 우리 모두의 염원인 민족의 복음적 화합과 통일의 날에 대비하여 ‘남북 한 식구 새 삶 모임’을 발족하였습니다.”라고 알렸다. 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11명의 신부들이 모여 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위원장은 민족과 교구의 최대 현안인 통일사목에 대한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교구장 주교가 직접 맡았다. 1999년에는 각 성당 사목협의회 내에도 ‘한 삶 위원회’ 를 두고 꾸준한 활동과 기도를 요청하였다.

 

지금도 ‘한솥밥 한식구’ 글귀가 적힌 손수건과 지갑을 기억하는 교우들이 많을 것이다. 교우들은 이 지갑을 몸에 지니고, 음식물 남기지 않기 · 금요일에 한 끼 단식 · 외식비와 유흥비의 십일조 봉헌 등을 통해 일상생활 안에서 사랑의 북녘 동포 돕기를 실천해 나갔다. 우리 교구는 이를 통해 모은 기금과, 매월 25일 남북 한삶 미사의 봉헌금 그리고 해마다 성탄 밤미사의 봉헌금을 모아 2019년 8월말 현재까지 약 57억여 원의 기금을 마련하였고, 그 절반가량인 27억여 원을 북녘 동포 돕기에 지출하였다.

 

한솥밥 한식구 운동의 대북지원 사업은 1997년 8월, 1차로 대한적십자사에 ‘북녘 동포 돕기 지정 기탁 기부의사’를 통지, 북강원도에 강원도산 감자 · 옥수수 · 메밀과 우리밀 씨앗 등을 보낼 의사를 표명했다. 의견 조정을 거쳐 감자 한 가지를 지원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옥수수는 9월에 물량확보가 어려웠고, 씨앗은 남북 간 정식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내 항구에서 보내는 것은 추가비용 문제가 발생하여 부산항에서 다른 물품들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결정하고 강원농협본부와 감자 300톤 납품 및 수송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9월 강원도 평창 · 인제의 고랭지 감자 300톤이 ‘강원도 고랭지 감자 300톤, 북 강원을 가다’라는 현수막을 앞세워 부산으로 향했다.

 

당시 농협의 한 관계자는 “인제 · 평창지역 농민들은 고장의 이름이 들어간 감자가 북녘으로 가는 만큼 좋은 것으로 보내야한다며 알이 크고 굵은 감자만 골랐다”고 말했다. 감자포대에는 평창과 인제 산이라고 밝히고, 북강원도 돕기 지정기탁 사실을 ‘강원도민 서로 돕기’라는 말로 대신해 기증자인 ‘천주교 춘천교구 한솥밥 한식구’ 앞에 붙여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이렇게 춘천교구의 감자 300톤은 1997년 9월 24일 ‘장영로즈’호에 선적돼 부산항을 출발, 북한 흥남항으로 향했다. 위 내용을 담은 도내 일간지 기사를 보며 어떤 독자는 “감자 300톤이면 큰 산이 하나네요”라며 놀라워했다고 전언하였다. [2019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 성서 주간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기록으로 보는 춘천교구 80년 (45) 춘천교구의 통일사목 IV : 과제와 전망

 

 

민족 분단의 현실은 우리에게 통일사목이라는 낯선 명제를 안겨 주었다. 전국적인 규모로 보자면 작고 가난한 춘천교구이지만, 통일사목이라는 현안에 대한 시각과 사목적인 실천은 그 어느 교구보다 적극적이고 풍요롭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7년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통일사목, 민족 화해 등의 문제에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현 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는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의 위원장과 재단법인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북측 교회와의 소통, 대북지원 사업 등을 통해 통일사목에 헌신하고 있다. 그 헌신에 힘입어 2015년에는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대표단이 12월 1일(화)부터 4일(금)까지 조선카톨릭교협회(위원장 강지영)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였고, 교구 설정 80주년을 지내고 있는 올해에는 늦여름 홍수피해를 입은 북강원도 지역에 소리 없이 식량을 지원하기도 했다.

 

춘천교구의 사제 · 수도자 · 평신도들이 금강산으로 가는 육로를 통해 60만 장의 연탄을 실어 나른 지 11년이 되었다. 장익 주교의 호소문이 있은 지도 올해로 22년이 지나가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삶의 곤란에 빠진 북녘 동포들은 점차 우리 마음에서 잊혀가고, 북강원도에 있었던 우리의 신앙공동체, 이천과 평강 본당은 그 이름마저 생소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통일사목의 발걸음을 돌아보면서 그 현주소를 확인하고, 통일사목의 미래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가오는 202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교회는 이 한 해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기도 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미 우리 교구는 매달 25일 남북 한삶 미사를 봉헌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가 한 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그 어떤 정치적 · 경제적 · 이념적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22년 전의 호소문을 통해 언급한 “같은 동포가 굶주려 쓰러져 간 뒤의 통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취지에 맞게 ‘한솥밥 한식구’ 운동은 다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북녘 동포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며 하느님의 자녀 된 도리로 신자 공동체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사랑의 부름입니다.”라는 말씀대로 사랑의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고, 나부터 솔선수범하는 삶을 살아나가는데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래 통일사목을 위해 전문성을 가진 사제를 양성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통일을 대비한 여러 가지 신자교육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9년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춘천주보 2면, 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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