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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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29: 행정가가 된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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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01 ㅣ No.507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29) 행정가가 된 성직자


업무 효율 대신 ‘복음적 효율성’ 성찰 노력 필요



바오로씨가 냉담에 빠진 이유

수도권 지역 교구 평신도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바오로씨, 그는 지금 3년째 냉담 중이다. 지역 토박이로 본당에서도 구역장과 총무 등을 거쳐 평신도사도직 활동의 꽃이라 할 사목협의회 총회장까지 지낸 바오로씨가 교회와 거리를 두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와 가깝게 지내온 이들은 바오로씨의 오랜 침묵에 담긴 뜻을 알고 있다.

“저마다 적잖은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의논해 내놓은 결론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루아침에 협의 내용을 뒤집고 다른 길만 찾아보라니. 아무 것도 모르는 늙은이 취급까지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데, 이상한 사람 대하듯 하는 태도는 더 이상 참기가….”

중간중간 긴 한숨을 섞어 속내를 털어놓는 바오로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오로씨의 탄식은 그가 몸담아왔던 단체의 담당신부로 향하고 있었다.
 

성직자중심주의 · 관료주의, 수레의 두 바퀴

종교의 위기를 외치는 소리가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복음화율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교회.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바오로씨와 같은 냉담교우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염려 섞인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다지 피부로 와닿지 않는 모양새다.

교회가 해법을 찾기 위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고심해온 냉담교우 문제는 정말 사람의 힘으로는 풀기 힘든 방정식인가. 하지만 그간 여러 교구와 연구소 등에서 내놓은 냉담교우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담고 있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이 펴낸 「쉬는 교우 대상 설문분석 보고서」(2007년)에 따르면, 신자들이 냉담에 빠지는 교회적 원인에는 ‘고해성사가 부담스러워서’(39.6%)라는 응답과 함께 ‘성직자·수도자·평신도 지도자에 대한 실망과 상처’(19.8%)라는 대답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가 2007년 발표한 「신자의식 조사보고서」에서도 냉담의 가장 큰 원인으로 ▲ 생계나 학업(25.2%) ▲ 고해성사 부담(17.1%) ▲ 신앙에 대한 회의(13.6%) ▲ 신자 · 수도자 · 성직자에 대한 실망(10%) 등이 지적됐다.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의 1997년 「냉담의 원인과 해소 방안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보고」 역시 ‘직장이나 학업’(21.1%) 등 생활고로 인한 문제를 제외하면 ‘신자·수도자·성직자에 대한 실망’(18%)이 주요한 냉담 원인으로 나타났다.

10여 년 전이나 비교적 근래의 설문조사에서도 신자들이 스스로 교회를 떠나는 주요 원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교회 내 지도층, 그 가운데서도 성직자에 대한 실망이라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반 신자들은 성직자들의 어떤 면에 실망하는 것일까. 평신도 단체 관계자나 전문가들은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문제로 지적되어온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는다.

수원교구 이근덕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외래교수)는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7일 ‘교회의 새로운 복음화 비전과 사제 쇄신’을 주제로 열린 연구발표회에서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성직자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교회가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상 문제의 핵심에는 성직자가 자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을 전후해 열린 각 교구 시노드 문헌들에서 예외 없이 등장하는 의제 가운데 하나가 성직자 중심주의와 권위주의에 관한 것들이었다.

문화·신학·역사·사회과학 등 4개 분야에 걸쳐 한국 근현대 역사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제 분야를 연구, 검토한 ‘한국 근현대 가톨릭연구단’이 지난 2004년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권위적’이라는 평가가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난 바 있다. 나아가 천주교 내부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이 ‘사제 중심적, 권위적 교회 운영’(32.6%)이었다는 것은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성직자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다 보니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모습들이 수레의 두 바퀴처럼 병존하게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성직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제도와 방식은 도리어 성직자 자신들에게 독이 되고 있다. 과도한 책임이 집중되다 보니 성직자들은 목마름을 느끼거나 지치고 병들어도 쉬면서 치유할 시간적 여유나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교회가 발을 디딘 교육, 의료, 사회복지, 언론 · 출판 등 사목 영역이 비대해지고 이를 둘러싼 교회 안팎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운영 책임을 맡은 성직자들의 정체성이 사목자가 아닌 ‘관리자’나 ‘행정가’로 치환돼 버리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강인철(세례자 요한·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운영의 책임을 진 성직자가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의 원리를 지나치게 중시함으로써 관리자로서는 함량 미달이고, 성직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행정가로 비치게 돼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복음 정신을 약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성직자들의 실천적 모범이 수반되지 않는 권위는 억압적 성격의 권위주의로 흐르는 속성이 있다”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권위 구조에 대한 냉소가 확산되면 한마음 한몸을 이뤄야 하는 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직면한 유혹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 중이던 지난 7월 28일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에서 행한 연설에서 교회가 직면한 세 가지 유혹을 지적한 바 있다.

교황이 꼽은 유혹은 ▲ 복음 메시지를 이데올로기로 바꿔놓으려는 유혹 ▲ 교회를 사업체처럼 운영하려는 유혹 ▲ 성직자 중심주의의 유혹 등 세 가지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사목한 경험이 풍부한 교황이 꼽은 유혹은 오늘날 보편교회에 속해 있는 대부분의 지역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이들 문제는 교회 역사 안에서 그만큼 깊은 질곡을 안은 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바통을 넘겨온 해묵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한 ‘교회를 사업체처럼 운영하려는 유혹’은 복음화율의 증가와 이에 따른 사목 영역의 확장 과정에서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인식되어온 측면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황은 이 문제가 더 이상 ‘필요악’의 영역에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문제들이 교회를 교회답지 않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이 말한 교회를 사업체처럼 운영하려는 ‘관료적 기능주의’는 교회 안에 ‘신비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오직 ‘효율성’만을 목표로 삼는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교황은 기능주의에 경도된 성직자들의 관료주의적 태도를 문제 삼으며 “이들은 교회를 하나의 비정부단체(NGO) 쯤으로 격하시킨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교황은 기능주의의 유혹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적극적 영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마음의 평화 수준으로 만족하는 소극적 영성만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덧붙이고 있다.

교황이 지적한 또 다른 유혹은 ‘성직자 중심주의’다. 성직자 중심주의는 말 자체가 드러내듯이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갖기 쉬운 유혹이지만, 평신도들도 이 유혹에 자주 연관되어 나타난다. 성직자들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평신도들을 대하지만, 적지 않은 평신도들도 오랜 세월 이러한 성직자들의 접근에 젖어 지내다 보니 편하게까지 느껴져 성직자 중심주의의 대상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평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이 주는 자유와 성숙함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성직자 중심주의가 온존하고 있다”는 교황의 지적은 신앙의 성숙도와 성직자 중심주의가 반비례한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황종렬 소장(레오·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은 “교회가 효율성과 성공을 강조하는 시대의 흐름을 뒤따라가면서 세속의 부정적인 면까지 답습한 결과 성직주의, 관료주의 등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 나타나게 됐다”면서 “효율성으로 드러나는 능력을 사목의 한 영역으로 수용해 활용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사목 능력과 등치시킬 때 사목의 역동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황 소장은 또 “예수님을 둘러싼 ‘관계성’ 속에서 예수님을 보는 게 아니라 예수라는 존재 자체에 치우칠 때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면서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복음적 효율성을 제대로 성찰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흘러가기 쉬운 성직자 중심주의와 이의 또 다른 발현이라 할 관료주의는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친교의 공동체인 교회를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세속적 가치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교황 · 추기경 · 주교 · 사제일 수는 있지만, 예수의 제자는 아니게 됩니다.”

“세속적 가치로 어떤 일을 이루려 한다면 어린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교황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이러한 가치나 삶들과 멀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1일, 서
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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