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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23: 영적 돌봄 (2) 돌보는 이의 영적 감수성 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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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08 ㅣ No.511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23) 영적 돌봄 2 - 돌보는 이의 영적 감수성 계발(영적인 자기 돌봄 훈련)


온전한 환자 돌봄 위해 의료인 영적 감수성 계발 필요



의료 환경은 복잡하고 빠르게 격변하고 있다. 의과학 기술은 환자를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게 되었지만, 환자는 갈수록 요구가 많아지며 불만족해하는 상황이다.

건강 관리 전문가들은 인간의 고통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많은 요구를 받으며 경쟁적인 환경에서 기계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경우에 냉소적이 되고 일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고립감과 우울증 그리고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소진을 체험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인간됨과 인간성이 침식 당하는 인터넷 환경 속에 살고 있다. 뇌신경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빠르게 인터넷을 서핑하고 많은 시간 디지털 매체 속에 살면서 인간은 더욱 산만해지고, 인간의 가장 섬세하고 고귀한 특성인 깊이 있는 사고, 공감과 연민, 열정과 같은 감정의 경험은 더욱 줄어든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기계적으로 기능하며 영혼을 상실한, 메마르고 행복하지 않은 현대인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욱이 고통 받는 이들을 돌보는 건강 돌봄 종사자들이 연민 어린 숙련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어떻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까?

영성적 차원에서의 성찰과 접근이 인간을 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으로 인도하며, 신체적·정신·사회적 및 영적 안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환자들에게 영적 돌봄을 제공하고 스스로도 영적으로 돌보기 위해서 의료인이 자신의 영적 감수성을 계발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건강 돌봄 전문가들에게 영적 돌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1990년 이래 완화의료 영역에서 영적 돌봄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하여 영성과 건강 영역에 관한 교육과 연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2000년대로 들어서며 건강 돌봄 전문가의 영성 및 건강 관련 공식 교육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의과대학의 85% 이상이 영성 주제를 공식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또 최근 8개 대학에서 실험적으로 실습 과정에 ‘성찰 회진’(Reflection Rounds)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학생들이 환자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적·윤리적·영적 문제들을 나누고 멘토링하는 영적 수업으로, 서로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좋은 성과를 내며 의료계 문화를 변화시키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간호학 및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학부와 석사 프로그램 속에 영성 주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런던의 마리 큐리 암센터는 건강 돌봄 제공자들을 위한 영적 돌봄 역량들을 개발하였다.

비록 조금씩 발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영성과 건강 관련 공식 교육 및 훈련이 대학 교과과정, 대학원 및 계속교육에서 더 필요한 상태이다.

우리나라에선 단지 소수의 대학에서만 이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의식하고 있을 뿐, 의료계에 치유적 환경을 조성하는 영적 돌봄의 발전을 위하여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미국의 완화의료학회에서는 의료인들이 자기 성찰, 명상적인 자기 돌봄 훈련을 받아 타인을 영적으로 돌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영성을 의료 실무에 실천하는 영적 돌봄은 전인적 안녕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치료적 활동의 한 형태이다. 이는 ‘몸과 마음과 영혼의 통합을 표현하는 능력을 촉진시켜 완전함, 건강, 그리고 자신, 타인 및 하느님과의 유대감을 얻도록 개인 또는 공동체에게 행해지는 중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다양한 영적 중재 중에서 거룩한 이름의 암송, 마음챙김 명상, 혹은 향심기도 같은 방법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전인적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환자들 뿐 아니라 건강관리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현대의 복잡한 의료계 안에서 건강 돌봄 종사자들의 소진 정도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특히 ‘2010년 대한민국 병원을 말한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의 경우 직무 불만족과 소진 정도가 각각 68%와 70%로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영성을 기반으로 하는 명상 중재는 이러한 건강 돌봄 종사자들의 스트레스와 소진 감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필자와 함께하는 ‘영성과 건강연구회’팀이 진행하는 영성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인 SCLP(Spiritual Care Leadership Program)는 2009년 병원의 중간관리자 간호사들의 요청에 의해 영적 돌봄 수행을 위한 준비로 개발되어 적용되었다.

이 영성 훈련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는 초월적 존재의 거룩한 이름·구절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화살기도와도 같은 영적 중재이다. 예를 들면,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등을 반복적으로 암송한다. 대상자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다수였지만, 다른 종교를 믿거나 종교가 없는 경우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하였다. 이 영적 수행은 매일의 일상생활 중 언제 어디에서나 쉽고 단순하게 실천할 수 있으며, 바쁜 의료인에게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보통 8주 동안 체계적으로 여러 차례 실행하며 책임 간호사 및 일반 간호사들에게서 많은 의미있는 결과들을 보게 되었고, 그 연구 성과를 SCI급 국제학술지에도 발표하였다.

거룩한 이름(holy name)을 반복적으로 암송하는 명상은 긴장감과 중압감이 심한 병원환경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같은 건강 돌봄 종사자들에게 순간순간 긴장을 완화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데에 큰 효과가 있었다. 실제적으로 이 영성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던 여러 병동의 책임 간호사들이 영적인 성장과 영적 통합성(일상생활에 자신의 영성을 통합하는 감각과 능력)을 서서히 증진시킬 수 있었다. 또한 직업적 소진이 감소되었고, 직무만족도와 공감능력이 향상됨을 느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모범과 모델이 되는 바람직한 리더십 수행, 타인에 대한 동기부여 및 마음 격려하기 등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관리 하에 있는 병동의 간호사들이나 환자들에게 연민적 돌봄을 제공하여, 병동의 분위기를 온화하고 치유적인 분위기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체현’이라는 CMC 이념실천 수기에 응모하여 매년 상을 받는 기쁨과 보람도 경험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두 가지 사례를 부분적으로 발췌하고자 한다.

(사례 1) 어느 병동 간호사

“… ‘거룩한 이름 부르기’는 만병통치약이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법주문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의견이 맞지 않거나 나를 무시하는 누군가를 대해야 할 때, 해결되지 않을 듯 엉켜있는 문제를 만나 압도 당해 있을 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끝없이 후회와 걱정이 밀려올 때, 내가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불안이 감소되었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쉼표는, 내가 아닌 하느님께서 나를 조정하시는 것을 보도록 기다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미움이란 감정에 나를 송두리째 내던지지 않을 수 있었고….”

(사례 2)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 27주에 900그램으로 태어난 아기가 심한 기흉으로 한 달이 넘게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고 하루하루 삶을 겨우 이어가고 있었다. 아기 부모도 의료진도 모두 지친 상태에서, 난 아기를 위하여 ‘거룩한 이름 부르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인큐베이터 위에 “주님, A에게 건강을 주세요”라고 써 붙이고 아기를 치료하고 돌볼 때 모두 마음을 모아 암송하며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다.

그렇게 한 열흘쯤 지났을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살아서 집에 못 갈 것 같던 아기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기가 인공호흡기를 떼던 날, A의 어머니는 내게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울었다. 그 후에 상태가 안 좋은 다른 아기를 회진 중, 담당 교수님이 갑자기 내게 “A 아기 앞에 붙여놓았던 그 글귀, 이 아기에게도 좀 붙여주세요. 그 글귀가 참 효과 있더라고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기도는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 신비로운 선물을 주고 있다.”

이처럼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명상을 통해, 간호사들은 자신의 삶에서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영적인 차원을 체험하며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들 중 오랜 기간 쉬던 신자들이 하느님을 향한 영적 갈망이 커져 다시 성당에 나가거나, 한참을 미루어오던 견진성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가정으로도 이어져, 자녀들과 함께 명상하고 대화함으로써 가족의 친밀감을 증대시킨 여러 경우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영적 자기 돌봄은 건강 돌봄 종사자들의 전인적 안녕과 삶의 질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곧 그들이 돌보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치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 의료계가 영성적 접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영혼을 되찾는 치유적 환경을 조성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기도한다.

* 용진선 수녀는 미국 시애틀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간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간호대학 교수 및 호스피스 연구소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또한 ‘영성과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8일, 용진선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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