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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11-1219...월...하느님은 여성에게 더 자비로우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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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12-18 ㅣ No.1142

1219: 성탄 전 9일 기간 - <3일째> 판관기 13,2-7.24-25           루카 1,5-25

 

2011. 12. 19. . 등촌3.

주제 : 하느님은 여성에게 더 자비로우신가?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일의 한 가지는 이분법에 따른 비교이고, 그런 방법을 적용한 판단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강론의 제목을 여러분에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오늘 제목을 하느님께서는 여성에게 더 자비로우신가?’하는 것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성의 상대편에 있는 남성에게 하느님은 정말로 더 가혹하신가?...... 하고 묻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한 다음, 여러분에게 대답을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제가 여러분의 대답을 각자에게 물은 것은 아니니, 어떤 대답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드리는 대답은 하느님은 그렇게 행동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 독서와 복음말씀을 상대로 놓고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비교에 따른 대답이나 경쟁관계를 통해서 답을 얻으려면, 조건이 똑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있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도 상황도 드러나는 일들도 모두 똑같지만, 남자와 여자 가운데 어느 쪽이 하느님의 사랑이나 이해를 더 많이 받겠느냐 하는 질문은 불가능합니다. 비슷한 것을 찾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는, 성전의 지성소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벙어리가 됩니다. 하지만, 구약시대 삼손의 어머니는 비슷한 입장이었는데도 같은 고생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삼손의 어머니는 왜 자신에게 그런 일어나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은 차이는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하고 잠시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은 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실까....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남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남자가 하느님을 향하여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들 각자의 행동은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부딪히면, 사람은 자기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대상을 탓하면서 주저앉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주저앉은 사람을 편들어서도 곤란한 일입니다. 삶의 책임은 누구나 자기가 드러낸 모습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즈카르야와 비슷한 삶의 입장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해도 좋은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도 있으며, 드러내기는 마음대로 다 하되 아무렇게나 했다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실까요? 아니면 나만 특별히 더 미워하는 가혹한 분이실까요?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판단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말로 하느님은 같은 모양으로 우리 삶에 다가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성탄대축일 전, 9일기도의 3번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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