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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간추린 사회교리: 평화의 성사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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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1 ㅣ No.976

[간추린 사회교리] 평화의 성사인 교회


오늘날 세계는 더 이상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종교, 영토, 또는 민족 간의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군비확장과 무력도발에 따른 전쟁위험이 상존한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한층 더 간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에 대한 염원을 교회는 어떻게 증진해야 할 것인가?


정당한 전쟁 이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는 비폭력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적 요구에도 교회사 안에서 ‘정의를 위한 전쟁은 있을 수 있다.’는 이론은 가톨릭 신학적 전승의 명백한 가르침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우구스티노가 제시한 정당한 전쟁 이론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전쟁의 지향은 언제나 평화의 재건이어야 한다. 직접적 목적은 합당한 정의의 추구라야 한다. 전쟁은 그리스도적 사랑이라는 내적 자세와 함께 치러져야 한다. 사랑은 선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자비의 전쟁은 배척하지 않는다(justia/justa causa).

둘째, 전쟁은 정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쟁은 합법적 통치자의 권위 아래에서 수행되어야 한다(legitima potestas).

셋째, 전쟁 중의 행위는 정당해야 한다. 적에게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복수, 잔학행위, 보복은 절대 피해야 한다(necessitas).

여기서 근본바탕을 이루는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은 인간의 역사에서 평화의 왕국은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저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역사 안에서 죄와 폭력의 실제성을 고려해야 하며, 전쟁의 불가피성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는 윤리적인 질서가 있는데, 위기 시에는 무력으로 복구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더욱 권위 있게 다듬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와 서구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인정되었다.

하지만 서구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겪으면서 전쟁은 더 이상 정의를 건설하는 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인정하던 분쟁해결을 위한 사회학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전쟁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전쟁은 역사를 결정적으로 정지시킬 위험을 갖는 것임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고, 이러한 사실들은 전쟁에 대한 교회의 견해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받아야 한다.”(사목헌장, 80항)고 선언하였다.


평화증진

전쟁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지지될 수 없는 구시대적인 유산이지만 역사 속에서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복수심과 야욕이 이념과 사상에 의해 과대포장되거나 사람들을 기만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토대 위에서 사목헌장(78항)은 평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고, 전제적 지배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올바로 또 정확히 말하자면,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다.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그 질서의 열매, 또 언제나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할 사회질서의 열매가 바로 평화이다.”

사목헌장은 또 전쟁을 국가 간의 분쟁문제를 해결하려는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인정하는 이론은 그리스도교적 전쟁윤리에 모순된다고 하였다. 또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실천하며, 참으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평화를 간구하고 건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그리스도인의 평화에 대한 사명을 강조하였다.

특히 사목헌장은 현대과학 무기의 전쟁이 정당방위의 한계를 초월하는 대량살상을 초래하므로 그 수단과 방법의 적용은 부도덕한 것으로 비난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아울러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은 인류에게 매우 중대한 위험이며, 군비경쟁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견딜 수 없도록 해치는 일이므로(81항), 요한 23세 교황은 군비확충 중단과 원자무기 금지를 요구하였다(「지상의 평화」, 109-112항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핵전쟁은 전 세계 인류를 근절할 수 있는 위협임을 경고하면서, 건전하지 못한 군비경쟁이 각국의 경제발전과 후진국들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탕진하는 것이며, 인간복지에 기여해야 할 과학적 기술적인 발전을 전쟁의 도구로 만들어버린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인간 자신의 인간들에 대한 살해로 끝나기에 전쟁을 근본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백주년」, 18항 참조).

그러므로 전쟁은 무죄한 사람들의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방법을 가르치고 죽이는 이들의 생명을 격변 속에 몰아넣고 증오와 지속적 원한을 남기며, 전쟁을 유발한 그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백주년」, 52항 참조).

또한 진정한 평화는 군사적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전쟁의 원인들의 제거와 민족들 간의 진정한 화해에서 온다고 보았다(「백주년」, 18항 참조).

이런 맥락에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평화가 사회와 국가, 단체와 시민들 사이 안에서, 특히 인간의 마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평화는 “사람들의 선익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등이 없이는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다.”(2304항)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요구되는 교회의 역할은 평화의 성사로서의 역할이며, ‘전쟁은 억제되어야’ 하고 또 ‘억제될 수 있다.’는 확신에 기초를 두고, 이 시대적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모두 평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몸소 평화를 실천하는 증거자의 소명에 부름을 받았음을 인식하고, 그 부름이 참된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하느님이 진정한 평화를 허락하실 것이라는 희망과 하느님의 창조물이요 기본적으로 악일 수 없는 인간을 하느님께서 신뢰하고 계시다는 것, 아울러 인간 안에는 평화의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비폭력

교회가 말하는 평화를 증언하는 방법은 비폭력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비폭력은 전쟁의 대안일 뿐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며 인간 해방의 사랑과 정의의 진리를 추구하는 가장 용기있고 강력한 무기이다.

“비폭력의 삶은 단순히 어떤 일시적 희생을 치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희생과 그 희생을 통한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다”(L. del Vasto, Gandhi to Vinoba, New York, 1974, 215).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비폭력행위를 향한 창조적이며 굽힐 줄 모르는 헌신은 세상의 구원자이며 십자가상 죽음을 통하여 진리와 사랑의 힘을 드러내신 평화의 주님에 대한 가장 영웅적인 신앙표현이다.

복음이 요구하는 비폭력의 길, 그것은 심리적, 육체적 폭력과 기만, 술수, 더 나아가서 힘든 갈등의 상황에서도 비열한 침묵과 타인의 마음을 조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무기도 갖지 않고 미움과 원한도 없이 악을 대적하며, 자신들을 곡해하고 박해하는 그들을 축복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랑의 힘과 참된 성실성으로써, 가장 강력하고도 깊이가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악을 대적하는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평화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혹여나 이 방법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먼저 이 비현실적일 것이라는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비폭력의 길을 통해 평화증진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김정우 요한 - 대구대교구 신부. 1992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이며 대구관구 대신학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 김정우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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