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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세계 성체 대회와 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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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70

[레지오의 영성] Allocutio - January, 2012


세계 성체 대회와  레지오 (1)



지난 2년 이상의 기간동안 꼰칠리움의 간부들은 2012년 6월 더블린에서 열리는 세계 성체 대회에 레지오가 참여하고 홍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능한 방법에 대해 논의해 왔습니다.

레지오가 월 단위로 또 정말 일 단위로 다뤄야만 하는 급하고 중요한 다른 사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시간과 생각, 계획 및 정력을 성체 대회의 준비에 상당히 많이 할애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더블린에서 가장 최근에 열렸던 세계 성체 대회는 80년 전으로 하느님의 섭리로 인해 전 세계의 레지오를 위해서는 커다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주교, 사제와 평신도들이 더블린에 왔다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레지오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면서도 충심으로 마리아를 따르고 성령에게 전적으로 봉헌하며 기도와 활동의 역동적인 조화를  천부적으로 갖춘 이 평신도 사도직 운동을 보편 교회가 발견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 밖에 레지오의 영성적이고 조직적인 다른 특성들도 알려지게 된 그 대회는 레지오의 대단한 공현(公顯)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이제 저희는 더블린에서 또 한 번의 세계 성체 대회를 치르게 되었고 이 때에 하느님께서 레지오에게 주실 모든 은총을 저희가 받아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온 교회를 위한 은총의 특별한 시간동안 전 세계의 레지오가 성체이신 주님(Eucharistic Lord)과 완전히 협력하게 되는 은총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 초점은 물론 성체입니다. 교본은 이를 매우 강력하게 표현합니다. “성체는 은총의 중심이며 원천이다. 그러므로 성체는 레지오 조직의 머릿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성적으로 활동을 한다 해도, 레지오 활동의 주목적이 성체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이라도 잊는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체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누어 주시어 그들을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나눔은 주로 성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교본 제 8장 4절)

레지오의 입장은 매우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 주목적은 성체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성체는 무한한 선(善)이며 예수님 자신을 내어 주시는 선뮬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존재하는 바로 그 목적도 자신의 아드님인 예수님을 모든 사람에게 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면 마리아를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또한 마리아의 모든 협력자의 특권이고 임무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성체로 인도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교본은 교도권(敎導權 :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유권적으로 이행하는 권한 ? 가톨릭 대사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성찬례는 복음화 활동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이다.”(교회 헌장 11 참조)라는 엄숙한 가르침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문장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성체 대회가 온 교회뿐만 아니라 레지오에게도 어떻게 근본이 되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교본에는 레지오의 삶에 있어서의 성체에 대해 참조할 만한 내용이 많이 있지만 저는 특히 제8장 4절을 추천하려 합니다. 모든 쁘레시디움 및 실로 전체 레지오 세계의 상급 평의회까지 성체 대회의 은총을 받기 위한 개인적인 준비로, 교본의 이 장(章)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한다면 이는 매우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미 우리 레지오 단원 각자를 위해 고귀한 성체 쇄신(Eucharistic Renewal)의 원천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교본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며 여러분이 이에 대해 자주 기도하도록 초대함으로써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성모님은 이 신비체의 어머니이시다. 일찍이 성모님은 그리스도이신 아기 예수님을 돌보는 일에 여념이 없으셨던 것처럼 이제는 그 신비체의 어머니로서 전과 다름없이 지체들인 우리를 양육하고 싶어 하신다. 하늘의 빵으로 양육되어야 할 당신의 아기들이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아 영적으로 완전히 굶주리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보실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시겠는가. 영혼을 돌보시는 성모님의 모성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모님과 일치하여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지 않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복된 성체성사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일깨우고 인간을 성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죄와 냉담을 없애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활동해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받아 모시는 성체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은혜가 된다. 이처럼 성체는 영혼 하나하나를 통하여 전체 그리스도 신비체를 양육하며 우리의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가도록(루카 2,52)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본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차근차근 읽고 이에 대해 자주 그리고 더 많이 기도하며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성체 대회가 열리는 올해가 레지오의 성체 쇄신 사도직 활동을 위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4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꼰칠리움 영적 지도신부), 역 하성환 프란치스코(서울 Se. 국제서기)]

 

 

[레지오의 영성] Allocutio - February, 2012


세계 성체 대회와 레지오 (2)



지난 달에는 금년(2012년) 6월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열리는 세계 성체 대회와 이 대회가 전 세계의 레지오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서론과 같은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대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준비로, 레지오 교본의 제8장 “레지오 단원과 성체”의 4절을 다시 한 번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라고 제안했었습니다. 이 대회에 오시지 못하는 전 세계의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대회의 정신에 동화되고 이 대회에 참으로 진심을 다해 참여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성체 대회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선 이 대회의 목적은 전체 가톨릭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집중시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대회는 예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증진시키고 권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체 대회는 성체 안의 우리 주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순수한 우정을 증진시키고 더 깊게 하기 위한 노력이며, 성체가 주제의 중심입니다. 대회의 개최와 관련되는 다양한 모든 위원회 및 소위원회, 모든 계획, 끊임없는 모든 회의, 자금 마련 및 전체적인 업무 관리와 모든 대단한 노력은 단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성체 안에 실존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접촉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궁극적인 목적은 레지오 마리애의 존재 이유와 일치합니다. 교본에서 다시 한 번 핵심적인 문구를 인용하겠습니다.

“성체는 은총의 중심이며 원천이다. 그러므로 성체는 레지오 조직의 머릿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성적으로 활동을 한다 해도, 레지오 활동의 주목적이 성체께서 모든 이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이라도 잊는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체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누어 주시어 그들을 당신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나눔은 주로 성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제 저는 교본의 제8장 1절 “미사 성제”에 대해 간단한 의견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모든 은총은 예외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희생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총들은 하느님의 계획과 의지에 의해 성모님의 보편적인 중개를 통해 분배되지만 그 은총들의 출처나 근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일 뿐입니다. 그런데 트렌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미사는 하나이며 동일한 희생이라는 최고 권위를 가진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에서 갈바리아의 실제 상황을 우리 가운데 우리 시대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2천년 전에 일어난 어떤 일을 기념하는 상징적 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미사에서 실제 그대로 무한히 풍부한 결실을 맺으며 정말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는 미사의 한량없는 가치의 근거이며 교회에서, 또 그에 따라 레지오에서 절대적인 구심점이 되는 근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성찬의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이다”(교회 헌장 11 참조)라고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갈바리아와 미사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갈바리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홀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자신의 전부를 바치셨습니다. 그러나 미사에서는 자신의 동일한 불멸의 행동으로 당신 자신을 바치시기는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신비체의 지체인 우리와 함께 자신을 바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기도를 바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는데 이는 세례를 받은 우리 신자 모두가 사제직이라는 굉장한 특권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에게 주신 참으로 커다란 은총 중의 하나가 미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헌신적인 애정임을 레지오 단원인 우리는 모두 압니다. 레지오가 창설되기 몇 년 전인 1917년 11월에 벌써 그는 "매일 미사 동맹The League of Daily Mass"을 시작하였고 출석부 등재가 끝났을 때에는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영성체를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을 이미 1,176 명이나 모집하였습니다. 이 매일 미사 동맹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 이것은 레지오의 영성적인 면 및 사도직 활동과 결합되어 교본 제37장 "활동의 예와 방법" 중에서 13절 "매일 미사 참례 및 성체 조배 권장 활동"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활동을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쁘레시디움의 특권적인 활동 중의 하나로 만든다면 성체 대회의 결실 중의 하나로서 훌륭한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들을 프랭크 더프가 지은 '우리는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소책자에서 인용하여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기본 : 십자가 자체와 같이 고귀한 것은 별도로 치고 우리의 하루를 고려할 때 매일 미사와 매일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일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길게 논쟁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게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입니다. 아침(또는 새벽) 미사를 문제없이 갈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은 위대한 성화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단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뿐입니다.

미사와 영성체는 완벽하게 시작되는 하루를 의미하며 이를 행할 경우 하루의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행동 이외에 2가지의 자그마한 의무가 있습니다. (1) 여러분의 이웃 중에는 혼자서 매일 미사에 참석하기를 꺼리는,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들을 깨우치기 위해 이들에게 책을 빌려 주고 조언을 해줘야 하며, (2)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지식과 존경을 늘리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훈화에서 기본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바는 레지오에게는 성체 대회가 레지오의 위대한 이상일뿐만 아니라  교회와  세상에서 가장 분명하고 실제적인 증거인 성체를 다시 한 번 레지오의 삶과 사도직 활동의 중심에 두게 하기 위한 초대와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5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꼰칠리움 영적 지도신부), 역 하성환 프란치스코(서울 Se. 국제서기)]

 

 

[레지오의 영성] Allocutio - March, 2012


세계 성체 대회와 레지오 (3)



지난 달에 우리는 모든 성체 대회의 핵심과 참으로 성체에 대한 교도권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가르침의 중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실제로 존재하시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분께서는 교회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예수님의 신비체인 교회와 일치하지 않고서는 그분과 일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심은 교회의 생명력이고 선교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며 전적으로 복음화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주님의 약속은 성체 안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그분은 성체, 성혈, 인성과 신성으로 언제나 완전하게 우리에게 계십니다. 사도 성 요한이 성체의 의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듯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완전히 봉사하십니다. 우리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의 무한하신 겸손은 우리가 교회의 선교 사명과 모든 형태의 사도직 활동에 어떻게 참여해야만 되는지에 대해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체에 대해 다룬 교본의 여러 절(節)에서 위에서 생각해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달에 우리는 미사 성제의 희생에 관한 제8장 1절을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갈바리아에서의 희생과 미사의 동일성에 대해 교회에서 규정한 가르침을 강조하였고, 교본에서 설명하듯이 미사의 무한한 가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오늘은 말씀의 전례에 관한 제8장 2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교본은 미사 경본의 총지침을 인용하며 시작합니다. “성당에서 성서가 봉독될 때는, 하느님 자신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을 봉독하는 것은 전례의 가장 중요한 요소에 속하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이 서술의 기본적인 개념은 성경이 그리스도 성심의 성사라는 교부학(고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교회의 정통교리를 저술로써 설명하고, 성스러운 생활을 함으로써 신도의 모범이 된 사람들인 교부들의 철학·사상 등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적인 신념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서기 50년 이전)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와 같이 복음 안에서도 피난처를 얻습니다.” 먼 훗날에 성 요한 에우데스(St. John Eudes)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오, 내 가장 사랑하는 예수 성심이시여, 저는 이 책에 쓰인 모든 말씀의 근원이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에서의 주님의 실제 현존에 대해 심오한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아를의 성 체사리오(St. Caesarius of Aries)의 교회 회의 문서 중의 하나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답을 잘 하시고 싶다면 의문의 여지 없이 하느님의 말씀이나 그리스도의 몸이나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을 때 우리 손에서 바닥으로 전혀 떨어뜨리지 않도록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 우리가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분심시키지 않도록, 우리에게 주어지고 제공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똑 같은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만 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듣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보다 덜 비난 받을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에 대해 말하면서 이 가르침을 아주 돋보이게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식탁과 성체의 식탁 둘 다로부터 양식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지 정보인 경우보다는 말이 더 전달이 잘 된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말이란 사람들의 상호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봉독되는 당신의 말씀을 직접 하시고 그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경우라면, 성찬례를 세우신 그 말씀은 얼마나 더 많이 전달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이 성자들의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형시켰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사막의 성 안토니오(St. Anthony of the desert)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대를 받은 부유한 젊은이에 대한 복음(마태 19,16-26; 마르 10,17-27; 루카 18,18-27)을 들었습니다. 그 젊은 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그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아 모든 재산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에 의한 그의 새로운 삶의 형성으로 인해 교회 안에 거대한 수도자 운동이 갑자기 생겨났고 교회는 명상을 중시하는 매우 많은 엄청난 수도원 및 수녀원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우리의 창설자인 프랭크 더프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했을 때 마태오 복음 25장의 다음 구절에 특히 친숙해졌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자매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참조) 그는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생활하였으며, 그 교리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변형시켰습니다. 그 교리는 사람에 대한 그의 온화하고 보편적인 예의와 존경의 배경이 된 동기였고, 전 세계를 통틀어 전체 레지오 사도직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의 성사나 성체 성사 안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비록 다른 방법이지만 이 두 개의 성사 안에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레지오 단원은 그 자신의 영성적인 삶과 사도직 활동을 위해 이 두 가지 성사에 전념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두 가지 성사가 없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이나 사도직 활동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6월호, 글 비드 맥그리거(꼰칠리움 영적 지도신부), 역 하성환  프란치스코(서울 Se. 국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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