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630.....연중 제1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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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6-30 ㅣ No.1800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 홀수 해

창세기 19,15-29                마태오 8,23-27

2015. 6. 30. 이태원

주제 : 세상을 대하는 자세

오늘로 무덥게 살고 있는 올 한해의 절반도 끝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덥네, 어쩌네 하고 말해야 달라질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겠지만, 엘니뇨, 라니뇨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에너지를 쓰는 방법과 관련은 있을 것입니다. 현실은 이렇게 진단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아무런 문제는 없을까요? 또 내가 변한다고 해서 좋아질게 무엇이 있나 하면서 무신경하게 포기해도 좋을까요?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최고지성인 인간에게 관할권과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현실에 사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일을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신앙은 그렇게 해석하고 그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하느님의 속박(束縛??)에서 자유로워진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사물을 함부로 대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도 대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들은 창세기말씀은 하느님께서 천사를 파견하시어,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을 징벌과 멸망에서 구해내는 이야기입니다. 신앙인은 이것을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해석하겠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의 일에 간섭하신다는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후자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른(?) 롯과 두 딸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에 대한 감정을 먼저 드러낼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개인의 자유이지만, 생긴 일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복음말씀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호수의 풍랑에서 구해내는 얘기입니다만, 두 가지 일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아주 큰 차이입니다.

같은 일을 사랑이라고 보는지 혹은 구속이라고 보는지에 따라 일어난 일이나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만, 그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아주 많이 달라집니다. 보통은 내게 이익이 있으면 구속이든지 뭔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손해가 있다면 같은 일도 다르게 대하겠지요?


이래서는 인간만 대하는 자세에 따라 힘든게 아니라, 인간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그 관할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맡겼다는 하느님도 참 사시기(!!) 힘들겠다는 소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이 얼마나 힘들지 인간은 모릅니다. 누구나 힘들다는 대상은 자기 자신만 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일에 우리가 드러내야 하고,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까지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내 대신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대답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대하는 자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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