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15-0709.....연중 제1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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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7-08 ㅣ No.1807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 홀수 해

창세 44,18-21.23-29; 45,1-5         마태 10,7-15

2015. 7. 9. 이태원.

주제 : 과거의 삶을 돌이킴

사람이 자신이 처음부터, 또 원하는 곳에서 살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라면 사람이 갖는 욕심도 한 몫을 할 것입니다. 돈의 경우라면, 집값이나 세는 오르는데 그 돈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클 것이고, 욕심이라는 것도 개인의 탓도 있지만 다른 이가 실현하고 싶어 하는 일의 탓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고향땅을 떠나게 된 요셉이 형제들과 만나면서, 사람의 시기로 시작된 일을 하느님의 섭리와 배려로 다르게 시작된 일로 해석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대하는 성경내용이 자기의 삶을 요셉의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기에, 일부의 내용의 생략됐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유는 참 놀라운 것입니다.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의 손길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나 욕심을 빼고, 20157월의 오늘까지 각자의 삶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어떤 모양이 되겠습니까? 신앙의 입장에서 이렇게 하는 권고는 지금까지 현실의 삶을 무조건 좋게 봐야 한다는 강요(!)’가 있다고 알아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실의 삶을 부정해서는 좋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좋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삶에 손해가 적을 것이라는 방향을 따라서 산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추구하는 기본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현실은 무조건 좋아야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후회(後悔,=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나 회한(悔恨,=뉘우치고 한탄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니까 뉘우치거나 한탄하는 것이라고 십분(十分,=넉넉히,충분히) 인정한다고 해도 그 의미는 반감되기 마련입니다.


요셉의 놀라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형제들이었기에 그들의 삶에는 뉘우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일들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의 삶에 놀라운 일은 일어납니다. 그들이 놀라운 일을 만든 것이 아닌데도 놀라운 일은 그들의 삶을 찾아옵니다. 이것을 하느님의 섭리요 배려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하겠습니까?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는 후회가 큰 의미는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만, 그래도 사람이 자기의 삶을 돌이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적어도 다음 순간부터는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거나 그 횟수를 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새긴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갖는 내 마음자세는 세상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새겨야 할 일입니다.

올바른 마음과 생각을 갖추고 살아야 할 일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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