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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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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3-05 ㅣ No.99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 (상)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라는 창립자의 영적 유언을 받들어 현재 10여개국에서 활동중이다.

 

 

1878년 알퐁소 마리아 푸스코(Ven. Alfonso Maria Fusco) 신부에 의해 이탈리아 살레르노 앙그리에서 설립된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Sisters of St. Jhon Baptist)는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라』하고 설파한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준비하여라」는 것이 고유한 영성이다.

 

나자렛의 예수님을 수녀회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는 특히 시대가 요청하는 바에 따라 하느님 말씀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젊은이들을 교육시키고 격려하며 세례자 성 요한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주님의 길을 바르게 준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긴다. 

 

설립자 알퐁소 마리아 푸스코 신부는 이미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리던 중 구속주회 노 수도자로부터 『앞으로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이름은 알퐁소, 사제가 되어 구속주회 설립자 알퐁소 리구오레(당시 복자)의 삶을 닮게 될 것이오』라는 말을 들었고 그렇게 태어난 푸스코 신부는 11세 때 오직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노체라교구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푸스코 신부는 소신학생 시절이었던 1859년 꿈속에 나타난 나자렛 예수님을 통해 수녀회 설립의 뜻을 마음속에 품게 된다. 이때 나자렛 예수님은 알퐁소에게 『어린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회를 설립하여 나자렛 수녀회라고 부르게 되리라. 터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씀을 남겼던 것. 

 

알퐁소 신부는 이후 1863년 3월 29일 사제품을 받은 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일하며 버려진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또 주교에게 순명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임을 믿으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고통의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는 마침내 1878년 9월 26일 같은 뜻을 가졌던 수녀회 초대총장 막달레나 까푸토와 함께 한 낡은 집에서 수녀회 설립미사를 봉헌했고 매 끼니를 때울 음식조차 부족한 가운데서도 하느님 섭리로 지원자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1878년 10월 5일에는 첫 고아가 공동체에 들어오는 결실을 보게 됐다.

 

알퐁소 신부는 회원들을 위한 사랑의 규칙서를 만들어 『여러분은 거룩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 모였고,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이것은 곧 회원들이 생활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매일 살아갈 것과 순명과 노동,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었다.

 

1880년 7월 주교의 공식적 인준을 받고 수녀회 첫 착복식을 가진 알퐁소 신부는 『그대들은 겸손하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녀가 되시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시오. 나는 하늘나라에서 항상 그대들을 생각할 것이며 또한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오』라는 영적 유언을 남겼다.

 

1910년 2월 6일 선종한 알퐁소 신부는 1976년 2월 12일 「가경자」 칭호를 받았고 잠비아 어린이 제솜 기즈마에게서 치유 기적이 실현됨으로써 2001년 10월 7일 복자품에 올랐다.

 

세례자 요한 수녀회 정신은 이러한 설립자의 성소(부르심)에 기초해 있고 그의 이상은 현재까지 수녀회내 10여개국에서 활동중인 모든 공동체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1월 2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 (하)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는 한국에 이어 폴란드 선교에 착수했고 계속해서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멕시코, 몰도바 등에까지 선교지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1880년 7월 지역 주교의 공식 인준을 받고 수녀회가 첫 착복식을 가진 가운데 설립자 알퐁소 신부는 자신의 일을 반대하는 이들의 시기, 중상 모략도 기도와 인내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거룩한 섭리에 의지하면서 수녀들에게 영적 유언을 전했다.

 

『그대들은 겸손하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녀가 되시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의지하시오. 나는 하늘나라에서 항상 그대들을 생각할 것이며 또한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오』

 

1895년 2월 로마에 첫 공동체가 설립된 후 수녀회는 그 이듬해 수녀회 잡지를 발간했고 1906년에는 미국 뉴왁에서 첫 선교를 시작했다.

 

1917년 교황 베네딕도 15세에 의해 교황청립 수녀회로 인준을 받은 세례자 성요한 수녀회는 이어서 193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최종 회헌을 인준받았고 그로부터 4년후인 1939년부터는 브라질 이타페체리카를 시작으로 해외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계속해서 칠레 잠비아 캐나다에 수녀들을 파견한 수녀회는 1977년 2월 인도에 발을 내딛음으로써 아시아 선교를 향한 노력을 시도했다.

 

한국으로의 진출은 1983년 필리핀 선교에 이어 1990년에 이루어졌다. 1988년 6월 16일 수원교구장의 승낙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준비한 수녀회는 1990년 아퀼리나 카스코네 수녀, 마리아 데레사 타벨라(Maria Teresa Tabella) 수녀, 베티 유(Betty yu) 수녀가 한국에 입국함으로써 본격적인 한국 선교를 가동했다.

 

수원시 장안구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던 수녀회는 영어교육 실시로 사도직 활동을 전개했고 1995년 수녀회 본원 축복, 1997년 어린이집 개원 등 행사가 잇따랐다.

 

이들의 사도직 지향은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 및 특히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젊은이들에 맞추어져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의 활동은 어린이집 운영과 수원교구를 중심으로한 본당 사도직 활동으로 크게 나눠진다. 

 

어린이집 운영은 세례자 성 요한 수녀회가 창립 당시 사회혼란으로 길에 버려진 많은 소년 소녀들을 데려다 이들을 보호해 주고 올바른 인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보육 및 교육 등을 실시하였던 특별한 영성을 따른 것. 

 

그런 면에서 어린이들에게 건전하고 밝은 성장 및 올바른 인격 형성을 도모해 주며 어린이들의 가정 환경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추구함과 동시에 지역 사회의 복음화를 실천한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또 본당 전교 활동의 경우 지역 교회 안에서 사회복음화 활동에 적극 협조하며 냉담자, 소외된 이들,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 물질적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하느님을 향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와 기도로써 함께 한다는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세례자 요한 수녀회는 한국에 이어 1991년 폴란드 선교에 착수했고 계속해서 아르헨티나(1994) 남아프리카공화국(1995) 진출을 비롯 멕시코(1996), 마다가스카르(1998), 말라위(2000), 몰도바(2000) 등에까지 선교 지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12월 5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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