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0일 (목)
(녹)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경쟁사회: 지속가능한 경쟁의 조건과 원칙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868

[경향 돋보기 - 경쟁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지속가능한 경쟁의 조건과 원칙

 

 

자유경쟁과 경제발전의 역사적 관계

 

18세기말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신대륙 미국에서 제2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완성된다. 토마스 에디슨의 전기, 철도와 증기기관차, 그리고 원시적인 통신수단인 텔레그라프가 제2차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역사적 발명이었다.

 

경제사학자들은 위의 세 가지 발명보다도 신대륙 미국에서 보장된 사유재산권과 개인의 자유와 개척정신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19세기말부터 산업화를 통해 미국 대기업이 형성된 과정을 분석한 챈들러 교수에 따르면,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의해 미국 경제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대기업 경영자들의 기업가 정신과 이들 서로간의 치열한 경쟁, 곧 ‘보이는 손(visible hands)’에 의해 산업화가 완성되었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 이것은 분명 기회였다. 남보다 먼저 특허를 개발하거나 대형 생산설비를 갖추어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모든 산업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자신이 구축한 독점적 위치를 남용하는 대기업도 많았고 이들 대기업 간의 담합행위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어두운 성장 과정이 존재하여 왔지만 궁극적으로 산업화를 주도하여 온 세력은 새로운 생산기술과 아이디어 그리고 경영혁신으로 무장한 기업인들이었다. 미국 경제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1930년대 대공황을 비롯해 여러 차례의 불황과 구조조정을 경험하였다. 이를 통해 수많은 기업이 퇴출되기도 하였지만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생존한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과 효율적인 생산설비로 시장을 주도하며 초대형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과 빠른 산업화에 힘입어 1910년대 초반에 세계의 상위 100대 대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을 미국의 대기업이 차지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세계경제의 패권국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 프랑스와 함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 역시 폐허 속에서 후기 산업화 과정을 통해 자유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며 성장에 동참하였다.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 후발국가 역시 자유 시장경제체제와 자유무역체제를 활용하며 후기 산업화에 성공하였다.

 

그 후 약 40여 년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분된 체제로 분리되어 체제 경쟁을 벌여온 세계경제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사회주의체제의 비효율성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국가들이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함에 따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의 승리로 냉전을 마감하게 된다.

 

지난 세계경제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의 핵심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과 기술혁신, 그리고 발명에 있다. 또한 자본주의 정신은 혁신적이고 실험적이며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체제의 승리 이면에는 기업가를 포함한 기득권세력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혁신과의 경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나아가 경쟁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덕목이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시장경쟁을 통해 역사는 발전하여 왔다.

 

 

시장경쟁체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레오 13세 교황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891년 “새로운 사태” 회칙을 발표하였다. 그는 또한 초기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저임금과 노동조건의 악화 등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노동헌장”이라고도 부르는 위 회칙을 통해 당시 유럽에서 싹트고 있던 사회주의운동이 궁극적으로 실패로 끝날 것을 예언하였다(마이클 노박, 「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93 참조).

 

레오 13세 교황이 사회주의체제의 태생적 한계를 예견하였듯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891년 노동헌장이 반포된 이후 백 년이라는 기간 동안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체제를 통해 인간이 빈곤의 굴레에서 처음으로 해방되는 것을 목도하였다. 물론 같은 기간에 일부 전제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실패했고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인 사회주의가 실패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딛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백주년」을 통해 자유로운 정치질서와 자유로운 경제, 그리고 자유의 문화로 구성되는 새로운 사회구조를 제안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개인의 경제적 창의력에 대한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리이며 종교자유에 버금가는 권리”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백주년」에서 “현대기업의 기초는 경제분야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자유에 있다.”고 정의하였다.

 

교황은 기업의 이윤을 “기업의 활기를 측정하는 잣대”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적어도 기업의 활기를 위해 똑같이 중요한, 인간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언급으로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현대사회에서 기업과 기업가의 역할을 더 넓은 차원으로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한때는 생산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땅이었고 나중에는 - 생산수단의 총체로 이해된 - 자본이었던 반면에 오늘날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점점 인간 자신이 되어가고 있다. 곧, 인간의 지식, 특히 인간의 과학적 지식과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능력은 물론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회칙에서 언급하며 지난 경제성장 과정을 회고하고 미래의 변화 방향을 예견하였다.

 

그럼에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현재의 자본주의체제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인간의 창조성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이 창조성은 필연적으로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고 언급한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향후 전개될 현대 자본주의체제의 근본적 문제점과 한계를 예견하고 있다. “생산소비 방식의 끊임없는 변화가 이미 획득한 어떤 기능과 전문기술을 평가절하하고 있으므로 재훈련과 갱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시장의 기능에 따른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경고하였다.

 

더 나아가 노령화에 따른 노인복지문제와 청년실업문제 그리고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시장에 원천적으로 참여할 수도 없는 “일반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 곧 사회취약계층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 노후와 실직에 대비한 사회보험, 그리고 적당한 고용조건의 보호”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체제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마이클 노박, 앞의 책 참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본주의체제의 성장 동인이 창조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에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아가 시장에서 기업과 개인 등 사회구성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이해하였다.

 

또한 사회구성원이 시장에서의 빠른 경쟁 압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가 적절히 시장에 개입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제언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미래는 더욱 경쟁적인 사회로 치닫게 될 것인가?

 

1991년 「백주년」이 발표된 지 20여 년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경제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교황이 예견한 대로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의 구성원이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경제의 세계화이다. 유럽연합(EU)의 등장과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세계경제로의 편입,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로 국가의 장벽이 사라지며 기업들 간의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첨단기술의 융합은 기존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통신, IT 관련 기술과 기존 산업기술과의 융합으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하이브리드 제품이 생산되어 시장에 나오고 있다.

 

또한 첨단복합제품은 개발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어 소수의 다국적기업만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글로벌 독점체제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무선통신기기와 IT 제품에서 볼 수 있듯이 신제품의 교체주기가 해마다 짧아지면서 첨단산업의 경우 세계적으로 오직 소수의 다국적기업만이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에서 살아남게 되고, 낙오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합병되거나 타 업종으로 전환해야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다국적기업의 직접투자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모든 국가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임금과 입지조건을 앞세우며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환경을 여하히 개선하여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국내기업의 투자를 증대시켜서 고용을 확대하는 동시에 교육개혁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해 나가는 것이 모든 국가의 생존조건이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고령화시대에 진입하면서 여하히 복지 관련 서비스 공급체제와 의료체제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국가과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경쟁이란?

 

세계경제가 점점 더 경쟁적인 사회로 진입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다. 이제 고립은 오히려 도도한 흐름의 역행일 뿐이다. 우리 경제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받아들여, 새로운 기회를 계속 살려 나가는 동시에 현 체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지속가능한 경쟁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제 모든 경제주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가?

 

첫째, 재벌과 대기업의 역할과 중소기업과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해야 한다.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벌은 지난 30여 년간 정부의 지원으로 빠른 성장을 해오면서도 재벌 모기업의 대주주들이 비상장기업을 만들며 사업다각화의 명목으로 중소기업 영역에 진출하고 재벌 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비자금을 조달하여 모기업의 편법 상속에 쓰는 불법 관행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최근에는 상위 재벌뿐 아니라 중하위 재벌,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 영역으로 무분별하게 진출하고 있다. 재벌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기업과 독립적 중소기업과의 경쟁은 공정하지도 않고 경제 전체의 생태계를 훼손할 뿐이다. 재벌은 이런 행태를 즉시 시정해야 하며 고용창출 효과가 큰 분야로의 투자를 통해 청년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둘째, 청년실업 문제를 포함해서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와 함께 노동자 계층 내에서도 근로조건의 격차가 확대되어 사회구성원 간 성장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노동계와 기업과 정부는 고용시장의 유연성 확대와 비정규직의 단계적 철폐를 동시에 모색하는 대타협을 이루어야 한다.

 

셋째, 교육기회의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과거 교육분야가 효율적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며 경제성장을 지원하여 왔으나, 이제는 빈부격차의 근원지가 되었다.

 

지속가능한 경제로 진입하려면 장학금을 비롯한 보조금 등 모든 교육지원 수단을 부모의 소득과 재산과 연계하여 지원하여 빈부의 대물림을 속히 시정해 나가야 한다. 원칙적으로 국공립과 사립대학교 등 모든 교육기관에서 부유계층은 장학금을 받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장학재단 설립에 참여하여 건전한 자본주의 토양을 만들어가야 한다.

 

넷째, 노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 서비스를 생산, 소비하는 사회기업을 설립, 운영하는 생산적 복지전략체제를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의 모든 복지서비스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소득과 재산에 연계하여 제공되어야 향후 복지논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낙오된 청장년층의 직업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대안을 정부와 교육기관과 대기업이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 곽만순 마르코 - 서울대교구 한강본당 사목회 부회장, 서울가톨릭경제인회 기획분과장,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곽만순 마르코]



1,25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