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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5: 생명에 대한 폭력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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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09 ㅣ No.1128

[성경 속 생명 이야기] (5) 생명에 대한 폭력의 근원


모든 살인은 영적 친족에 대한 침해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충만하고 완전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느님 모습과 닮게 창조됐습니다. 이런 생명의 복음과 대조를 이루는 죽음에 관해서도 성경은 증언합니다. 곧 악마가 이를 시기해 사람에게 무의미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지혜 2,24; 창세 3,1.4-5 참조). 이 죽음은 카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폭력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생명의 복음」 7항 참조).

창세기 4장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두 형제는 하느님께 각각 예물을 바쳐드렸는데,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더 반기십니다. 이로 인해 카인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카인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왜 화가 났느냐? 왜 얼굴을 떨어뜨리고 있느냐?"(창세 4,6-7).

하느님의 이 질문에는 외견상 선의(善意)가 담긴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을 배척하심으로써 카인에게 위기를 안겨 주시고는 카인 스스로 그 위기를 해결하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께서 카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으신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 몇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예물을 반기고 안 반기고는 '하느님의 자유'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으셨지만 카인과 대화를 단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카인의 예물을 반기지 않으신 것이 카인을 화나게 했다손 치더라도, 엄밀히 말해 카인의 분노와 우울은 그의 내면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다음 말씀을 들어봅시다.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세 4,7).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이라는 하느님의 말씀 이면에는 카인이 자신의 분노를 악으로 갚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너는 마음을 잘 다스려 선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카인의 욕망은 그가 옳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질문을 묵살합니다. 그 욕망은 몹시 거슬리고 밉살맞은 존재가 제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 욕망은 수시로 변하는 감정에서 오기에 허상입니다. 그런데 이 헛된 욕망이 사람을 실제로 죽음에까지 몰고 가는 죄의 강력한 힘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카인은 달려들어 아벨을 쳐 죽입니다(창세 4,8). 카인은 "처음부터 살인자였던"(요한 8,44) 악마의 사고를 허용함으로써 폭력적 살인의 원형이 된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8항 참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전히 '혈육'에 대한 폭력적 침해가 수시로 일어납니다. 낙태의 경우처럼 무방비 상태의 어린 생명이 세상을 보기도 전에 죽어갑니다. 카인의 형제 살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살인은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가족으로 묶는 '영적' 친족 관계에 대한 침해입니다. 안락사를 장려하거나 실행에 옮길 때도 생명에 대한 침해가 일어납니다(「생명의 복음」 8항 참조).

아벨은 짧은 일생이었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예물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는 것이 이를 말해줍니다.

아벨에 비해 좀 더 긴 여정을 걷게 된 카인의 일생은 어떠합니까? 그는 아우를 살해함으로써 평생 그림자를 안고 살면서 형제와 화해를 하지 못한 자로 남게 됐습니다. 화해하지 못한 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실로 살인죄에 완전히 상응하기에, 살인자는 살해당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화해를 이루지 못한 자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살인자이지만 그가 인격적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몸소 지켜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생명의 복음」 9항 참조). 비록 카인을 처벌하시어 그가 '놋 땅'(창세 4,16) 곧 결핍과 고독의 땅, 하느님과 단절된 곳으로 쫓겨나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될 운명에 놓이게 하셨지만, 여전히 그를 굽어보고 계시는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9항」 참조). 바로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정의라는 역설적 신비가 드러납니다(「생명의 복음」 9항). 비록 카인의 삶이 당장엔 평탄치 못했을지언정 생애 끝에 가서는 하느님의 자비로,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다음과 같은 삶으로 인도되지 않았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 희망해 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8-39).

[평화신문, 2014년 3월 9일, 
이명기 수녀(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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